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영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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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역사
《동궐도》 영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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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처음 지어는지 모른다. 공식 기록에는 《광해군일기》에 영화당 건설 중지를 언급하는 내용으로 처음 나온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건물을 중건한 건지, 아니면 창건한 건지 역시 명확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광해군 때부터는 존재했다는 것이다. 1692년(숙종 18년)에 고쳐지어 오늘에 이른다.
《궁궐지》에 따르면, 영화당에 선조, 효종, 현종, 숙종이 쓴 편액이 걸려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조가 쓴 영화당 현판을 뺀 나머지는 현재 없다.
《궁궐지》에 따르면, 영화당에 선조, 효종, 현종, 숙종이 쓴 편액이 걸려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조가 쓴 영화당 현판을 뺀 나머지는 현재 없다.
《조선고적도보》 영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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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활용
영화당의 앞쪽에는 넓은 마당 ‘춘당대(春塘臺)’가 있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있어 지금은 구역을 담으로 나누었지만, 조선시대에는 구분이 없었다.
왕들은 영화당과 춘당대를 함께 묶어 활용하였다.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고 신하들에게 음식을 내려주었으며 활을 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과거 시험도 여기서 열었다. 과거에도 단계가 있는데, 각 지방에서 예비 과거 시험인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보는 최종 시험장이 이곳이었다. 그래서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과거를 본 곳으로 나왔다.
왕들은 영화당과 춘당대를 함께 묶어 활용하였다.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고 신하들에게 음식을 내려주었으며 활을 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과거 시험도 여기서 열었다. 과거에도 단계가 있는데, 각 지방에서 예비 과거 시험인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보는 최종 시험장이 이곳이었다. 그래서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과거를 본 곳으로 나왔다.
《영화당친림사선도(暎花堂親臨賜膳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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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징
5. 여담
[1] Movie를 뜻하는 영화의 한자는 ‘映畵’이다.[2] 文廟. 공자의 사당. 성균관에 있다.[3] 부재 끝 부분만 화려하게 칠하는 단청.[4] 부재 끝 부분만 화려하게 칠하는 단청.[5] 나머지는 ‘관풍춘경(觀豊春耕: 관풍각에서의 봄갈이)’, ‘망춘문앵(望春聞鶯: 망춘정에서 꾀꼬리 소리듣기)’, ‘천향춘만(天香春晩: 천향각의 늦봄 경치)’, ‘어수범주(魚水泛舟: 어수당)’, ‘소요유상(逍遙流觴: 소요정 물굽이에서 술잔 띄우고 마시기)’, ‘희우상련(喜雨賞蓮: 희우정에서의 연꽃 구경)’, ‘청심제월(淸心霽月: 청심정에서 보는 개인 날의 맑은 달)’, ‘관덕풍림(觀德楓林: 관덕정의 단풍)’, ‘능허모설(凌虛暮雪: 능허정의 저녁 눈)’이다.[6] 나머지는 ‘관풍춘경(觀豊春耕: 관풍각에서의 봄갈이)’, ‘망춘문앵(望春聞鶯: 망춘정에서 꾀꼬리 소리듣기)’, ‘천향춘만(天香春晩: 천향각의 늦봄 경치)’, ‘어수범주(魚水泛舟: 어수당)’, ‘소요유상(逍遙流觴: 소요정 물굽이에서 술잔 띄우고 마시기)’, ‘희우상련(喜雨賞蓮: 희우정에서의 연꽃 구경)’, ‘청심제월(淸心霽月: 청심정에서 보는 개인 날의 맑은 달)’, ‘관덕풍림(觀德楓林: 관덕정의 단풍)’, ‘능허모설(凌虛暮雪: 능허정의 저녁 눈)’이다.[7] 존덕정, 폄우사, 취규정도 장소로 활용한다.[8] 존덕정, 폄우사, 취규정도 장소로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