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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2년전에 찍힌 사진
파일:external/www.erebus.co.nz/HSR33.jpg
사고 기체의 잔해.
Air New Zealand Flight 901 (TE-901)
사고 2년전에 찍힌 사진
파일:external/www.erebus.co.nz/HSR33.jpg
사고 기체의 잔해.
Air New Zealand Flight 901 (TE-901)
항공사고 요약도 | |
발생일 | 1979년 11월 28일 |
유형 | CFIT |
발생 위치 | 남극 로스섬 에러버스산 |
탑승인원 | 승객 : 237명 |
승무원 : 20명 | |
사망자 | 257명 전원 사망 |
기종 | |
항공사 | |
기체 등록번호 | ZK-NZP |
출발지 | |
경유지 | 크라이스트처치 국제공항 |
도착지 | |
1. 사고 개요[편집]
2. 사고 진행[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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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여객기는 좌표가 계획에서 27마일(43km) 동쪽으로 변경되어 에러버스산 위로 지나갔다. 그리고 화이트아웃(말그대로 모든것이 하얗게 보이는 현상)이 발생해 조종사들은 산을 확인하지 못했다. 결국 에러버스산에 충돌해 257명 전원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44명은 신원확인이 되지 않았으나, 설령 사고 현장에서 즉사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영하 20도에서 50도까지 떨어지는 남극의 추위를 평상복으로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당 여객기는 좌표가 계획에서 27마일(43km) 동쪽으로 변경되어 에러버스산 위로 지나갔다. 그리고 화이트아웃(말그대로 모든것이 하얗게 보이는 현상)이 발생해 조종사들은 산을 확인하지 못했다. 결국 에러버스산에 충돌해 257명 전원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44명은 신원확인이 되지 않았으나, 설령 사고 현장에서 즉사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영하 20도에서 50도까지 떨어지는 남극의 추위를 평상복으로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3. 사고 경위[편집]
비행 얼마 전, 비행 계획이 갑작스럽게 변경되었는데 조종사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비행하다가 고도가 너무 낮아 산 중턱즈음에 부딪힌 것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었다.
당시 에어 뉴질랜드는 남극 코스를 비정기적으로 배정하였는데, 오클랜드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남극을 한바퀴 돈 뒤, 크라이스트처치에 착륙해 보급을 받고 다시 오클랜드 국제공항으로 들어오는 방식으로 남극을 관광시켜주는 코스였다. 원래 901편의 코스는 맥머도 만을 통해 가는 경로였지만, 이 경로를 급하게 에레부스 화산을 지나도록 변경하여 컴퓨터에는 이 변경된 코스가 입력되었지만, 조종사들은 이 변경점을 전달받지 못하고 그대로 비행했다. 이때문에 원래 바다를 통과할 경우라면 정상적이었을 고도 1,500 피트(457.2m)로 비행하게 됐고, 실제로는 고도 13,000 피트(3962.4m)나 되는 에레부스 산을 앞에 두고 터무니없이 낮게 비행을 하게 된 것. 거기에다 화이트 아웃까지 함께 발생하는 바람에 조종사들은 지형지물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결국 에레부스 화산에 비행기를 들이받아버리고 만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극을 관광할 수 있는 합법적인 루트는 전부 끊기게 되고 만다.
이 사고 이후로 남극 비행은 금지되었고, 오세아니아 ~ 남미/남아프리카 노선 등 남극에 가까이 가는 노선들은 비상시 남극 상륙을 하지 않기 위해 전부 4발기로 다녔으나, LATAM 항공 (산티아고 데 칠레 ~ 오클랜드 ~ 시드니 노선)과 콴타스 (시드니 ~ 요하네스버그)를 중심으로 ETOPS를 딴 4발기가 등장하고[1] 보잉 787이 개발면서 소리소문없이 다시 남극 비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로 남극으로 비행하려면 남극 기지에 비상착륙을 할 수는 없으므로 ETOPS-330 이상은 따야 갈 수 있다. 애초 문제가 생겨도 남극에 착륙이 불가능하고, 착륙한다 해도 남극에서 일반 여객기를 정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비행 코스와 비슷한 개념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여러 도시에서 콴타스를 이용하여 남극 상공을 비행 관광하는 코스는 있다. 다만 정규항로는 아니고, 여행사를 통한 전세기 개념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무래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에 대한 책임문제 때문인 듯하다.
사고 후 2주 동안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작전이 실행되었는데, 조사관들은 대부분의 시신을 수습 후 신원을 확인 하는 데 성공했지만, 수습한 257구 중 44명의 시신은 손상 정도가 심해 신원을 확인 할 수 없었다.[2] 그 외에도 남극이라는 지역 특성상 잔해 수습이 어려웠기 때문에 꼭 필요한 부분만을 선별해 잔해를 수습했다. 따라서 사고 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얼음이 녹는 여름에 사고기의 잔해가 보일 것이다.
당시 에어 뉴질랜드는 남극 코스를 비정기적으로 배정하였는데, 오클랜드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남극을 한바퀴 돈 뒤, 크라이스트처치에 착륙해 보급을 받고 다시 오클랜드 국제공항으로 들어오는 방식으로 남극을 관광시켜주는 코스였다. 원래 901편의 코스는 맥머도 만을 통해 가는 경로였지만, 이 경로를 급하게 에레부스 화산을 지나도록 변경하여 컴퓨터에는 이 변경된 코스가 입력되었지만, 조종사들은 이 변경점을 전달받지 못하고 그대로 비행했다. 이때문에 원래 바다를 통과할 경우라면 정상적이었을 고도 1,500 피트(457.2m)로 비행하게 됐고, 실제로는 고도 13,000 피트(3962.4m)나 되는 에레부스 산을 앞에 두고 터무니없이 낮게 비행을 하게 된 것. 거기에다 화이트 아웃까지 함께 발생하는 바람에 조종사들은 지형지물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결국 에레부스 화산에 비행기를 들이받아버리고 만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극을 관광할 수 있는 합법적인 루트는 전부 끊기게 되고 만다.
이 사고 이후로 남극 비행은 금지되었고, 오세아니아 ~ 남미/남아프리카 노선 등 남극에 가까이 가는 노선들은 비상시 남극 상륙을 하지 않기 위해 전부 4발기로 다녔으나, LATAM 항공 (산티아고 데 칠레 ~ 오클랜드 ~ 시드니 노선)과 콴타스 (시드니 ~ 요하네스버그)를 중심으로 ETOPS를 딴 4발기가 등장하고[1] 보잉 787이 개발면서 소리소문없이 다시 남극 비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로 남극으로 비행하려면 남극 기지에 비상착륙을 할 수는 없으므로 ETOPS-330 이상은 따야 갈 수 있다. 애초 문제가 생겨도 남극에 착륙이 불가능하고, 착륙한다 해도 남극에서 일반 여객기를 정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비행 코스와 비슷한 개념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여러 도시에서 콴타스를 이용하여 남극 상공을 비행 관광하는 코스는 있다. 다만 정규항로는 아니고, 여행사를 통한 전세기 개념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무래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에 대한 책임문제 때문인 듯하다.
사고 후 2주 동안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작전이 실행되었는데, 조사관들은 대부분의 시신을 수습 후 신원을 확인 하는 데 성공했지만, 수습한 257구 중 44명의 시신은 손상 정도가 심해 신원을 확인 할 수 없었다.[2] 그 외에도 남극이라는 지역 특성상 잔해 수습이 어려웠기 때문에 꼭 필요한 부분만을 선별해 잔해를 수습했다. 따라서 사고 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얼음이 녹는 여름에 사고기의 잔해가 보일 것이다.
4. 탑승 인원 및 국적[편집]
- 뉴질랜드인 승객 180명,승무원 20명
- 일본인 승객 24명
- 미국인 승객 22명
- 영국인 승객 6명
- 캐나다인 승객 2명
- 오스트레일리아인 승객 1명
- 프랑스인 1명
- 스위스인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