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강서군 출신 인물]][[분류:1892년 출생]][[분류:193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최능현(崔能賢) || || 생몰 ||[[1892년]] [[11월 3일]] ~ [[1933년]] [[8월 18일]] || || [[출생지]]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 || 사망지 ||[[중국]] [[상하이]]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경찰, 정치인이었던 [[최능진]]의 형이다. == 생애 == 최능현은 1892년 11월 3일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에서 부유한 지주이자 기독교도인 최경흠(崔敬欽)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반석교회 장로였으며, 1919년 3월 4일 임원걸(林元杰)·[[송현근]] 등과 함께 박석면에서 시위를 주동해 형 [[최능찬]]과 함께 600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헌병분견소를 방화하고 형사와 순사보를 살해했다. 이 일로 일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자 변장하고 탈출했으며, 궐석재판에서 [[조진탁]]·송현근·백이옥·윤상열(尹相悅) 등과 함께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 후 열차에서 일제 경찰과 격투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강을 건너 만주로 피신한 그는 목능현 등지에서 교육에 종사하다가 난징으로 이동했다. 그는 그곳에서 1932년 남경중앙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정경호(鄭京浩)·최동호(崔東昊)[*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최동호]]와 동명이인이다.]·연원명(延圓明)·박남파(朴南波) 등과 교유했다. 이후 상하이로 가서 [[윤봉길]]과 함께 폭탄 제조 실험을 하다가 1933년 8월 18일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최능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