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이 일어난 후, 후금(훗날 청)은 조선과 정묘조약을 맺었는데, 그중에는 조선의 왕자를 후금에 볼모로 보내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인조는 급히 원창부령[2] 이구를 원창군으로 봉해 왕의 동생을 가장하게 하여[3] 많은 공물을 가지고 가 화의와 철군을 요청했다.#
후에 이홍망(李弘望) 등과 후금에 가서 두 나라의 우호를 증진시켰다 하며, 돌아올 때는 후금의 장수 유흥조(劉興祚), 용골대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왔다고 한다.
1631년(인조 9년)에는 후금 사신이 왔는데도 외방에 있어서 만나지 않아 파직당했다.#
이에 인조는 급히 원창부령[2] 이구를 원창군으로 봉해 왕의 동생을 가장하게 하여[3] 많은 공물을 가지고 가 화의와 철군을 요청했다.#
후에 이홍망(李弘望) 등과 후금에 가서 두 나라의 우호를 증진시켰다 하며, 돌아올 때는 후금의 장수 유흥조(劉興祚), 용골대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왔다고 한다.
1631년(인조 9년)에는 후금 사신이 왔는데도 외방에 있어서 만나지 않아 파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