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조선의 왕족 출신 문신으로 덕흥대원군의 제사를 받드는 종가인 도정궁의 제8대 사손(嗣孫)[6] 이형종(李亨宗)과 그의 첫 부인 은진 송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1747년 9월에 낙천군의 양자로 봉해져 이름도 '철해(喆楷)'에서 '영(泳)'으로 바꾸고 '달선군(達善君)'에 봉작받아 정식 왕족이 되었다.[7][8]
그러나 낙천군 부인이자 달선군의 양어머니였던 서씨 부인이 성격이 좀 못되었던 것 같다. 걸핏하면 달선군과 달선군의 부인 신씨를 굉장히 많이 괴롭혀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하고 불과 1년 뒤인 1748년 약을 먹고 자살하고 말았다. 이 때 나이 겨우 18세였다.[9]
1747년 9월에 낙천군의 양자로 봉해져 이름도 '철해(喆楷)'에서 '영(泳)'으로 바꾸고 '달선군(達善君)'에 봉작받아 정식 왕족이 되었다.[7][8]
그러나 낙천군 부인이자 달선군의 양어머니였던 서씨 부인이 성격이 좀 못되었던 것 같다. 걸핏하면 달선군과 달선군의 부인 신씨를 굉장히 많이 괴롭혀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하고 불과 1년 뒤인 1748년 약을 먹고 자살하고 말았다. 이 때 나이 겨우 18세였다.[9]
3. 사후
서씨 부인은 양자가 자살했어도 애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영조에게 파양을 청하였고, 영조가 이 부탁을 들어주어 달선군은 사망 2년 뒤인 1750년(영조 26년) 2월에 사후 파양당했다.[10] 그 뒤 정조가 즉위한 후 유배지에서 죽은 이복 동생 은신군을 연령군의 사후 양손자 형식으로 보내었고, 은신군 또한 인평대군의 후손 남연군을 입양하였다. 남연군의 자손은 번창하여 현재 연령군 - 낙천군의 대를 잇고 있다. 참고로 이 가문에서 조선 마지막 왕통인 고종, 순종이 나왔다.
이후 달선군 본인의 후사는 달선군의 친형이자 도정궁 9대 사손인 이풍의 차남 이민식이 양자로 들어와 이었다.
이후 달선군 본인의 후사는 달선군의 친형이자 도정궁 9대 사손인 이풍의 차남 이민식이 양자로 들어와 이었다.
[1] 본문 참조.[2] 계보 상으로는 은신군이 3대 종주여야 하나, 죽은 후 연령군가에 양자로 입적된 것이기 때문에 생전에는 계동궁의 종주가 아니었다.[3] 본문 참조.[4] 계보 상으로는 은신군이 3대 종주여야 하나, 죽은 후 연령군가에 양자로 입적된 것이기 때문에 생전에는 계동궁의 종주가 아니었다.[5] 이하 날짜 표기는 전부 음력.[6] 제사를 받드는 후손이란 뜻이다.[7] 출처 : <조선왕조실록> - 영조 실록 66권, 1747년(영조 23년) 9월 4일 신묘 4번째 기사.[8] 군호는 대구광역시의 별칭 달성(達城)에서 유래했다.[9] 만 17세.[10]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