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왕자군]][[분류:전주 이씨 운천군파]] ----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94153E> {{{#gold '''조선 성종의 현손'''[br]{{{+1 '''원창군[br] 原昌君'''}}}}}} || ||<-2><width=30%><bgcolor=#94153E> '''[[작호|{{{#gold 작호}}}]]''' ||<(> 원창부령(原昌副令) → 원창군(原昌君) || ||||<:><bgcolor=#94153E> '''[[본관|{{{#gold 본관}}}]]''' ||<(> [[전주 이씨|전주]](全州) || ||||<:><bgcolor=#94153E> '''[[이름|{{{#gold 이름}}}]]''' ||<(> 구(玖)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의 [[왕족]]. [[성종(조선)|성종]]의 14남 [[운천군|운천군 이인(雲川君 李𪬦)]]의 증손자이다. [[인조]]에게는 숙부 뻘 [[항렬]]로[* 즉, [[광해군]], [[정원군]]과 같은 항렬.] 9촌 지간이다. == 생애 ==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이 일어난 후, [[후금]](훗날 [[청나라|청]])은 [[조선]]과 정묘조약을 맺었는데, 그중에는 조선의 왕자를 [[후금]]에 [[볼모]]로 보내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인조]]는 급히 원창부령[* 副令. [[종친부]]의 종 5품 작위이다. 부령은 사실상 이름만 왕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구를 원창군으로 봉해 왕의 동생을 가장하게 하여[* 실제로는 위에 썼듯, 9촌 '''숙부'''이다.] 많은 [[공물]]을 가지고 가 화의와 철군을 요청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pa_10502013_004|#]] 후에 이홍망(李弘望) 등과 [[후금]]에 가서 두 나라의 우호를 증진시켰다 하며, 돌아올 때는 후금의 [[장수]] 유흥조(劉興祚), [[용골대]]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왔다고 한다. 1631년(인조 9년)에는 [[후금]] [[사신]]이 왔는데도 외방에 있어서 만나지 않아 파직당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pa_10903012_001|#]] == 여담 == * 원창군과 비슷하게, 왕실 직계와 먼 종친이면서 가까운 왕족으로 둔갑당해 [[청나라]]에 끌려갔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의순공주]]이다. 그는 [[성종(조선)|성종]]의 9남(서7남) [[익양군]]의 현손녀로, [[청나라]]가 당시의 섭정왕이었던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의 새 친왕비로 조선의 공주를 맞이하고 싶다며 보내달라고 요구했을 때, [[효종(조선)|효종]]의 양녀가 된 후 청나라로 갔다. 그런데 이후의 삶이 너무나도 슬프다. 자세한 내용은 [[의순공주]] 항목 참조.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구, version=117, paragraph=2, title2=의순공주, version2=69, paragraph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