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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른베르크 라슬로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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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1] | 슈테른베르크 라슬로 (Sternberg László)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불명 |
포지션 | 풀백 |
신체조건 | 불명 |
등번호 | -[2] |
소속팀 | AS 노베세 (1925-1926) 안드레아 도리아 (1926-1927) 위페슈트 FC (1927-1928) 뉴욕 자이언츠 (1928-1929) 브루클린 하코아 (1929-1930) 하코아 올스타 (1930-1931) 뉴욕 아메리칸스 (1932) 위페슈트 FC (1932-1936) 레드 스타 파리 (1936-1937) |
국가대표 | 19경기 / 0골 (1928-1936) |
감독 | 위페슈트 FC (1937-1938) |
1. 생애[3][편집]
1.1. 선수 생활[편집]
1.1.1. 클럽[편집]
슈테른베르크는 축구 선수 생활 초기에 헝가리의 몇 클럽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1925년의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슈테른베르크는 헝가리에서의 축구 선수 자격이 일시 정지되었고 이탈리아에서 2시즌을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2부 리그 소속의 AS 노베세에서 뛰었고 그 다음 시즌에는 안드레아 도비아[4]에서 기량을 인정받아 주전이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도 1927년부터 외국인 출전 제한 정책을 펴자 슈테른베르크는 다시 헝가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위페슈트에서 1년간 뛰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 축구계에는 헝가리 선수들이 꽤 있었고 그 중에는 나중에 감독으로 더 유명하게 될 구트먼 벨러도 뛰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슈테른베르크의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은 계속 되었는데 뉴욕 자이언츠에서 뛴지 얼마되지 않아 이번엔 축구 전쟁으로 미국 리그가 쪼개졌다. 슈테른베르크는 이민자가 많던 하코아로 팀을 옮겼고 이 곳에서 컵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다 미국 리그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지자 슈테른베르크는 다시 헝가리로 건너갔고 위페슈트에서 우승의 주역이 되며 활약하였다. 슈테른베르크는 이후 프랑스의 레드 스타 파리에 건너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하지만 1925년의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슈테른베르크는 헝가리에서의 축구 선수 자격이 일시 정지되었고 이탈리아에서 2시즌을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2부 리그 소속의 AS 노베세에서 뛰었고 그 다음 시즌에는 안드레아 도비아[4]에서 기량을 인정받아 주전이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도 1927년부터 외국인 출전 제한 정책을 펴자 슈테른베르크는 다시 헝가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위페슈트에서 1년간 뛰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 축구계에는 헝가리 선수들이 꽤 있었고 그 중에는 나중에 감독으로 더 유명하게 될 구트먼 벨러도 뛰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슈테른베르크의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은 계속 되었는데 뉴욕 자이언츠에서 뛴지 얼마되지 않아 이번엔 축구 전쟁으로 미국 리그가 쪼개졌다. 슈테른베르크는 이민자가 많던 하코아로 팀을 옮겼고 이 곳에서 컵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다 미국 리그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지자 슈테른베르크는 다시 헝가리로 건너갔고 위페슈트에서 우승의 주역이 되며 활약하였다. 슈테른베르크는 이후 프랑스의 레드 스타 파리에 건너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1.1.2. 국가대표팀[편집]
1.2. 감독 생활[편집]
레드 스타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잠시 위페슈트에서 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이후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양발 사용이 가능하고 육체적으로 강한 수비수였다고 전해진다.
3. 수상[편집]
3.1. 클럽[편집]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우승 2회: 1932–33, 1934–35(위페슈트 FC)
- 뉴욕주 챌린지 컵 우승 1회: 1929(뉴욕 자이언츠)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준우승 1회: 1933–34(위페슈트 FC)
- 마자르 쿠파 준우승 1회: 1932–33(위페슈트 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