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송병철은 1919년 12월 9일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독립유공자 송복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동생과 함께 의주에서 모친과 함께 살다가, 모친이 별세하자 아버지의 부름으로 1935년 초 중국 산하이관으로 건너갔다.
그후 부친의 권유로 1944년 5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동생 송병하와 함께 입대하여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을 상대로 초모 및 선전 공작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총무과 소속으로 잠시 근무하다가, 그해 10월 중국 육군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을 수료하였다.
그해 12월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에 파견되어 부친과 함께 광복군 활동을 적극 지원하던 중 8.15 광복을 맞았다.
해방 직후에는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신변 보호 임무를 수행하는 등 자국민을 보호하는 임시정부 일원으로서의 사명을 다했고, 임무를 완수하고는 인천시 월미도를 통해 귀국하였다.
귀국 후 1946년 송병철은 경찰에 투신하여 청량리운수경찰서, 서울철도경찰대 등을 거치며 철도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 예방과 단속 등 시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했다.#
이후 대전광역시 동구 신안동에서 살며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으며, 1989년 5월 3일 별세하였다.
사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그는 동생과 함께 의주에서 모친과 함께 살다가, 모친이 별세하자 아버지의 부름으로 1935년 초 중국 산하이관으로 건너갔다.
그후 부친의 권유로 1944년 5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동생 송병하와 함께 입대하여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을 상대로 초모 및 선전 공작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총무과 소속으로 잠시 근무하다가, 그해 10월 중국 육군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을 수료하였다.
그해 12월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에 파견되어 부친과 함께 광복군 활동을 적극 지원하던 중 8.15 광복을 맞았다.
해방 직후에는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신변 보호 임무를 수행하는 등 자국민을 보호하는 임시정부 일원으로서의 사명을 다했고, 임무를 완수하고는 인천시 월미도를 통해 귀국하였다.
귀국 후 1946년 송병철은 경찰에 투신하여 청량리운수경찰서, 서울철도경찰대 등을 거치며 철도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 예방과 단속 등 시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했다.#
이후 대전광역시 동구 신안동에서 살며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으며, 1989년 5월 3일 별세하였다.
사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