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훼손
파일:/image/047/2010/09/06/1283752142.672210_IE001232276_STD.jpg
중앙정보부에 의해 훼손된 시기의 의릉
경종은 세자 시절부터 즉위하고 승하할 때까지 어떻게 생각하면 참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군주였고, 죽어서도 안습했다.
경종의 뒤를 이었던 영조가 긴 재위 끝에 죽고 16년이 지난 정조 16년에 윤구종이 혜릉(경종의 왕비인 단의왕후 심씨의 무덤) 앞에서 "이 무덤에서도 말에서 내려야 하나?"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는 혐의로 붙잡아 국문하니 "의릉(경종의 능호)에 신하 노릇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하였다. 경종에게는 신하로서 충성하고 싶지 않았다는 뜻. 그러자 정조가 "아니 선왕의 효성과 우애는 모두가 알아주는데 어찌 이럴수 있냐?"라고 한 적이 있다. '이게 무슨 흉악한 발언이며. 천지간의 사람으로서 어찌 이처럼 극악한 말을 할 수 있는가'라며 경악하였고 조정 대신들도 이에 동조했다. 당대 사람들도 영조가 경종에 대해 보인 우애를 진심으로 믿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거니와, 엄연히 경종 역시 한 시대의 국왕이었고 그 ‘삼종혈맥(효종-현종-숙종)’을 이어받은 정통성이 보증된 군주였다. 반상 구분이나 예법 엄격하게 따지던 왕조국가 조선에서 국왕의 능침 앞에서 말 타고 지나가면서 내리지도 않았다는 시점에서 이미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거나 다름없다. 당연히 윤구종은 역적 수준으로 국문을 받았고, 이를 이기지 못했는지 처벌받기도 전에 사망했다.
이 윤구종 사건은 원래 정언 유성한이 정조에게 "너님 공부도 안 하는데다 여악이 난잡하게 논다는데 그래서야 되겠음??"이라는 불온한 상소[1]를 올려서 신하들이 죄를 줄 것을 청하며 뒷배경을 조사하다가 밝혀진 것으로 채제공을 비롯한 남인들은 유성한이 과거 사도세자를 핍박하는 발언을 한 것과 유성한과 윤구종이 같은 패거리임을 거론하며 "경종 전하에게 충성을 다 하지 않는 역적 놈들이 사도세자를 핍박했는데 이런 자들이 경종과 영조, 사도세자에게는 충성했겠음???"을 주장하며 사도세자 신원 문제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싫어요?->질어요?->좋아요?? 두음법칙에 따라 좋다는 뜻이로군!! 이후 같은 해에 영남 유생들이 올라와 사도세자의 추승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니 이것이 바로 영남 만인소였다. 경종의 죽음부터 사도세자의 죽음까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 된 것.
압권은 1960년대 이 의릉 가까운 자리에 중앙정보부 이문동 청사[2]가 들어섰을 때 중정 직원들이 능 앞에다 자기들 놀이터를 만들었다(…). 농담 아니고 정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덤 앞에다 연못과 계곡을 만들고 거기다가 비단잉어를 풀었다. 실제로 연못을 밀어내기 전만 해도 의릉 매표소에서는 잉어 먹이를 팔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다 밀어냈다. 현재 이 자리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으며 구 중앙정보부의 강당으로 쓰던 건물이 남아 있다. 이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고 여기서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훼손된 시기의 의릉
경종은 세자 시절부터 즉위하고 승하할 때까지 어떻게 생각하면 참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군주였고, 죽어서도 안습했다.
경종의 뒤를 이었던 영조가 긴 재위 끝에 죽고 16년이 지난 정조 16년에 윤구종이 혜릉(경종의 왕비인 단의왕후 심씨의 무덤) 앞에서 "이 무덤에서도 말에서 내려야 하나?"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는 혐의로 붙잡아 국문하니 "의릉(경종의 능호)에 신하 노릇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하였다. 경종에게는 신하로서 충성하고 싶지 않았다는 뜻. 그러자 정조가 "아니 선왕의 효성과 우애는 모두가 알아주는데 어찌 이럴수 있냐?"라고 한 적이 있다. '이게 무슨 흉악한 발언이며. 천지간의 사람으로서 어찌 이처럼 극악한 말을 할 수 있는가'라며 경악하였고 조정 대신들도 이에 동조했다. 당대 사람들도 영조가 경종에 대해 보인 우애를 진심으로 믿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거니와, 엄연히 경종 역시 한 시대의 국왕이었고 그 ‘삼종혈맥(효종-현종-숙종)’을 이어받은 정통성이 보증된 군주였다. 반상 구분이나 예법 엄격하게 따지던 왕조국가 조선에서 국왕의 능침 앞에서 말 타고 지나가면서 내리지도 않았다는 시점에서 이미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거나 다름없다. 당연히 윤구종은 역적 수준으로 국문을 받았고, 이를 이기지 못했는지 처벌받기도 전에 사망했다.
이 윤구종 사건은 원래 정언 유성한이 정조에게 "너님 공부도 안 하는데다 여악이 난잡하게 논다는데 그래서야 되겠음??"이라는 불온한 상소[1]를 올려서 신하들이 죄를 줄 것을 청하며 뒷배경을 조사하다가 밝혀진 것으로 채제공을 비롯한 남인들은 유성한이 과거 사도세자를 핍박하는 발언을 한 것과 유성한과 윤구종이 같은 패거리임을 거론하며 "경종 전하에게 충성을 다 하지 않는 역적 놈들이 사도세자를 핍박했는데 이런 자들이 경종과 영조, 사도세자에게는 충성했겠음???"을 주장하며 사도세자 신원 문제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압권은 1960년대 이 의릉 가까운 자리에 중앙정보부 이문동 청사[2]가 들어섰을 때 중정 직원들이 능 앞에다 자기들 놀이터를 만들었다(…). 농담 아니고 정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덤 앞에다 연못과 계곡을 만들고 거기다가 비단잉어를 풀었다. 실제로 연못을 밀어내기 전만 해도 의릉 매표소에서는 잉어 먹이를 팔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다 밀어냈다. 현재 이 자리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으며 구 중앙정보부의 강당으로 쓰던 건물이 남아 있다. 이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고 여기서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3. 교통편
여담이지만 의릉은 택시 기사들도 그 위치를 잘 몰라서 의릉으로 가달라고 하면 잘 모르는 기사들이 많고, '안기부 자리 가 주세요'라고 하거나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요' 해야 가기 쉽다. 뭐 어차피 내비게이션 있으니까 큰 상관은 없지만. 오늘날에도 서울에 오래 살았던 중장년층은 의릉 부지를 '안기부 자리'로 기억하며 그 당시에는 이 주변이 굉장히 삼엄했다고 회상하는 경우가 많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려면 지하철의 경우 수도권 전철 1호선 신이문역에서 하차하여 걸어가거나, 혹은 서울 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에서 하차하여 걸어가거나 7번 출구 앞 버스 정류장에서 서울 버스 120, 서울 버스 147, 서울 버스 1222, 서울 버스 261번을 타고 의릉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