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 초기의 문관. 여타 고려 초기 인물처럼 생몰연도가 불확실하며 제대로 된 기록도 없다. 현존 기록을 살펴보면 최소
경종,
성종 두
임금을 섬겼다.
자세한 기록이 전무해 박양유에 대해 잘 알기 어렵지만 경종의 신임을 받아 성종 때도 꽤 높은 자리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성종이 자신의 조카
목종을
서경에 데려가 개령군 군호를 물려줄 때 성종의 봉책문을 받든 두 신하 중 하나다. 이 때의 관직은 건축 및 건설 담당 부서인 공관의 장관이자 6관의 부관리자였다. 여기서 계속 승진해 시중 직위까지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소손녕 침입 당시 임시 편성된 북계 군단 |
상군사(上軍士) | 중군사(中軍士) | 하군사(下軍士) |
시중(侍中) 박양유 | | |
기타 지휘관 |
제도(諸道) 병마제정사(兵馬齊正使) |
군사적,
외교 관련으로도 꽤 뛰어났는지
서희,
최량과 함께 상군사로 북방에 나가기도 했다. 후
거란과의 교섭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단편적인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이게 끝. 나름 경종의
배향공신인데다 후계자 책봉식의 주역, 북방 군단 지휘 등 굵직한 일은 다 했는데도 열전 하나 없고 가족관계나 언제 태어나 죽었는지도 모른다.
고려사 태묘 예지에 기록된 배향공신 중 개국공신에도 임명된 신하는 시호에 개국(開國) 미칭이 붙어있다. 박양유 또한 시호에 개국이 붙어 있어 그가 고려 개국에도 일조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