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페넌트레이스 성적
| ||||
순위
| 승
| 무
| 패
| 승률
|
1
| 81
| 0
| 45
| 0.643
|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이종도 수석코치와 최정기 배터리코치, 하기룡 2군 투수코치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1군에 유종겸 투수코치와 천보성 수비코치는 유임되었다. 그리고 2군 타격코치였던 김용달은 1군 타격코치, 2군 작전코치 최정우는 1군 작전코치, 오영일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대신, 2군에는 타격코치로 이광은, 작전코치로 김인식, 수비코치에는 신언호가 임명되었다.
추가 코치영입으로 2군 타격코치로 박종훈, 2군 투수코치에 임호균을 영입했다. 심재원이 신임 1군 배터리코치가 되었다.
삼성의 전 2군감독이었던 박용진을 2군 감독으로, 빙그레의 투수코치였던 김명성을 1군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1군에 유종겸 투수코치와 천보성 수비코치는 유임되었다. 그리고 2군 타격코치였던 김용달은 1군 타격코치, 2군 작전코치 최정우는 1군 작전코치, 오영일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대신, 2군에는 타격코치로 이광은, 작전코치로 김인식, 수비코치에는 신언호가 임명되었다.
추가 코치영입으로 2군 타격코치로 박종훈, 2군 투수코치에 임호균을 영입했다. 심재원이 신임 1군 배터리코치가 되었다.
삼성의 전 2군감독이었던 박용진을 2군 감독으로, 빙그레의 투수코치였던 김명성을 1군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1.2. 선수 이동
1.3. 신인 선수
- 포지션은 지명 당시 기준.
이름
| 포지션
| 경력
| 계약금
| ||
1차
| 내야수
| 충암고 - 한양대
| 7,500만원
| ||
2차
| 1라운드
| 투수
| 선린상고 - 단국대
| ||
2라운드
| 박은우
| 내야수
| 광주상고 - 원광대
| ?
| |
3라운드
| 박철홍
| 투수
| 신일고-고려대-포철
| ?
| |
4라운드
| 포수
| 광영고 - 중앙대
| 2,800만원
| ||
5라운드
| 박창현
| 투수
| 동산고 - 경남대
| ||
6라운드
| 내야수
| 선린상고 - 단국대
| 1,800만원
| ||
7라운드
| 패스
| ||||
고졸 연고
| 외야수
| 신일고
| 9,100만원
| ||
투수
| 충암고
| 8,800만원
| |||
대졸신인 1차지명으로 OB가 동국대 좌완투수 류택현을 지명한 반면 LG는 한양대의 거물 유격수 유지현을 지명했다. 계약금은 7,500만원에 연봉은 1,200만원이었다.
2차지명에서 단국대 투수 인현배를 1라운드로 뽑았다. 3라운드에는 고려대 투수 박철홍을 지명했다. 4라운드로는 중앙대 포수 최동수를, 마지막 픽인 6라운드에서는 단국대 내야수 서용빈을 지명했다.
고졸신인으로 신일고의 김재현을 고졸 최고대우인 계약금 9,100만원, 연봉 1,200만원에 계약했다. 또한 충암고의 신윤호를 계약금 8,800만원, 연봉 1,200만원에 계약했다. 이로써 프로야구의 억대 고졸신인 시대를 열었다.
1.4. 기타
2. 정규 시즌
2.1. 시즌 전 전망
2.2. 4월
2.3. 5월
2.4. 6월
이상훈과 함께 타선이 다소 기복을 보이면서 월간 전적 13승 12패로 1994 시즌 중 가장 좋지 않았던 달이다. 하지만 고비 때마다 인현배가 승리요정으로 활약했고 이 달에만 4승을 거뒀다. 선동열과의 맞대결에서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 5월 1일 이후 1달이 넘게 승리가 없었던 김태원은 이 달에만 4승을 기록했다. 3연패 1차례, 2연패 3차례를 기록했으나 그래도 탄탄한 선발진 덕에 긴 연패는 허용하지 않고 쌍방울전 3연전 스윕승과 한화-해태전 4연승으로 만회하면서 월간 승패마진은 +를 유지했다. 살짝 주춤한 달임에도 아래팀들이 혼전을 벌이면서 반사이익을 봤다. 2위와의 승차는 5월과 동일하게 4.5경기였으며 2위의 주인은 태평양으로 바뀌었다.
2.5. 7월
우천취소 1경기 때문에 동률시리즈를 기록한 쌍방울과의 마지막 시리즈 빼고 루징시리즈 없이 모조리 위닝시리즈를 기록하며 월간 14승 6패로 2위와의 승차를 9경기로 벌리며 사실상 우승을 거의 예약했다. 김태원과 이상훈은 나란히 10승째를 기록했고, 서용빈은 신인 최단기 100안타에 성공했으며, 김재현은 월간 6홈런에 15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2.6. 8월
월초 OB와 한화, 롯데에 3연속 루징을 기록하며 잠시 주춤했으나 삼성과 한화에 3연전 스윕, 태평양에 2연전 전승을 가져가며 월간승률은 15승9패로 6할을 넘겼다. 60승에 이어 70승 고지까지 밟으며 2위 태평양과의 승차를 9로 유지해 우승을 99% 확정지었다. 인현배가 주춤하기 시작했지만 정삼흠과 함께 10승을 넘겨 LG는 10승투수 4명을 보유하게 됐다. 이중 김태원과 이상훈은 15승에 성공했다.
2.7. 9월
삼성과의 4연전 3승1패, 해태와의 3연전 2승1패에 이어 9월 9일 태평양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정규시즌 우승 및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었다.[2]김재현의 20-20에 이상훈의 다승왕이라는 좋은 소식이 있었다.
2.8. 상대 전적
LG 트윈스 1994년 팀별 상대 전적
| ||||
상대 팀
| 승 - 무 - 패
| 승률
| 승패마진
| 우열
|
11 - 0 - 7
| 0.611
| +4
| 우세
| |
11 - 0 - 7
| 0.611
| +4
| 우세
| |
11 - 0 - 7
| 0.611
| +4
| 우세
| |
12 - 0 - 6
| 0.667
| +6
| 절대우세
| |
10 - 0 - 8
| 0.556
| +2
| 우세
| |
13 - 0 - 5
| 0.722
| +8
| 절대우세
| |
13 - 0 - 5
| 0.722
| +8
| 절대우세
| |
총합
| 81 - 0 - 45
| 0.643
| +36
| 순위: 1 / 8
|
- 분류 기준
- 남색은 압도(승률 ≥ .800)를 뜻한다.
- 청색은 절대우세(.650 ≤ 승률<.800)를 뜻한다.
- 하늘색은 우세(.550 ≤ 승률<.650)를 뜻한다.
- 녹색은 백중세(.450 ≤ 승률<.550)를 뜻한다.
- 오렌지색은 열세(.350≤승률<.450)를 뜻한다.
- 적색은 절대열세(.200≤ 승률<.350)를 뜻한다.
- 갈색은 압살(승률<.200)을 뜻한다.
2.9. 수상 및 기록
- 김용수 - 150세이브 달성(프로통산 최초, 7월 28일 수원 태평양전)
2.10. 선수별 개인기록
3. 포스트시즌
3.1. 한국시리즈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 |
4. 총평
LG 트윈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시즌이다. 4월 26일 청주 한화전에서 1위로 올라선 이후 시즌 종료까지 한 번도 1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멀찌감치 독주했다. 655득점으로 이해 득점 2위였던 해태보다 102득점이 많았으며, 452점의 실점으로 최소실점 2위였던 태평양보다 19점이 적었다. 팀타율 .282,팀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하며 완벽한 투타 밸런스를 기록했다. LG는 당시 프로야구 역대 최다승인 81승 45패(승률 .643)를 거두고 한국시리즈에 직행, 태평양 돌핀스를 4전 전승으로 완파하며 1990년 이후 창단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신인 3인방' 돌풍을 일으켰던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과 '해결사' 한대화, 노찬엽, 박준태, 박종호,김영직, 최훈재 등이 있었던 위력적인 타선, 이상훈, 김태원, 정삼흠, 인현배, 김기범이 버티고 있었던 탄탄한 선발진과 차동철, 박철홍, 민원기, 차명석, 강봉수, 김용수가 버텼던 마운드는 LG를 94년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다. LG 트윈스의 야구를 신바람 야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다. 선발투수 중 3명이 15승 이상을 거둔 첫 번째 구단이 되었고, 5명의 선수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위업을 이루었다.
1994년 LG 마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투수들의 역할 분배였다. 현재는 이것이 매우 상식적이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운영이었다. [12] 이기는 상황에서 등판하는 투수, 동점이나 근소한 점수 차이로 지고 있을 때 등판하는 투수, 크게 이기고 있거나 이길 가능성이 낮을 때 등판하는 투수로 불펜의 역할을 분배했다. 부임 3년차가 된 이광환 감독은 선수들의 능력과 경기 상황에 따라 투수들의 역할을 분배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해태 타이거즈가 투타에서 강력한 맹위를 떨치고 있었던 프로야구판에 서울 연고 구단이 투타에서 압도적인 포스를 발휘하며 인구 1,000만의 서울 연고팬들을 신바람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트윈스의 1994 시즌은 현재까지도 트윈스 팬들의 뇌리 속에서 깊게 박혀있다. 긴 암흑기를 겪었음에도 강력한 LG 트윈스의 팬덤은 바로 이 시기에 야구에 입문한 사람들로부터 많이 이루어졌다.
'신인 3인방' 돌풍을 일으켰던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과 '해결사' 한대화, 노찬엽, 박준태, 박종호,김영직, 최훈재 등이 있었던 위력적인 타선, 이상훈, 김태원, 정삼흠, 인현배, 김기범이 버티고 있었던 탄탄한 선발진과 차동철, 박철홍, 민원기, 차명석, 강봉수, 김용수가 버텼던 마운드는 LG를 94년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다. LG 트윈스의 야구를 신바람 야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다. 선발투수 중 3명이 15승 이상을 거둔 첫 번째 구단이 되었고, 5명의 선수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위업을 이루었다.
1994년 LG 마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투수들의 역할 분배였다. 현재는 이것이 매우 상식적이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운영이었다. [12] 이기는 상황에서 등판하는 투수, 동점이나 근소한 점수 차이로 지고 있을 때 등판하는 투수, 크게 이기고 있거나 이길 가능성이 낮을 때 등판하는 투수로 불펜의 역할을 분배했다. 부임 3년차가 된 이광환 감독은 선수들의 능력과 경기 상황에 따라 투수들의 역할을 분배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해태 타이거즈가 투타에서 강력한 맹위를 떨치고 있었던 프로야구판에 서울 연고 구단이 투타에서 압도적인 포스를 발휘하며 인구 1,000만의 서울 연고팬들을 신바람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트윈스의 1994 시즌은 현재까지도 트윈스 팬들의 뇌리 속에서 깊게 박혀있다. 긴 암흑기를 겪었음에도 강력한 LG 트윈스의 팬덤은 바로 이 시기에 야구에 입문한 사람들로부터 많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