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제46~47대
호시노 쓰요시 | →
| 제48대
아베 도모코 | →
|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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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阿, ruby=あ)][ruby(部, ruby=べ)][ruby(知, ruby=とも)][ruby(子, ruby=こ)]
아베 도모코 | |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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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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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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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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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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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 7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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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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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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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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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및 정치 활동
1948년 도쿄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서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와 도쿄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여러 병원에서 소아과 전문의로 근무했으며, 치바 토쿠슈카이병원에서 병원장을 역임한 적이 있다. 의사로 근무하면서 1995년 제1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평화 시민이라는 군소 정당에 출마했으나 낙선, 1998년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제18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다가 2000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의 공천과 가나가와현 의사회의 지원을 받아 가나가와현 제12구에 출마했지만, 자민당, 민주당 등의 후보들에게 밀려 4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비례대표도 중복 입후보 했기 때문에 지역구에서 4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석패율제 구제로 당선되어 원내에 진출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가나가와현 제12구에 출마하지만 1위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계속 석패율제 구제를 통해 비례대표로 당선된다. 그렇게 석패율제 구제로 비례대표로만 6선을 기록하는 흠좀무한 기록을 세운다. 한국에서도 비례대표로만 당선되어 이른바 ‘비례대표 전문가’라고 불리는 김종인도 아베 도모코보다 낮은 선수인 5선인 것을 보면 실로 놀라운 기록이다. 게다가 징검다리 건너듯 원내 경력에 공백기가 있는 김종인과 달리 아베 도모코는 연속으로 당선되었다. 사실상 석패율제의 최대 수혜자이자 진짜 비례대표 전문가인 셈이다.
아무튼 그렇게 중의원을 계속 역임하면서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후쿠시마 미즈호 당시 대표와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민주당을 탈당해 일본 미래당 창당에 참여하고 당 부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치른 총선거에서도 석패율제 구제로 당선되었다. 총선거 이후 가다 유키코 대표가 오자와 이치로 간의 갈등으로 사임하자 뒤를 이어 일본 미래당 대표로 취임한다. 2013년 녹색바람에 합류해 녹색바람의 대표 대행을 맡는다. 하지만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녹색바람 소속 후보자들이 모두 낙선해 정당 요건을 상실하였으며, 결국 2013년 12월 31일 녹색바람이 해산되었다.
녹색바람 해산 이후 아베 도모코는 무소속으로 활동하다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가나가와현 제12구에 출마하나 이번에도 지역구 당선에는 실패하고 석패율제 구제로 당선된다. 이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에는 희망의 당에 합류하려고 했으나 그 유명한 고이케 유리코의 리버럴 성향 의원 배제 발언으로 합류가 불발되고, 입헌민주당에 입당한다. 입당 후 입헌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가나가와현 제12구에 출마해 접전 끝에 1위로 당선되면서 정치 인생 처음으로 지역구 당선에 성공했다. 중의원 첫 당선 기준 17년 만에, 참의원 선거 첫 출마 22년 만에 처음으로 지역구에서 당선된 것이다.만약 배제당하지 않고 희망의 당으로 출마했다면, 지역구는 커녕 석패율제 구제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졸업 후 여러 병원에서 소아과 전문의로 근무했으며, 치바 토쿠슈카이병원에서 병원장을 역임한 적이 있다. 의사로 근무하면서 1995년 제1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평화 시민이라는 군소 정당에 출마했으나 낙선, 1998년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제18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다가 2000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의 공천과 가나가와현 의사회의 지원을 받아 가나가와현 제12구에 출마했지만, 자민당, 민주당 등의 후보들에게 밀려 4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비례대표도 중복 입후보 했기 때문에 지역구에서 4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석패율제 구제로 당선되어 원내에 진출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가나가와현 제12구에 출마하지만 1위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계속 석패율제 구제를 통해 비례대표로 당선된다. 그렇게 석패율제 구제로 비례대표로만 6선을 기록하는 흠좀무한 기록을 세운다. 한국에서도 비례대표로만 당선되어 이른바 ‘비례대표 전문가’라고 불리는 김종인도 아베 도모코보다 낮은 선수인 5선인 것을 보면 실로 놀라운 기록이다. 게다가 징검다리 건너듯 원내 경력에 공백기가 있는 김종인과 달리 아베 도모코는 연속으로 당선되었다. 사실상 석패율제의 최대 수혜자이자 진짜 비례대표 전문가인 셈이다.
아무튼 그렇게 중의원을 계속 역임하면서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후쿠시마 미즈호 당시 대표와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민주당을 탈당해 일본 미래당 창당에 참여하고 당 부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치른 총선거에서도 석패율제 구제로 당선되었다. 총선거 이후 가다 유키코 대표가 오자와 이치로 간의 갈등으로 사임하자 뒤를 이어 일본 미래당 대표로 취임한다. 2013년 녹색바람에 합류해 녹색바람의 대표 대행을 맡는다. 하지만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녹색바람 소속 후보자들이 모두 낙선해 정당 요건을 상실하였으며, 결국 2013년 12월 31일 녹색바람이 해산되었다.
녹색바람 해산 이후 아베 도모코는 무소속으로 활동하다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가나가와현 제12구에 출마하나 이번에도 지역구 당선에는 실패하고 석패율제 구제로 당선된다. 이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에는 희망의 당에 합류하려고 했으나 그 유명한 고이케 유리코의 리버럴 성향 의원 배제 발언으로 합류가 불발되고, 입헌민주당에 입당한다. 입당 후 입헌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가나가와현 제12구에 출마해 접전 끝에 1위로 당선되면서 정치 인생 처음으로 지역구 당선에 성공했다. 중의원 첫 당선 기준 17년 만에, 참의원 선거 첫 출마 22년 만에 처음으로 지역구에서 당선된 것이다.
3.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평화 시민
| 1995 - 1998
| 정계 입문
|
1998 - 2012
| 입당
| |
2012
|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 |
2012 - 2013
| 입당
| |
() | 2013
| 입당
|
2013 - 2014
| 정당 해산
| |
2014 - 2016
| 입당
| |
2016 - 2017
| 당명 변경
| |
2017
| 입헌민주당 합류를 위한 탈당
| |
2017 - 2020
| 입당
| |
2020 -
| 신설 합당[4]
|
4.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8
| 제1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298,244 (8.3%)
| 낙선 (6위)
| |||
2000
|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36,276 (18.8%)
| 낙선 (4위)
| |||
당선 (석패율제 당선)
| 초선
| |||||
2003
| 26,954 (14.0%)
| 낙선 (3위)
| ||||
당선 (석패율제 당선)
| 재선
| |||||
2005
| 35,133 (15.1%)
| 낙선 (3위)
| ||||
당선 (석패율제 당선)
| 3선
| |||||
2009
| 47,538 (19.7%)
| 낙선 (3위)
| ||||
당선 (석패율제 당선)
| 4선
| |||||
2012
| 50,976 (23.6%)
| 낙선 (2위)
| ||||
당선 (석패율제 당선)
| 5선
| |||||
2014
| 82,612 (42.1%)
| 낙선 (2위)
| ||||
당선 (석패율제 당선)
| 6선
| |||||
2017
| 86,550 (43.2%)
| 당선 (1위)
| 7선[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