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래
재앙이 오히려 복이 되어 돌아오다.
전국 시대 합종책으로 6국(國)(한, 위, 조, 연, 제, 초)의 임금을 돕는 일을 겸임했던 종횡가 소진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국 시대 합종책으로 6국(國)(한, 위, 조, 연, 제, 초)의 임금을 돕는 일을 겸임했던 종횡가 소진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옛날에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했고'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이 되게 했다.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2. 유의어
3. 반의어
- 방향이 반대
- 호사다마(好事多魔): 복이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음. 변수가 많아 예측이 어렵다는 맥락에서는 전화위복과 뜻을 같이 한다.
- 방향이 일직선
- 화불단행(禍不單行): 재앙이 오면 또 다른 재앙이 뒤따름.
4. 예시
4.1. 역사적 사례
- 80년대 초반, 전남의 어느 대입 장수생 일화
3수까지 연이어 낙방하자, 부모님께서 걱정이 태산이었다고 한다. 어머님이 전국의 유명 암자, 사찰을 찾아다니며 기도하시고 "무엇이 좋을지 모른다."는 식의 덕담 듣는게 일과였을 정도. 다행히 4수에서 연세대 정외과에 합격했는데, 그곳에서 다른 학부생들이 특별한 이유없이 데면데면 대하는 학생이랑 친해졌다고 한다. 나중에는 그 학생 집까지 놀러갈 정도로 사이가 좋았는데, 알고 보니 그 집이 보통 집이 아니였고 결국 졸업 후 청와대 외교부서에 특채되었다고 한다.
- 충정로 도끼 사건으로 동대문패와 전투를 벌이는 중 경무대의 경찰의 개입과 유지광의 계락과 함정에 걸리는 바람에 조직전원이 경찰에 체포되어 주먹계 최후를 맞이했던 이화룡과 명동파는 주먹인생을 종지부 찍게되면서 어이없게 감옥에 들어가는 고초를 겪게되었다. 훗날 5.16 군사정변으로 세상이 바뀌고 군사정권에 의해 그들을 괴롭혔던 이정재를 비롯한 자유당 정치깡패들이 박살나면서 자동으로 출소하는 이변이 생겼다. 애시당초 명동파는 정통건달이자, 신사파이터에다 건달과 협객의 선을 긋고 제 값하며 살았었기에. 같은 주먹패라도 걸릴 게 없을정도로 깨끗하고, 애초에 이화룡은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으니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주먹은 정치랑 어울리면 나중에 윗선으로 부터 토사구팽 당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다는 증거. 결국 이화룡은 다른분야에 진출하여 호탕하고 성공한 삶을 살다가 갔다.
셔먼 전차의 가장 큰 약점은 높은 무게중심이었다. 선회하는 도중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옆으로 넘어지는 일이 잦았다. 1944년 12월 헝가리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내가 소대를 이끌고 진격하는 동안 운전병이 커브길에 걸려 전차가 넘어졌고, 우리는 전차 안에서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소대의 나머지 전차들은 계속 진격하다가 기습에 걸려 전멸했기 때문이었다.
-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는 카밀라 파커 보울스에게 푹 빠져 있던 남편 찰스 왕세자에게 외면당했으나 시선을 밖으로 돌려 봉사활동에 일념한 결과 모두에게 좋은 이미지의 왕세자비로 기억되었다.
- 러저 실바리스(Ludger Sylbaris)라는 마르티니크 제도의 흑인은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감옥에서도 죄수들을 폭행한 죄로 반지하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가 살던 생피에르 근처의 몽펠레 화산이 유래없는 대폭발을 하면서 섭씨 1000도 가까이 되는 온도의 화산쇄설류가 엄청 몰려와서 1분만에 생피에르를 덮쳐 주민 30,000명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타거나 녹아 숨졌다. 그런데 실바리스가 갇혀 있던 반지하 감옥은 생피에르를 통틀어 가장 튼튼한 건물이고 창문이 화산 반대쪽으로 나 있어서 깊은 화상을 입긴 했지만 살아남게 되었다. 이 일로 화제가 되어 나중에 그는 유명 서커스 단원이 되었고 화상 상처를 보여주고 그 날의 참사를 회고하는 일로 돈을 벌며 연예인처럼 살았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내며 말했고 화산 폭발로 교도소의 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떤 범죄로 수감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 파리바게뜨의 한 지점은 어느 날 경쟁 업체 지점으로부터 밤식빵에 쥐를 넣었다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되레 그쪽에서 초등학생까지 동원해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나 그 업체가 되레 망해버렸다. 이후, 이 지점은 그쪽 고객들까지 흡수해 더 잘 되고 있다.
- F-15는 원래 MiG-25 '폭스배트'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생겨난 공포감에 의해서 생겨난 전투기이다. 그런데, MiG-25는 정작 미국의 XB-70 발키리 폭격기를 보고 기겁하여 XB-70을 잡기 위해 만들었다.[5] 그러기 위해 넓은 소련의 영토 곳곳에 배치된 방공레이더와 방공관제소에서 식별하자마자 곧바로 출격해 고고도에서 XB-70을 고속으로 따라잡아 미사일로 후두려 패고, 그래도 살아남은 놈들을 도그파이트 식으로 잡는 방식이었다.[6] 문제는 정작 잡아야할 대상인 XB-70이 결국 나가리 크리를 먹었고, MiG-25라는 놈이 이런 전술에 특화되기 위해 오로지 속도에만 몰빵하고 기타 성능들은 다 엉망이었다는 점이다.[7] 이는 1976년 빅토르 벨렌코 중위가 MiG-25를 몰고 일본으로 망명함으로써 전부 드러나버렸고, 결국 둘 다 서로 낚인 셈이 되는 것이지만… 둘 다 낚였다고만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F-15의 경우, F-15는 모두 아시다시피 F-22 랩터를 필두로 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세대가 열리기 이전까지 공대공에서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전투기였다. MiG-25나 거기서 파생된 MiG-31은 제치고서라도 현대 러시아 공군의 뼈대를 이루는 Su-27 패밀리와 MiG-29도 함부로 우세라 칭하기 힘든, 만만찮은 존재이다. 오죽하면 5세대 전투기를 넘어 6세대 전투기까지 거론되는 2019년 현재에도 나름 한 성능을 인정받는 전투기이니... MiG-25 또한 명성이나 소련 군부의 기대치보다는 많이 변변찮았지만, 그래도 미국의 폭격기나 토마호크 미사일을 막는 요격기로서는 나름 인정하고 계속 써먹을 만한 성능을 가진 놈이었고, 현재도 러시아 항공우주군은 이 녀석을 개량한 MiG-31 '폭스하운드'를 자국의 현역 방공요격기로 잘 써먹고 있다. 결론적으로 둘 다 나름 전화위복으로 볼 만 하다.[8]
- 박근혜 정권은 임기 초반에 친중 정책을 실컷 펼쳤으나, 이후 주한미군의 THAAD 배치 계획을 받아들여 한국 영토 내에 무기를 들여놓는 것을 승인하는 바람에 한중관계의 악화를 자초하고야 말았다. 중국 정부의 배신감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사업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특히나 롯데그룹이 이와 관련해 운영 중이던 성주 골프장을 내주기로 국방부와 합의를 한 터라 중국 내에서 가장 타격이 컸다. 중국 정부가 은연중에 비공식적으로 한국을 대상으로 제재를 가하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리하여 많은 한국 기업들이 슬슬 중국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고, 문재인 정권 들어 신남방정책이라고, 동남아시아 지역과 인도로 집중 진출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후 2019년 들어 홍콩의 시위대를 대하는 중국 중앙 정부의 태도가 부각되어 미국 등의 많은 다국적 기업과 대형 단체 등이 골머리를 앓고 있고, '거대한 중국 시장의 단물을 빨아먹자고 언제까지 공산당의 입장에 맞장구만 치고 있을 텐가?'라는 회의론까지 나오고 있는 지경이라, 수많은 한국 기업이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중국 시장을 일찍 빠져나온 셈이 됐다.
- 시메이펑 할머니의 사연은 사실 이 전화위복에 가깝다. 만일 시메이펑 할머니가 저쪽 집 무너진 것을 구경하러 가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
-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설계 당시 현재의 선형에서 영등포역, 고속터미널역, 서울역을 추가로 경유하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이게 왜 전화위복의 사례라면 이미 지금 2호선도 미친듯이 터져나가기에...
- 2020년 중국 폭우 사태로 인해 서해상에 장강에서 쏟아져 나온 담수는 밀도차로 해수와 대류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문제가 있어 수온이 상승하여 태풍 바비가 서해상으로 올라올 당시, 세력이 줄어들지 않고 힘을 받은 상태 그대로 올라오게 되었다. 하지만 태풍이 저염분수를 헤집어놔서 수온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어 저염분수로 인한 어업인의 걱정을 크게 덜 수 있게 되었다.관련 기사
4.2. 일상적 사례
- 새옹지마의 일화
변방에 사는 어떤 노인이 잃어버린 말이 어느 날 굉장히 준수한 말을 데리고 돌아와 사람들이 좋아했으나 이 노인은 그다지 기분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노인의 아들이 그 새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다. 헌데 이 노인은 그렇게 슬퍼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이후 전쟁이 일어나 마을의 모든 청년들이 징병돼 전장으로 끌려갔으나 이 노인의 아들은 다리를 다친 덕에 끌려가지 않았다.
- 탈무드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어떤 여행객이 어느 마을에 방문했다가 숙소에 나귀와 개를 밖에 묶어놨는데, 그 날 밤 사자와 여우가 나타나 나귀와 개를 죽여버렸다. 다음 날 나귀와 개가 없어지자 여행객은 매우 막막해했다. 그런데 마을이 이상하게도 조용했는데 남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발견한 한 마을 여인에게 물어보니 그 여인은 울면서 어젯밤 웬 도적 떼가 마을에 몰려와 재물이란 재물은 다 뺏고 남자란 남자는 다 죽였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여행객은 만약 맹수들이 자기 동물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개와 나귀가 난동을 부려 자기도 꼼짝없이 죽었을 거라면서 감사했다.[13]
- 결과는 좋았다에 나온 사례들.
4.3. 영화/작품/게임/애니
-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는 1990년대에 나올 예정이었지만 저작권 문제로 오랫동안 제작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2000년대로 와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는데 그 사이에 CG 기술이 발전하면서 빌딩 사이를 거미줄을 타고 누비는 스파이더맨의 움직임을 한층 더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어졌다.
- 한국의 온라인 게임 소울워커는 본래 2018년 초만 해도 유저가 거의 없어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 때 소녀전선 K7 업데이트 연기 논란이 확장되어 소울워커에도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흔적이 있음이 발각되었을 때 끝장났다고 여겨졌으나, 이에 곧바로 적절한 공지를 띄우고, 개발진의 적극적인 피드백과 이벤트, 기존 유저들의 적극적인 신규 후원 등으로 갱생했다. 반면 똑같은 상황에서 안일하게 대처하던 클로저스는 완전히 오와콘으로 몰락하는듯 했지만 이후 나딕게임즈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를 문자 그대로 실행하면서 남아있던 유저들을 어떻게 해서든 붙잡았고 이후, 시즌3 + 신캐 파이 윈체스터 출시로 유저수를 사건 이전때로 돌리는데 성공하면서 오와콘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작인 소울워커는 반대로 최근 들어 오와콘이 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 중.
- 애니메이션 감독 오모토 타츠키와 그의 소속사인 야오요로즈는 케모노 프렌즈의 1기 애니메이션으로 죽어가던 IP를 소생시킨 공로가 큼에도 불구하고, 원작자를 포함한 높으신 분들의 모함을 받아 2기 애니를 만들던 도중에 쫓겨나버렸다. 하지만 그 뒤에 아마존 프라임의 훨씬 나은 대우 속에서 만든 오리지널 작품 케무리쿠사가 승승장구하고, 다른 제작진들에 의해 만들어진 케모노 프렌즈의 2기 애니메이션은 악평과 비판응 받은 것도 모자라 제작 과정에서 폭력 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오히려 강판당한 것이 다행이라는 소리가 많아졌다.
- 워해머 판타지는 상품 판매 부진으로 40k와 달리 엔드 타임으로 종결되고 에이지 오브 지그마로 넘어갔지만, 토탈 워: 워해머 시리즈와 버민타이드 시리즈의 성과로 부활에 성공했다. 반면 40k는 pc게임에서 죽을 쑤고 있다.
4.4. 정치
4.4.1. 대한민국
- 조응천은 본래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과 더불어 박근혜 정부의 실세 노릇을 하던 우병우의 전횡을 참다못해 그의 승진을 막았다가 박근혜의 미움을 사서 바로 해고되어 버렸다. 이후 생계를 위해 횟집을 차리면서 해고당한 것에 대한 울분을 달랬는데[18], 얼마 뒤에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되어버린 그에게 더불어민주당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오자 이에 응한 다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공직에 복귀했다. 특히 이거보다 더 운이 좋은 건, 그로부터 얼마되지도 않아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생겼을 때 휘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박근혜 눈 밖에 나서 잘리지 않았다면 자기도 그 패거리들과 함께 뼛속까지 탈탈 털렸을 것이다.[19] 그리고 21대 총선에서도 당선되어 지금은 2선 의원이다.
-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지지율이 지지부진했지만, 문재인과 친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일부 세력이 안철수와 함께 나가버리며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잔류파들은 더불어민주당에 남게 됐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만 해도 국민의당의 영향력도 컸지만, 19대 대통령 선거 때 국민의당의 각종 실책들로 문재인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 윤석열은 박근혜 정부 시절 박근혜 정부의 비리를 수사하다가 정권의 외압으로 지방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겨누는 소신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문재인 정부 때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 송철호는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와 20대 총선에서 박맹우에게 졌고, 특히 20대 총선에서는 단일화를 안해서 석패했다. 하지만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시 현직 울산광역시장이였던 김기현을 10% 이상 차이로 꺾고 울산광역시장에 당선되었다.
- 여주시장 이항진은 원래 식당 사장이였으나 4대강 반대 시위 한 후 근처 차에 펑크가 나는 등 테러를 당해서 식당을 폐업했다. 그 이후 정치에 투신하여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여주시장에 당선되었다.
- 국회의원 여영국은 창원시를 지역구를 한 재선 도의원이였다. 하지만 2018년 선거에서 민중당과 표가 갈려서 석패한 후, 노회찬이 사망한 후 치뤄진 2019년 4.3 재보궐 선거에서 상대편인 강기윤을 대상으로 504표 차이로 이겼고, 경남에서의 진보정당의 위신을 지킬 수 있었다. 만약 여영국이 2018년 당시의 지방선거에서 민중당과 표가 안 갈렸으면, 자연스럽게 재보궐선거는 권민호 vs 강기윤이 되었을 것이고, 정의당의 2석뿐인 지역구중 하나를 잃을 뻔 했다.
- 19대 대통령 문재인은 2020년 1월 말부터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초기 대응에 실패해[21] 중국에 이어 감염자수 세계 2위를 기록하여 보수 쪽에서 공격을 받았으나, 시간이 경과하고 전세계가 코로나 확산으로 혼란에 빠질 때 대한민국은 감염자수가 10위 밖으로 밀려나고, 돋보였던 시민의식, 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개선된 방역 시스템, 뛰어난 공업력과 의료기술을 기반으로 진단키트를 수출, 일본과 대비되던 의료진들의 헌신 등, 이른바 K-방역의 성과로 찬사를 받아 빌 게이츠와 통화하기도 했고 지지율이 크게 올랐다. 그 결과 임기 4년차에 치뤄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얻어 거대여당을 달성하고 레임덕을 차단시켰다.
- 강대식은 대구 동구청장 시절, 유승민을 따라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래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그대로 바른미래당으로 출마하였다가 낙선하였다. 그러나 이후 바른미래당의 후신중 하나인 새로운보수당이 자유한국당과 합당하여 미래통합당이 창당되었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승민이 불출마 함에 따라 그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 을 선거구를 물려받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4.4.2. 외국
4.5. 스포츠
4.5.1. 보편적인 사례
4.5.2. 축구
- 베슬리 스네이더르는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매우 부진한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이적 순위 1위가 됐는데 당시 그를 영입하겠다고 요청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제안을 계속 무시했다. 그러나 레알 측에서 그의 허락도 없이 짐부터 빼버리는 행위를 하는 바람에 결국 인테르에 가게 되었다. 주제 무리뉴 감독 밑에서 만개한 그는 자신을 버린 레알 마드리드에게 화려한 복수를 해 줬다.[27]
- 루카스 포돌스키는 자신이 폴란드 사람임을 잊지 않았고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거절의 소식이 들려왔고 할 수 없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향했으며 그리고 국대스키가 되었다.
- 로렌조 인시녜는 처음에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 들어가고자 했으나 키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29] 거절당했고 하는 수 없이 SSC 나폴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말이 필요없는 나폴리의 아이돌.
- 하비에르 사네티는 하도 트로피와 인연이 없는 것에 지쳐서 2002년에 레알 마드리드 CF로 떠나려고 했었다. 허나 마시모 모라티의 간곡한 설득에 남았고 2005년부터 2010년까지 UEFA 챔피언스 리그 빅 이어를 비롯한 트로피들을 쓸어담았다.[31]
허나 레알은....
- 사무엘 에투는 아프리카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이지만 한때 펩 과르디올라와의 분쟁으로[33] 4800만 유로라는 돈이라는 돈까지 얹어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맞교환되어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가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허나 거기서도 상술한 스네이더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깨부수고 트레블을 해서 다른 팀에서의 2연속 트레블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 그래서 에투는 자신의 인테르행을 지금까지도 자랑거리로 삼고 있을 정도다.
- 17-18시즌 로베르토 갈리아르디니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어버려 할 수 없이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감독 루치아노 스팔레티는 갈리아르디니보다 떨어지는 평을 들으며, 심지어 먹튀 소리까지 듣던 마티아스 베시노[36]를 써야 했다. 처음에 헤매서
어김없이욕을 먹던 베시노였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넣어서 인테르는 7년만에 챔피언스리그에 나가게 되었다![37]
- 아르연 로번은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처음 이적했을 때 한 단계 낮은 팀으로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나,[39] 결과적으로는 뮌헨에서 10년동안 뛰면서 뮌헨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 윙어로 발돋움했다. 특히 자신이 꿈에 그리던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자신의 결승골로 들어올렸으니... 현재 자신이 레알에서 뮌헨으로 이적한 것이 자기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인정했다.
- 파트리크 쉬크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가려 했으나 자금을 동결시켜버린, 인테르를 소유중인 회사 쑤닝에 의해 좌절되었고 하는 수 없이 AS 로마로 이적했다. 선수 개인도 처음엔 좀 헤매다가 어느새 정착했으며, 로마도 리그 3위를 하고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갔다.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는 원래 툴루즈 FC의 이사 디우프를 영입하려 했으나 툴루즈가 값을 너무 비싸게 부르는 통에 할 수 없이 유망주 중 하나를 UC 삼프도리아에게 넘기다시피 하며 그 곳의 수비수 밀란 슈크리니아르를 영입했다. 그리고 팀과 선수 둘 다에게 윈윈이 되었다.
- 유벤투스 FC는 칼치오폴리 이후 주전 선수의 반을 떠나보내고 강등까지 되어 한동안 암흑기를 보냈으나 팀에 남은 몇몇 선수들과 새로이 떠오르는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나 조르조 키엘리니 등을 팀의 차기 상징 및 에이스로 키웠다.
이들 중 일부가 우승횟수+2하는 건 여기서 잠시 넘어가자
-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은 본디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감독이 되고 싶어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발렌시아 CF의 감독이 되었고 그 곳에서 자신의 구상한 바를 잘 이뤄냈는데, 대표적인 게 조프리 콩도비아의 부활. 마르셀리노나 콩도비아에게나 발렌시아로의 이적은 전화위복이었다.
- 우나이 에메리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달리 선수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은퇴한 팀에서 우연히 감독을 맡게 되면서 꽃길을 걸었다.
- 제라르 피케는 FC 바르셀로나 회장이던 아마도르 베르나베우[47]의 외손자다. 외할아버지가 실각하면서 세력 다툼에서 밀리게 되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갔다가 자리를 못 잡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적 첫 해부터 6관왕을 하면서 열심히 트로피를 모으고 샤키라라는 세계적인 여가수와 가정도 이루게 되었다.
- 주제 무리뉴는 아버지가 축구선수여서 자신도 축구로 성공하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20대에 은퇴를 해야 했다. 그리고 감독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고 결국 세계적인 감독이 됐다.
- 호마리우는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아버지가 납치당한다. 아버지와 사이가 매우 좋았던 호마리우는 월드컵에 불참 선언을 했고 정부는 물론 갱단들까지 그의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이에 쫄아버린 납치범들이 알아서 아버지를 풀어주었고 호마리우는 월드컵에 나가 월드컵을 따 냈다.
- 지안루카 디 마르지오는 원래 축구선수였으나 심한 부상을 당해버려 은퇴를 해야 했다. 그래도 축구를 사랑했던 그는 축구 기자로 전업했고 가장 공신력 높은 세리에 A 축구 기자다.
- 마테오 코바치치와 마르첼로 브로조비치는 부진에 빠진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2015년 초 함께 있었으나 그 해 여름 코바치치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챔피언스리그 3연패 등 남부럽지 않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51] 한편 브로조비치는 남아 부진한 팀에서 이런저런 자리에 놓여지다가[52] 한때 매각설까지 나왔으나 결국 팀에 남게 됐다. 그래도 쩌리 취급을 계속 당하던 중 주전이던 마티아스 베시노가 부상으로 이탈하게 되자 대신 나오게 됐는데 각성했다. 샛별처럼 이적 3년만에 팀의 에이스로 떠오른 그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높은 평점을 받으며 챔스 진출에 기여하더니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선 코바치치를 밀어내고 자신이 주전을 차지해 버린다.[53] 월드컵 후에는 자신의 소속팀이 절대 못 데려올 것 같던 시메 브르살리코까지 입김을 불어넣어 데려옴으로서 코바치치가 남았다면 인테르의 팬들이 기대했던 역할까지 수행중.
- 샤페코엔시 감독 카이우 주니오르의 아들은 아버지의 결승전 경기를 구경가려 했지만 여권을 잃어버려 비행기를 못 탔다. 그러나 아버지는 비행기를 타고 떠난 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 혼다 케이스케는 청소년 시절 감바 오사카 입단을 거절당하며 온갖 혹평을 들었으나 상세한 축구일기[60]를 쓰며 노력하여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까지 되었고, 지금은 캄보디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
- 니콜로 자니올로는 원래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기대받는 유망주였으나 라자 나잉골란 거래에 선배 다비데 산톤과 함께 AS 로마로 팔려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기회를 충분히 받으며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 손흥민은 런던 올림픽 때 국가대표팀 차출이 안 돼 병역특례를 받지 못했고, 이는 그의 가치 성장에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때
병역특례를 향한강한 투지를 월드컵 때부터 계속 보여줘 이에 감동해 국내의 국가대표팀 및 그의 팬들도 더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병역특례도 받고.
- 지미 버틀러는 13세 때 친어머니에게 대놓고 버림을 받았다. 결국 길거리에 내앉아 노숙을 하면서 농구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농구하던 다른 소년이 자신의 집으로 그를 초대했는데 그 집에 입양됐다. 이후 그는 농구계의 스타가 되었다.
- 사울 니게스는 원래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에 있었으나 라커룸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는 등 따돌림을 당했다. 이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옮겨가게 되고 거기서 주전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레알전마다 레알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아틀레티코의 차기 아이돌이 되었다.
- 박항서 감독은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코치 생활 이후엔 갖가지 불운이 겹친 것도 있고 해서 쭉 하락세를 타 실업팀에서도 극악의 성적을 내 본인도 자신의 감독 인생이 끝났음을 직감했을 정도로 몰락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 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고 그야말로 역사를 쓰며 베트남의 히딩크로 발돋움했다.
- 축구선수 손웅정은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해야 했지만 여유로운 시간에 유럽에 가서 유소년 축구선수들을 관찰하게 됐고 깨달음을 얻어 귀국해 축구교실을 여는 한편 작은아들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성공.
- 첼시 FC는 레전드 페트르 체흐를 내쫓으면서까지 잘해준 티보 쿠르투아가 배신하자 울며 겨자먹기로 거금에 케파 아리사발라가를 사 온다. 그리고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했으나 쿠르투아는 그러면서 간 레알 마드리드 CF가 부침에 빠지며 무관에 그쳤다.
- FC 바이에른 뮌헨은 2011-12 시즌에 리그 우승을 2년 연속으로 도르트문트에게 내주었고, DFB-포칼 결승에서도 도르트문트에게 2대5로 대패하며 제대로 자존심을 구겼다. 무엇보다 201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뮌헨의 홈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펼쳐졌는데, 첼시에게 패하며[73] 홈 팬들 앞에서 결승전 패배의 비극을 맛봐야 했다. 허나 2012-13 시즌을 앞두고 분노의 영입을 시전하고, 리그 시즌 내내 단 1패만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최단 시간 우승 신기록을 세웠다.[74] 포칼에서는 전 시즌에 패배를 안겨주었던 도르트문트를 8강에서 떨어뜨리며 복수에 성공했고, 결승까지 가서 슈투트가르트를 3대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바르셀로나를 4강에서 합계 7대0으로 우주관광을 시켜주고 떨어뜨린 후 웸블리에서 또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극적인 2대1 승리를 거두며 지난 시즌의 준우승 트레블을 독일 클럽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로 1년 만에 바꿔놓았다.[75][76]
4.5.3. 야구
4.5.4. 기타
-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는 소치 올림픽 당시 김연아를 지나치게 견제한 러시아 측에서 푸쉬 대상으로 꼽혔으나 본인의 실수로 그걸 차버렸다. 본인은 그것을 굉장히 안타까워했지만 그 때 그 푸쉬를 그대로 받아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몰락한 처지를 보면 그녀는 여전히 피겨계에서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으니 전화위복 맞다.
- 농구선수 김민구는 2014년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법적처벌을 받지않고 경고조치 및 사회 봉사활동 120시간 징계에 그쳤으며 장애인 판정을 받아 군면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재활을 마치고 복귀이후 풀타임을 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마디로 음주운전을 해서 이득본 케이스.
- 배구선수 김연경은 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지만, 키가 너무 안자라서 방출될 위기에 있었는데, 그 이후 1년만에 키를 많이 키웠고, 마침내 프로로써 데뷔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9년 현재는 대한민국 여자 배구하면 생각나는 인물 중 1명이 되었다.
- 미국의 피겨스케이터 조엘 펄먼은 다리 부상을 입었다가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허나 그는 수술을 거부하고 단식으로 해결해 다리를 자르지 않아도 됨은 물론이요, 이듬해 우승을 휩쓸었다. 이 때의 경험으로 그는 건강한 음식만 가려먹는 게 매우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고 은퇴 이후 음식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 미국 모든 의사들의 스승이란 찬사까지 듣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연아가 은퇴하고 명의가 된 것.
4.6. 연예계
- 다른 가수가 부를 예정이었던 노래의 일부.
4.6.1. 한국
- 여자친구 그룹 자체
- 가인은 배틀신화에서 떨어진 후 화장실에서 울고 있었는데 그 때 어느 연예계 관계자에게 캐스팅되었다. 그리고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간판 멤버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 참고로 단 몇 개월만 앨범이 없어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아이돌판에서 15년동안 인지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대단한 것이다.
- 비스트 - 하이라이트: 비스트에 들어 온 멤버는 전부 다른 기획사에서 옮겨온 연습생어서 왕비호에게 재활용 그룹으로 까였을 정도다. 그럼에도 히트했으며 이후 하이라이트로 재데뷔한 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한 명은 자신의 행실로 인해 패가망신했다.
- 윤두준: JYP 오디션에서 떨어진 뒤 큐브로 가서 비스트로 데뷔에 성공했다. 이후 원조 남친돌이 되었으며, 하이라이트로 재데뷔한 이후에도 여전히 인지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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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경: 2012년에 조시윤, 유혜인, 전소민, 전재은과 함께 퓨리티로 데뷔했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런칭된 그룹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한국에서의 무대를 단 한번도 가지질 못한채 카라 프로젝트를 위해 해체되었고, 퓨리티를 포기하고 출연한 카라 프로젝트 역시 프로그램 자체의 논란과 더불어 결국 허영지에게 밀려 5위로 탈락했다.[108] 이후 조시윤과 함께 프로듀스 101에 참가했지만, 왕따 논란의 피해자로 동정여론에 휩싸였고, 더불어 거의 10년을 함께해온 조시윤이 8회에서 탈락하고[109] 혼자 외로이 싸우게 되자 막판 스퍼트를 했지만, 결국 16위라는 성적으로 아이오아이 데뷔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결국 막판에 아쉽게 탈락한 연습생들이 모인 I.B.I로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었고, CIVA를 거치며 드디어 2016년 11월, APRIL[110]에 합류하면서 정식 데뷔를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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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이스트: 2012년 데뷔했으나 소속사 플레디스의 푸쉬를 후배 그룹들보다도 받지 못해서 결국 한 멤버를 제외하고 연습생 신분으로 돌아가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참여했다.[113] 그리하여 뉴이스트의 열악한 사정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다시 활동 중이다. 참가자 중 한 명인 황민현은 최고 인기 11인인 Wanna One 멤버로 활동하고 난 뒤에 예능에도 출연을 했다.
- 김종현: 파이널 전 5위에서 14위로 떨어지며 데뷔조에 못 들었지만, 방송 직후 여보세요의 역주행과 더불어 황민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로 뉴이스트W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예능으로 치고 나가면서 황민현과 같이 그룹의 인지도를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후 소속사에서 나간 멤버가 단 한 명도 없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인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에서 같은해 다른 그룹으로 데뷔했고 신인상까지 받았지만, 활동 종료 후 뉴이스트와 달리 연예계를 거의 3년 가까이 떠났던 윤조가 오디션 프로 사상 최고의 드라마를 집필하는 데에는 이 당시 김종현의 탈락으로 충격을 먹었던 러브의 미친 화력이 큰 역할을 했다.
- 정세운 - 비록 최종회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솔로 활동을 하면서 인지도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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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계 한국인 로버트 할리[115]는 2016년 3월 11일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비례대표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 집안 어른들이 옛날부터 공화당(보수성향 정당)에서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11/0200000000AKR20160311180100001.HTML|##]]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경선에서 탈락했는데, 그 새누리당의 운명을 생각해보면... 물론 이 사람은 메스암페타민 투약 혐의로 2019년에 체포된 것도 모자라, 아내와 자식이 멀쩡히 있는데 외국인 남성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탄로나면서 화를 다시 입었다. 물론 평판이 매우 좋기에 후폭풍은 아주 덜했지만...
4.6.2. 외국
- 노기자카46의 하시모토 나나미는 대학 때문에 도쿄에 상경했으나 금전적인 문제가 심해서 머리카락도 한 헤어잡지에서 지원자에게 무료로 잘라준다고 할 때서야 겨우 자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연예인이 되기로 한 계기 또한 촬영장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을 먹기 위해서라고. 그리고 팀의 인기 멤버라는 복신까지 되었다.
- 알베르토 몬디는 본디 축구선수였다. 그러나 21세가 될 때까지 세리에 D에서만 뛰는 자신의 신세를 보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과감히 그만뒀다. 그리고 대학 유학 시절 만난 한국 여학생을 따라 머나먼 한국 땅에 왔고 이후 그녀와 결혼해 가정까지 꾸렸으며 한국에서 자국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어린 나이에 미키마우스 클럽에 나가 이름을 알리자 이를 시기한 친구들에게 대놓고 따돌림을 당했다. 이 경험과 친아버지로부터의 가정폭력의 경험을 바탕으로 <Fighter>를 내고 대히트시켜 그들에게 시원하게 복수했다.
- 제시 제이는 어릴 때 너무 별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으나 이후 가수로 성공하고 그 시절 급우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노래 <Who's Laughing Now?>를 발매했다.
- 베키 지는 9세 때 집안이 너무 어려워져서 6명의 식구가 할아버지 댁의 주차장에서 살 정도였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택한 게 연예인이었고, 마침 베키와의 재능과도 부합해 크게 성공하여 집안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현 히스패닉 아이돌 최고 주자가 되었다.
4.7. 가상의 사례
- 침략! 오징어 소녀의 오징어 소녀는 타케루와 유우타가 초인종 장난을 하고 도망칠때 부딪혔다가 둘에게 초인종 장난 이야기를 듣고는 '나쁜 짓 아냐?' 라고 한마디 하자 그 즉시 유우타의 '침략자 주제에!' 라는 말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 실행을 한다. 그때 한 순간 갑자기 아이자와 치즈루가 이를 발견한다. 오징어 소녀는 초인종 장난이라는 사실이 들키면 혼나기 때문에 키요미의 이름을 듣고 오징어 소녀가 말돌리고 도망치려던 찰나 부활동을 끝내고 집에 온 사쿠라 키요미는 그녀에 의해 공원으로 끌려갔다. 오징어 소녀에게 사정을 청취하고 친구 연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키요미는 이를 거절하고 그 대신 신기하게 생긴 오징어 소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며 정말로 친구가 되어달라고 하여 오징어 소녀와 친구가 된다. 오징어 소녀가 나쁜 짓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녀한테는 제대로 된 친구가 없었던 관계로 키요미와 절친이 된 것은 잘된 일이기는 하다. 물론 초인종 장난은 절대로 하지 말자.
- 벅스라이프의 일개미 플릭은 자신이 발명한 수확 기계가 지지대를 무너뜨려 애써 수확한 곡식을 날려버리고 곡식을 훔치러 온 메뚜기들과 대립하게 되면서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메뚜기들과 싸울 전사들을 찾으러 도시로 향한다. 전사인 줄 알고 데려온 벌레들이 알고보니 그냥 극단이었다는 사실에 돌아오자마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뻔했지만, 메뚜기들의 공격에 곤충들을 결집하게 되면서 결국 하퍼를 무찌른다.
- 이나즈마 일레븐의 이나즈마 재팬 팀은 카게야마 레이지의 장난질로 주장을 포함한 주전 4명이 경기장에 오지 못해 디 엠파이어에 패배한다. 나중에는 승점 1점 차이로 오르페우스에 밀려 A조 2위로 준결승에 진출, B조를 전승으로 통과한 더 킹덤이 준결승 상대가 되지만 파워업한 이나즈마 재팬이 접전 끝에 더 킹덤에 승리하고 며칠 사이 또다시 엄청난 파워업을 해 결승에서 리틀 기간트까지 물리쳐 우승을 차지한다. 리틀 기간트는 B조 2위였기 때문에 만약 이나즈마 재팬이 디 엠파이어에 승리하고 A조 1위를 차지했다면 리틀 기간트가 준결승 상대가 되는데, 리틀 기간트의 진짜 실력으로 봐서는 이나즈마 재팬이 위에서 말한 엄청난 파워업 없이 리틀 기간트를 상대했다면 탈락했을 것이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 스틸 볼 런의 우루무드 압둘은 스틸 볼 런 레이스 최초의 탈락자인데, 본인이 탈락한 후 스틸 볼 런 레이스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나옴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빨리 탈락한 덕분에 목숨을 건진 셈이 되었다. 게다가 그렇게 엄청난 사상자가 나온 원인이 스틸 볼 런 레이스 자체가 스탠드 배틀로 변질된 것이라서 스탠드 유저가 아닌 우루무드 압둘에게는 더더욱 전화위복이라고 볼 수 있다.
[1] 물론, SR-71에 대한 대응 목적도 있었다.[2] 동 회사의 전작인 MiG-15도 이런 설계로 인해 F-86에 비해 도그파이팅에 불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3] 그리고 그 잘난 마하 3짜리 속도(마하 3.25)도 엔진 날려먹는 대가로 낸 속도였다. 착륙해 보니 양 엔진이 이미 전부 새까맣게 타버려 '어떻게 무사히 귀환했는지가 의문이다'라는 평을 들었으니…[4] 특히, MiG-25가. F-15는 5세대 도래 이전까지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었기에 '화'라고 할 만 부분이 별로 '화'라고 부를 수 없다는 의견이 크다…[5] 물론, SR-71에 대한 대응 목적도 있었다.[6] 동 회사의 전작인 MiG-15도 이런 설계로 인해 F-86에 비해 도그파이팅에 불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7] 그리고 그 잘난 마하 3짜리 속도(마하 3.25)도 엔진 날려먹는 대가로 낸 속도였다. 착륙해 보니 양 엔진이 이미 전부 새까맣게 타버려 '어떻게 무사히 귀환했는지가 의문이다'라는 평을 들었으니…[8] 특히, MiG-25가. F-15는 5세대 도래 이전까지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었기에 '화'라고 할 만 부분이 별로 '화'라고 부를 수 없다는 의견이 크다…[9] 당시 미군 전투기의 폭격은 명중률이 낮아 도쿄 시민들은 폭격을 구경하고 있었을 정도였으며 신격호는 운이 없었던 것이다.[10] 당시 미군 전투기의 폭격은 명중률이 낮아 도쿄 시민들은 폭격을 구경하고 있었을 정도였으며 신격호는 운이 없었던 것이다.[11] 판본에 따라 랍비인 경우도 있으며 도중에 바람이 불어서 등불이 꺼져 그대로 잠을 잤다는 이야기도 있다.[12] 판본에 따라 랍비인 경우도 있으며 도중에 바람이 불어서 등불이 꺼져 그대로 잠을 잤다는 이야기도 있다.[13] 판본에 따라 랍비인 경우도 있으며 도중에 바람이 불어서 등불이 꺼져 그대로 잠을 잤다는 이야기도 있다.[14]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아 모자간 사이가 좋지 않았고, 헤르만은 모친상을 당했어도 장례식에 가지 않았을 정도였다.[15]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아 모자간 사이가 좋지 않았고, 헤르만은 모친상을 당했어도 장례식에 가지 않았을 정도였다.[16] 이때 박근혜 일당들에게 복수하려는 의미에서 횟집 이름을 정윤횟집으로 하려다가, 보복을 우려한 측근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다고.[17] 실제로 김어준이 조응천에게 그때 목 안 날아갔으면 지금쯤 청문회에 불려가서 "난 전혀 모릅니다!"라고 오리발 내밀고 있지 않았겠냐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18] 이때 박근혜 일당들에게 복수하려는 의미에서 횟집 이름을 정윤횟집으로 하려다가, 보복을 우려한 측근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다고.[19] 실제로 김어준이 조응천에게 그때 목 안 날아갔으면 지금쯤 청문회에 불려가서 "난 전혀 모릅니다!"라고 오리발 내밀고 있지 않았겠냐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20] 물론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지층에서는 방역 실패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문 대통령을 동정해주기도 했다.[21] 물론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지층에서는 방역 실패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문 대통령을 동정해주기도 했다.[22] 당선이 되였어도 도전한 지역구가 부산인지라 수성하기 쉽지도 않았을테고 할 수 있다고 쳐도 나이도 나이인지라 4~5선을 노리기도 어려웠다.[23] 당선이 되였어도 도전한 지역구가 부산인지라 수성하기 쉽지도 않았을테고 할 수 있다고 쳐도 나이도 나이인지라 4~5선을 노리기도 어려웠다.[24] 미국 양원은 결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지만 의원 개개인으로 봤을 때 상원과 하원은 격의 차이는 엄청나다. 하원의원 '출신' 대통령은 많지만 하원이 바로 대권에 도전해 주목받는 경우는 적어도 근대에 들어서는 없었다. 끽해야 폴 라이언 당시 8선 하원이 부통령 후보로 지목된 것 정도.[25] 미국 양원은 결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지만 의원 개개인으로 봤을 때 상원과 하원은 격의 차이는 엄청나다. 하원의원 '출신' 대통령은 많지만 하원이 바로 대권에 도전해 주목받는 경우는 적어도 근대에 들어서는 없었다. 끽해야 폴 라이언 당시 8선 하원이 부통령 후보로 지목된 것 정도.[26] 당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장소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였고, 레알 마드리드는 챔스 16강 광탈을 했는데 주젭 과르디올라를 사령관으로 세운 바르셀로나는 4강에 올라온 상태였다. 그들의 4강 상대가 다름아닌 인테르. 팽팽한 접전 끝에 인테르가 결승에 올라가자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 스네이더르의 굿즈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27] 당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장소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였고, 레알 마드리드는 챔스 16강 광탈을 했는데 주젭 과르디올라를 사령관으로 세운 바르셀로나는 4강에 올라온 상태였다. 그들의 4강 상대가 다름아닌 인테르. 팽팽한 접전 끝에 인테르가 결승에 올라가자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 스네이더르의 굿즈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28] 현재도 키가 164cm다. 리오넬 메시보다 작다![29] 현재도 키가 164cm다. 리오넬 메시보다 작다![30] 이게 전화위복인 이유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년의 공백이 있기 때문. 32세가 될 때까지 트로피를 따 보지 못했다는 얘기.[31] 이게 전화위복인 이유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년의 공백이 있기 때문. 32세가 될 때까지 트로피를 따 보지 못했다는 얘기.[32] 펩은 자신과 맞지 않는 선수를 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잘근잘근 씹으면서 쫓아낸다. 대표적인 피해자로 이 사무엘 에투 말고도 슈바인슈타이거, 즐라탄, 조 하트가 있다.[33] 펩은 자신과 맞지 않는 선수를 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잘근잘근 씹으면서 쫓아낸다. 대표적인 피해자로 이 사무엘 에투 말고도 슈바인슈타이거, 즐라탄, 조 하트가 있다.[34] 사실 베시노는 이 시즌 전반기엔 좋았다. 얘도 부상으로 도중에 경기에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 본인도 이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국인 우루과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35] 사실 베시노는 이 시즌 모든 로마 원정 경기를 무패로 이끄는 골들을 넣었다.[36] 사실 베시노는 이 시즌 전반기엔 좋았다. 얘도 부상으로 도중에 경기에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 본인도 이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국인 우루과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37] 사실 베시노는 이 시즌 모든 로마 원정 경기를 무패로 이끄는 골들을 넣었다.[38] 로벤이 이적했을 당시 뮌헨을 챔스 우승 후보로 꼽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실력은 엇비슷하지만 인지도 면에서는 지금도 레알이 뮌헨을 압도한다.[39] 로벤이 이적했을 당시 뮌헨을 챔스 우승 후보로 꼽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실력은 엇비슷하지만 인지도 면에서는 지금도 레알이 뮌헨을 압도한다.[40] 바르셀로나에 건너온 후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10시간 넘게 축구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냥 되진 않는 거죠[41] 바르셀로나에 건너온 후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10시간 넘게 축구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냥 되진 않는 거죠[42] 물론 축구도 취미로 하고 있었다.[43] 물론 축구도 취미로 하고 있었다.[44] 반면 형은 사실상 갑작스레 감독이 되었다.[45] 반면 형은 사실상 갑작스레 감독이 되었다.[46]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이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하고는 관계가 의외로(!) 없다고 한다.[47]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이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하고는 관계가 의외로(!) 없다고 한다.[48] 허나 실상은 코바치치는 어떤 넘사벽 선배에게 밀려 교체 출전으로 나온 게 대부분이었다.[49] 각성의 바탕이 이것이었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역시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라더니[50] 한편 코바치치는 명색이 레알 선수인데 국가대표팀 주전도 아니라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그 해 여름 이적을 선언한다. 사실 코바치치는 교체로 나온 적이 많긴 했지만 16-17 시즌에는 선발 출전도 많이 했고 17-18 시즌 부상 이전까지만 해도 좋은 소리를 꽤나 듣고 있었다. 허나 그렇게 이적을 결심한 데는 분명 반 년 전만 해도 자기보다 못했던 브로조비치에게 밀렸던 게 있다. 그리고 이러면서 레알에게 찍혀버렸다고 한다.[51] 허나 실상은 코바치치는 어떤 넘사벽 선배에게 밀려 교체 출전으로 나온 게 대부분이었다.[52] 각성의 바탕이 이것이었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역시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라더니[53] 한편 코바치치는 명색이 레알 선수인데 국가대표팀 주전도 아니라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그 해 여름 이적을 선언한다. 사실 코바치치는 교체로 나온 적이 많긴 했지만 16-17 시즌에는 선발 출전도 많이 했고 17-18 시즌 부상 이전까지만 해도 좋은 소리를 꽤나 듣고 있었다. 허나 그렇게 이적을 결심한 데는 분명 반 년 전만 해도 자기보다 못했던 브로조비치에게 밀렸던 게 있다. 그리고 이러면서 레알에게 찍혀버렸다고 한다.[54] 대표적인 아웃풋으론 이반 페리시치가 있다.[55] 대표적인 아웃풋으론 이반 페리시치가 있다.[56] 한편 탑승자 명단에는 그대로 아그놀레투가 올라가 있어서, 아그놀레투의 부인은 한동안 조문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57] 자기가 먹은 식단의 영양소까지 적어놓았다.[58] 한편 탑승자 명단에는 그대로 아그놀레투가 올라가 있어서, 아그놀레투의 부인은 한동안 조문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59] 한편 탑승자 명단에는 그대로 아그놀레투가 올라가 있어서, 아그놀레투의 부인은 한동안 조문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60] 자기가 먹은 식단의 영양소까지 적어놓았다.[61] 이 부모님이 사업을 해서 사업 특혜 받으려고 입양했다는 의혹을 피하려 했다고 한다.[62] 이 부모님이 사업을 해서 사업 특혜 받으려고 입양했다는 의혹을 피하려 했다고 한다.[63] 여담으로 공부까지 굉장히 잘했다고 한다! 상상이 안 되는데?[64] 여담으로 공부까지 굉장히 잘했다고 한다! 상상이 안 되는데?[65] 그 대신 부모님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해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도 마약보다는 돈은 안 되지만 떳떳하다고 생각했기에 아이스크림을 팔았다고.[66] 그 대신 부모님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해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도 마약보다는 돈은 안 되지만 떳떳하다고 생각했기에 아이스크림을 팔았다고.[67] 중간에 웨스트햄 임대간 것도 있긴 하다.[68] 중간에 웨스트햄 임대간 것도 있긴 하다.[69] 그것도 정말 뼈아프게 졌다. 경기 막판 뮐러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드록바에게 바로 동점골을 허용하며 연장전으로 갔고, 연장전에서는 페널티킥을 얻었는데 로벤이 실축하며 승부차기까지 갔다. 심지어 승부차기에서도 노이어가 마타의 킥을 먼저 막았는데 올리치와 슈바인슈타이거가 내리 실축하며 첼시에게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드라마 각본을 써도 이 정도로 쓰면 욕 먹을 정도인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으니 팀 분위기가 어땠을지...[70] 근데 이 기록은 바로 다음 시즌에 깨지게 된다. 그것도 뮌헨 본인들에게.[71] 참고로 챔스 결승에서 결승골을 넣은 선수는 다름 아닌 지난해 페널티킥을 실축했던 로벤이었다.[72] 여담으로 뮌헨을 잡고 챔스에서 우승한 첼시는 그 해에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며(...) 유로파리그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유로파에서 우승하며 뮌헨과 UEFA 슈퍼컵에서 만났는데, 이번에는 뮌헨이 후반 막판에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 첼시를 이겼다. 완전히 역지사지인 셈.[73] 그것도 정말 뼈아프게 졌다. 경기 막판 뮐러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드록바에게 바로 동점골을 허용하며 연장전으로 갔고, 연장전에서는 페널티킥을 얻었는데 로벤이 실축하며 승부차기까지 갔다. 심지어 승부차기에서도 노이어가 마타의 킥을 먼저 막았는데 올리치와 슈바인슈타이거가 내리 실축하며 첼시에게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드라마 각본을 써도 이 정도로 쓰면 욕 먹을 정도인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으니 팀 분위기가 어땠을지...[74] 근데 이 기록은 바로 다음 시즌에 깨지게 된다. 그것도 뮌헨 본인들에게.[75] 참고로 챔스 결승에서 결승골을 넣은 선수는 다름 아닌 지난해 페널티킥을 실축했던 로벤이었다.[76] 여담으로 뮌헨을 잡고 챔스에서 우승한 첼시는 그 해에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며(...) 유로파리그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유로파에서 우승하며 뮌헨과 UEFA 슈퍼컵에서 만났는데, 이번에는 뮌헨이 후반 막판에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 첼시를 이겼다. 완전히 역지사지인 셈.[77] SK와 승무패가 완전히 동일하여 당연히 승률도 같았지만 전술한 대로 더블헤더를 스윕한 것이 9승 7패로 우위를 점하게 되어 규정상 두산이 정규리그 우승팀이 되었다.[78] SK와 승무패가 완전히 동일하여 당연히 승률도 같았지만 전술한 대로 더블헤더를 스윕한 것이 9승 7패로 우위를 점하게 되어 규정상 두산이 정규리그 우승팀이 되었다.[79] 자기를 뽑아준 사장 이호연이 쓰러지고 그 이후 회사가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나는 바람에 데뷔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장신을 선호하는 이호연의 취향에는 맞았지만 와병 이후 멤버 키가 여자 평균치까지 뚝 떨어지면서 173의 장신인 김소정이 설 입지가 없었다. (키 관련은 추정이나 나머지는 사실이다.)[80] 참고로 당시 같이 있었던 연습생 중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데뷔 이후 소감에서 그걸 밝힌 적도 있었다.[81] 실제로는 거의도 아닌, 말 그대로 신생 영세 기획사였다. 말 그대로 소성진 + 몇 명만 있었다. 그때는 몰랐겠지, 이들이 갓자친구가 되고 방탄 기획사랑 합병할 정도로 크게 자랄 줄은 몰랐겠지[82] 이쪽은 정확히 전화위복의 반대 케이스다.[83] 한 명은 다름아닌 DIA 멤버 제니다.[84] 자기를 뽑아준 사장 이호연이 쓰러지고 그 이후 회사가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나는 바람에 데뷔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장신을 선호하는 이호연의 취향에는 맞았지만 와병 이후 멤버 키가 여자 평균치까지 뚝 떨어지면서 173의 장신인 김소정이 설 입지가 없었다. (키 관련은 추정이나 나머지는 사실이다.)[85] 참고로 당시 같이 있었던 연습생 중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데뷔 이후 소감에서 그걸 밝힌 적도 있었다.[86] 실제로는 거의도 아닌, 말 그대로 신생 영세 기획사였다. 말 그대로 소성진 + 몇 명만 있었다. 그때는 몰랐겠지, 이들이 갓자친구가 되고 방탄 기획사랑 합병할 정도로 크게 자랄 줄은 몰랐겠지[87] 이쪽은 정확히 전화위복의 반대 케이스다.[88] 한 명은 다름아닌 DIA 멤버 제니다.[89] 자기를 뽑아준 사장 이호연이 쓰러지고 그 이후 회사가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나는 바람에 데뷔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장신을 선호하는 이호연의 취향에는 맞았지만 와병 이후 멤버 키가 여자 평균치까지 뚝 떨어지면서 173의 장신인 김소정이 설 입지가 없었다. (키 관련은 추정이나 나머지는 사실이다.)[90] 참고로 당시 같이 있었던 연습생 중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데뷔 이후 소감에서 그걸 밝힌 적도 있었다.[91] 실제로는 거의도 아닌, 말 그대로 신생 영세 기획사였다. 말 그대로 소성진 + 몇 명만 있었다. 그때는 몰랐겠지, 이들이 갓자친구가 되고 방탄 기획사랑 합병할 정도로 크게 자랄 줄은 몰랐겠지[92] 이쪽은 정확히 전화위복의 반대 케이스다.[93] 한 명은 다름아닌 DIA 멤버 제니다.[94] 참고로 여기에도 당시 같이 있었던 연습생 중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었으며, 허영지를 제외한 카라 멤버들 중에도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95] 여기서 조시윤과 윤채경의 운명이 갈라졌다. 이후 조시윤은 프로듀스 101 탈락 후, 배우로 전향했고 별 활동을 하지 못한 채 2018년 8월에 DSP미디어에서 퇴사했다.[96] 여담으로 카라 프로젝트 최종 4위였던 멤버가 이 그룹에 존재했다. 참 기묘한 운명이다.[97] 그래서 GOOD GIRL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할 당시, 자조적으로 엠넷의 딸이라 표현했다. 실제로 네이처 합류 이전의 행적이 대부분 엠넷과 관련이 있다.[98] 데뷔한 지 꽤 된 아이돌이 이런 결정을 하기에는 자존심을 갖다 버려야 한다.[99] 참고로 여기에도 당시 같이 있었던 연습생 중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었으며, 허영지를 제외한 카라 멤버들 중에도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100] 여기서 조시윤과 윤채경의 운명이 갈라졌다. 이후 조시윤은 프로듀스 101 탈락 후, 배우로 전향했고 별 활동을 하지 못한 채 2018년 8월에 DSP미디어에서 퇴사했다.[101] 여담으로 카라 프로젝트 최종 4위였던 멤버가 이 그룹에 존재했다. 참 기묘한 운명이다.[102] 그래서 GOOD GIRL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할 당시, 자조적으로 엠넷의 딸이라 표현했다. 실제로 네이처 합류 이전의 행적이 대부분 엠넷과 관련이 있다.[103] 데뷔한 지 꽤 된 아이돌이 이런 결정을 하기에는 자존심을 갖다 버려야 한다.[104] 참고로 여기에도 당시 같이 있었던 연습생 중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었으며, 허영지를 제외한 카라 멤버들 중에도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105] 여기서 조시윤과 윤채경의 운명이 갈라졌다. 이후 조시윤은 프로듀스 101 탈락 후, 배우로 전향했고 별 활동을 하지 못한 채 2018년 8월에 DSP미디어에서 퇴사했다.[106] 여담으로 카라 프로젝트 최종 4위였던 멤버가 이 그룹에 존재했다. 참 기묘한 운명이다.[107] 그래서 GOOD GIRL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할 당시, 자조적으로 엠넷의 딸이라 표현했다. 실제로 네이처 합류 이전의 행적이 대부분 엠넷과 관련이 있다.[108] 참고로 여기에도 당시 같이 있었던 연습생 중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었으며, 허영지를 제외한 카라 멤버들 중에도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109] 여기서 조시윤과 윤채경의 운명이 갈라졌다. 이후 조시윤은 프로듀스 101 탈락 후, 배우로 전향했고 별 활동을 하지 못한 채 2018년 8월에 DSP미디어에서 퇴사했다.[110] 여담으로 카라 프로젝트 최종 4위였던 멤버가 이 그룹에 존재했다. 참 기묘한 운명이다.[111] 그래서 GOOD GIRL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할 당시, 자조적으로 엠넷의 딸이라 표현했다. 실제로 네이처 합류 이전의 행적이 대부분 엠넷과 관련이 있다.[112] 데뷔한 지 꽤 된 아이돌이 이런 결정을 하기에는 자존심을 갖다 버려야 한다.[113] 데뷔한 지 꽤 된 아이돌이 이런 결정을 하기에는 자존심을 갖다 버려야 한다.[114] 국적을 바꿨으므로 엄연히 한국인이며 방송에서 쓰는 원래 이름은 예명에 가깝기 때문에 여기에 등재했다.[115] 국적을 바꿨으므로 엄연히 한국인이며 방송에서 쓰는 원래 이름은 예명에 가깝기 때문에 여기에 등재했다.[116]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당시 빅히트는 인지도가 없는 신생 기획사였다.[117]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당시 빅히트는 인지도가 없는 신생 기획사였다.[118]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당시 빅히트는 인지도가 없는 신생 기획사였다.[119] 이 기사를 보자[120] 특히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광고는 주이의 인지도를 엄청 높였다.[121] 오히려 낸시는 한국에서는 받는 푸시에 비해 못 뜨는 케이스가 됐다. 그래도 그룹 내 받는 비중은 여전하며 한국에서 못 떴다 해도 그룹 자체가 해외 팬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오히려 팬덤 내에서의 인기는 낸시가 높다.[122] 이 기사를 보자[123] 특히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광고는 주이의 인지도를 엄청 높였다.[124] 오히려 낸시는 한국에서는 받는 푸시에 비해 못 뜨는 케이스가 됐다. 그래도 그룹 내 받는 비중은 여전하며 한국에서 못 떴다 해도 그룹 자체가 해외 팬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오히려 팬덤 내에서의 인기는 낸시가 높다.[125] 정확히는 음악 선생이 목소리가 염소 울음소리 같다고 했단다.[126] 정확히는 음악 선생이 목소리가 염소 울음소리 같다고 했단다.[127] 컨트리는 국내의 트로트 같은 위상이다.[128] 그녀도 라디오에 노래 CD 보내면서 자신이 직접 만든 쿠키와 함께 제발 노래를 한 번만 틀어달라는 편지를 많이 써 보낸 적이 있었다.[129] 컨트리는 국내의 트로트 같은 위상이다.[130] 그녀도 라디오에 노래 CD 보내면서 자신이 직접 만든 쿠키와 함께 제발 노래를 한 번만 틀어달라는 편지를 많이 써 보낸 적이 있었다.[131] 원래 요리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서 먹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비웃었다고.[132] 영국 가디언 지가 최근 수년간 가장 성공적인 식단조절 요리책이라고 극찬을 했을 정도였다. 또한 한국에서도 엘라처럼 : 쉽게 만드는 맛있는 자연식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여기에선 여자 제이미 올리버란 기믹으로까지 얘기했다.[133] 원래 요리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서 먹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비웃었다고.[134] 영국 가디언 지가 최근 수년간 가장 성공적인 식단조절 요리책이라고 극찬을 했을 정도였다. 또한 한국에서도 엘라처럼 : 쉽게 만드는 맛있는 자연식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여기에선 여자 제이미 올리버란 기믹으로까지 얘기했다.[135] 다만, 이것도 위의 카와에이 리나의 예처럼 몇 년은 두고 봐야 안다. 켄온은 주력 배우들이 이미 중년이고 젊은 세대 배우는 전멸한 회사이며, 레나가 들어간 성우 회사도 그리 큰 회사는 아니라 어디까지 성장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136] 다만, 이것도 위의 카와에이 리나의 예처럼 몇 년은 두고 봐야 안다. 켄온은 주력 배우들이 이미 중년이고 젊은 세대 배우는 전멸한 회사이며, 레나가 들어간 성우 회사도 그리 큰 회사는 아니라 어디까지 성장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137] 당시는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138] 당시는 히라가나 케야키자카46[139] 게다가 바이올렛 시스템즈 자체가 미시마 재벌만큼은 아니어도 자금력도 있고, 사장인 리가 직원들에게 복지 포함해 여러가지로 신경을 많이 써준다니, 회사 내의 입지도 튼실하다.[140] 게다가 바이올렛 시스템즈 자체가 미시마 재벌만큼은 아니어도 자금력도 있고, 사장인 리가 직원들에게 복지 포함해 여러가지로 신경을 많이 써준다니, 회사 내의 입지도 튼실하다.[141] 누명은 같은 편을 공격한 전적이 있는 레드가 뒤집어쓰고 쫓겨났다.[142] 누명은 같은 편을 공격한 전적이 있는 레드가 뒤집어쓰고 쫓겨났다.[143] 누명은 같은 편을 공격한 전적이 있는 레드가 뒤집어쓰고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