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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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머니 측천무후의 배경3. 짧은 생애4. 음모론

1. 개요[편집]

安定公主, 654

중국 당나라 고종측천무후의 4남 2녀 중 장녀. 당 고종에게는 3녀,[1] 측천무후에게는 장녀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널리 알려진 안정공주의 사인(死因)은, 친어머니 측천무후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설이다. 후궁이었던 측천무후가 갓난 친딸을 살해하고서, 고종의 황후와 후궁을 범인으로 몰아 모함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측천무후의 악독함과 냉혈함을 뒷받침하는 사례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2. 어머니 측천무후의 배경[편집]

본래 무조(武照)는 14살에 당고종의 아버지인 당태종후궁으로 입궁했다. 그녀는 재인(才人)이라는 낮은 등급의 후궁이었고, 당태종으로부터 그리 많은 총애를 받지 못했다. 당태종은 649년 사망했고, 그의 많은 후궁들은 감업사(感業寺)라는 로 보내졌다. 비구니가 되어 죽을 때까지 당태종의 명복을 빌며 살아야 하는 것이 그녀들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무조는 그러한 운명을 거부했다.

당고종은 아버지의 후궁이었던 무 재인에게 반해 있었다. 게다가 고종의 정실인 황후 왕씨[2]도 무조를 궁으로 도로 데려오는 일에 동참한다. 당시 황후 왕씨는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궁에서는 후궁인 숙비 소씨가 황후보다 더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왕 황후는 소 숙비를 견제하기 위해, 절에서 비구니로 살고 있던 무조를 환속시켜 궁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우를 쫓기 위해 호랑이를 불러들인 격이었다.

다시 궁으로 돌아온 무조는 소의(昭儀)라는 등급의 후궁으로 봉해졌다. 그리고 왕 황후의 의도와 달리, 무 소의는 왕 황후와 소 숙비를 모두 제치고 당고종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리고 평소 왕 황후와 소 숙비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3. 짧은 생애[편집]

654년, 무 소의는 안정공주를 낳았다. 그러나 안정공주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갑작스레 죽고 말았다. 마침 안정공주를 보러 무 소의의 처소를 방문했던 왕 황후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왕 황후와 소 숙비황후후궁의 자리에서 폐위되어 좁디좁은 감옥에 갇혔고, 무 소의는 마침내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왕씨와 소씨의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들은 황후가 된 무조의 명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그리고 본래의 성씨인 '왕'과 '소' 대신에 '망(蟒, 이무기)'과 '효(梟, 올빼미)'로 불리게 되는 등, 죽어서도 두고두고 모욕을 당했다.

4. 음모론[편집]

오랫동안 "무조가 친딸 안정공주를 죽이고는 왕 황후에게 혐의를 씌워 모함했다"고 전해져 왔다. 반면 "안정공주는 돌연사했는데, 무조가 마침 왕 황후에게 혐의를 씌운 것"이라는 설도 있다. 진짜로 왕 황후나 소 숙비가 안정공주를 죽였거나, 또는 제3의 인물이 안정공주를 죽였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 쳐도 최소한 1명은 누명 쓴 거잖아

한국 드라마 연개소문대조영에서는 전통적으로(?) 알려져 오던 첫 번째 설을 그렸다.

반면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출신의 문학가 샨사의 소설 <측천무후>에서는, 무조가 범인이라는 기존의 설을 부인한다. 소설 <측천무후>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사랑하는 딸 안정공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무 소의의 충격을 절절하게 호소한다. 이어 무 소의는 왕 황후와 소 숙비를 범인으로 믿어 잔혹한 복수를 한다. 그리고 측천무후 범인설에 대해서는 "나를 왜곡하고 모함하기 위해 사람들이 꾸며낸 말"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중국 드라마 무미랑전기에서는 고모 고양공주에 의해 살해되는 것으로 나온다.

그 외에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죽은 게 아니냐는 설도 있다.

[1] 후궁 숙비 소씨가 낳은 이복언니 의양공주(義陽公主)와 선성공주(宣城公主)가 있었다.[2] 당고조의 여동생인 동안공주(同安公主)의 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