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 |
이름 | 바우데마르 지브리투 Waldemar de Brito |
출생 | |
사망 | |
국적 | |
신체 | |
포지션 | 인사이드 포워드, 센터 포워드 |
소속팀 | |
국가대표 | 2경기 1골 (브라질 / 1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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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2.1. 클럽[편집]
상파울루 출신인 지브리투는 시리우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상파울루 FC 소속이던 지브리투는 20살의 젊은 나이에 대선배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그 성과로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 대회와 상파울루 주 리그에서 득점왕을 휩쓸었지만 우승은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에게 내주었다. 그 이후엔 보타포구와 아르헨티나의 CA 산 로렌소등에서 활약하였다.
1937년에 돌아온 히우지자네이루 주 리그. 새로운 소속팀은 CR 플라멩구였고 이 곳에는 레오니다스 다시우바, 파우스투 두스 산투스 등 흑인 동료들이 많았다. 지브리투는 플라멩구에서 보낸 3년 간 우승과 준우승 2차례를 맛보았고, 산 로렌소를 다시 거쳐 1941년부터는 상파울루 FC에서 활약하면서 26경기 26골로 커리어 최다 득점을 차지하는 전성기도 누렸다.막상 신체 능력으로는 전성기에 도달했지만 이때는 팀이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이후로는 또 여러 팀을 떠돌았고 포르투게사 산치스타에서 1946년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1937년에 돌아온 히우지자네이루 주 리그. 새로운 소속팀은 CR 플라멩구였고 이 곳에는 레오니다스 다시우바, 파우스투 두스 산투스 등 흑인 동료들이 많았다. 지브리투는 플라멩구에서 보낸 3년 간 우승과 준우승 2차례를 맛보았고, 산 로렌소를 다시 거쳐 1941년부터는 상파울루 FC에서 활약하면서 26경기 26골로 커리어 최다 득점을 차지하는 전성기도 누렸다.
그 이후로는 또 여러 팀을 떠돌았고 포르투게사 산치스타에서 1946년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2.2. 국가대표팀[편집]
2.3. 은퇴 이후[편집]
은퇴 이후에는 여러 지방들을 돌아다니며 재능 있는 소년들을 스카우트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그러다 1954년 무렵, 바우루 AC라는 군소 클럽의 코치로 취임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그는 한 흑인 소년을 만났다. 동네 축구만 하던 소년의 눈에 월드컵까지 다녀왔던 지브리투 코치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소년에게 코치의 말은 곧 법이었다. 지브리투는 탄력이 좋았던 그 소년을 위해 같은 높이의 공을 향해 오른발, 왼발, 양발로 모두 점프하는 훈련을 시켰다. 이 훈련의 결과로 소년은 신장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어떤 발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비슷한 높이로 남들보다 높이 점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공중 볼에 강점을 갖게 되었다. 그 외에도 자신의 장기였던 양발 사용을 강조하면서 소년을 포함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었고 바우루의 유소년팀은 33경기에서 148골을 넣는 유소년계 초강팀으로 군림하였다. 그리고 2년 후, 그 중에서도 특출 났던 흑인 제자를 산투스 FC에 추천해주었다. 그 제자가 바로 축구 황제 펠레였다.
그러다 1954년 무렵, 바우루 AC라는 군소 클럽의 코치로 취임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그는 한 흑인 소년을 만났다. 동네 축구만 하던 소년의 눈에 월드컵까지 다녀왔던 지브리투 코치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소년에게 코치의 말은 곧 법이었다. 지브리투는 탄력이 좋았던 그 소년을 위해 같은 높이의 공을 향해 오른발, 왼발, 양발로 모두 점프하는 훈련을 시켰다. 이 훈련의 결과로 소년은 신장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어떤 발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비슷한 높이로 남들보다 높이 점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공중 볼에 강점을 갖게 되었다. 그 외에도 자신의 장기였던 양발 사용을 강조하면서 소년을 포함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었고 바우루의 유소년팀은 33경기에서 148골을 넣는 유소년계 초강팀으로 군림하였다. 그리고 2년 후, 그 중에서도 특출 났던 흑인 제자를 산투스 FC에 추천해주었다. 그 제자가 바로 축구 황제 펠레였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양발 사용과 헤딩에 능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제자는 스승의 장점을 이어받아 더 업그레이드시켰다 선수 시절에는 우승복은 나름 있었지만 한 팀에서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4. 여담[편집]
- 그는 바이시클 킥의 창시자 또는 30년대의 스타플레이어 중 한 사람인 페트로닐류 지브리투의 동생이다.
5. 수상[편집]
5.1. 클럽[편집]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1936 명예 컵(CA 산 로렌소)
-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 준우승 1회: 1933(상파울루 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