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종의 왕자
순평군 順平君 | ||
순평군(順平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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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간(忠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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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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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羣生 / 群生)[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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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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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
| 숙의 기씨(淑儀 奇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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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 군부인 순창 설씨(淳昌 薛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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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2남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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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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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 ||
1. 개요
2. 생애
3. 사망과 이후
4. 여담
- 순평군은 나이 40이 되도록 글을 깨치지 못했다. 종친이 무슨 글을 모르겠냐고 할 수 있지만, 의외로 왕족들 중에서 저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순평군처럼 글 한 자도 모르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학식과 교양이 부족한 경우 역시 꽤 많았다. 똑똑하다거나 열심히 공부한다거나 하면 왕위를 노린다는 괜한 의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순평군은 40이 넘어서 종친들을 교육하는 학교인 종학(宗學)에 입학했다. 그리고 첫 수업 때 《효경(孝經)》을 배웠다. 교수관이 효경의 첫 장 제목인 ‘개종명의장 제일(開宗明義章 第一)’이란 일곱 글자를 가르쳤지만 순평군은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외우지를 못했다. 나이 들어 배우려니 암기가 잘 안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늙고 둔하니 ‘개종(開宗)’ 두 글자만 알면 됐다.”라 하고는 집에 돌아갈 때 말 위에서도 그 글자를 계속 생각하면서 외웠다. 노비들에게도 “너희들도 ‘개종’ 두 자를 외워두었다가 내가 막히면 알려다오.” 하고 일러두었다. 글공부가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순평군은 죽을 때 식구들에게 “영원히 종학과 이별하는 것이 아주 통쾌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