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최능현은 1892년 11월 3일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에서 부유한 지주이자 기독교도인 최경흠(崔敬欽)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반석교회 장로였으며, 1919년 3월 4일 임원걸(林元杰)·송현근 등과 함께 박석면에서 시위를 주동해 형 최능찬과 함께 600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헌병분견소를 방화하고 형사와 순사보를 살해했다. 이 일로 일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자 변장하고 탈출했으며, 궐석재판에서 조진탁·송현근·백이옥·윤상열(尹相悅) 등과 함께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 후 열차에서 일제 경찰과 격투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강을 건너 만주로 피신한 그는 목능현 등지에서 교육에 종사하다가 난징으로 이동했다. 그는 그곳에서 1932년 남경중앙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정경호(鄭京浩)·최동호(崔東昊)[1]·연원명(延圓明)·박남파(朴南波) 등과 교유했다. 이후 상하이로 가서 윤봉길과 함께 폭탄 제조 실험을 하다가 1933년 8월 18일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최능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 후 열차에서 일제 경찰과 격투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강을 건너 만주로 피신한 그는 목능현 등지에서 교육에 종사하다가 난징으로 이동했다. 그는 그곳에서 1932년 남경중앙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정경호(鄭京浩)·최동호(崔東昊)[1]·연원명(延圓明)·박남파(朴南波) 등과 교유했다. 이후 상하이로 가서 윤봉길과 함께 폭탄 제조 실험을 하다가 1933년 8월 18일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최능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