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대 이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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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대 이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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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706년(숙종 32년)[7] 6월 7일에 한성부 서부 인달방 증조할아버지 이홍일 자택에서 덕흥대원군 7대 사손 이명회와 정부인 평산 신씨 사이의 적장자로 태어났다.
1722년(경종 2년)에 일어난 임인사화 때 작은 증조할아버지 이홍술과 큰아버지 이명좌가 처형당하고 아버지 이명회 역시 전라도 부안현 위도로 귀양가자 당시 17세 소년에 불과했던 이형종 역시 집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하였다.
사실 임인사화는 소론 측에서 노론을 찍어내리려는 무고에 가까웠다. 그래서 영조가 즉위하고 1년 뒤인 1725년 3월에 연좌받았던 친족들이 전부 신원받으면서 그도 도정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버지 이명회가 큰아버지 이명좌 대신 덕흥대원군의 제사를 받드는 도정궁 사손이 되면서 이형종은 도정궁의 후계자가 되었다. 1727년(영조 3년) 이명회가 죽은 후 사손 지위를 물려받아 돈녕도정(敦寧都正)에 제수받았다. 이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와 오위도총부 부총관(副摠管)을 거쳐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로 임명받았다.
1722년(경종 2년)에 일어난 임인사화 때 작은 증조할아버지 이홍술과 큰아버지 이명좌가 처형당하고 아버지 이명회 역시 전라도 부안현 위도로 귀양가자 당시 17세 소년에 불과했던 이형종 역시 집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하였다.
사실 임인사화는 소론 측에서 노론을 찍어내리려는 무고에 가까웠다. 그래서 영조가 즉위하고 1년 뒤인 1725년 3월에 연좌받았던 친족들이 전부 신원받으면서 그도 도정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버지 이명회가 큰아버지 이명좌 대신 덕흥대원군의 제사를 받드는 도정궁 사손이 되면서 이형종은 도정궁의 후계자가 되었다. 1727년(영조 3년) 이명회가 죽은 후 사손 지위를 물려받아 돈녕도정(敦寧都正)에 제수받았다. 이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와 오위도총부 부총관(副摠管)을 거쳐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로 임명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