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왕자군]][[분류:서출]][[분류:1456년 사망]][[분류:전주 이씨 순평군파]] [include(틀:조선의 왕자/목조 ~ 연산군)]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94153E> {{{#gold '''조선 정종의 왕자'''[br]{{{+1 '''순평군[br] 順平君'''}}}}}} || ||<-2><width=30%><#94153E> '''[[군호|{{{#gold 군호}}}]]''' ||<(> 순평군(順平君) || ||||<:><#94153E> '''[[시호|{{{#gold 시호}}}]]''' ||<(> 충간(忠簡) || ||||<:><#94153E> '''[[본관|{{{#gold 본관}}}]]''' ||<(> [[전주 이씨|전주]](全州) || ||||<:><#94153E> '''[[이름|{{{#gold 이름}}}]]''' ||<(> 군생(羣生 / 群生)[* 둘 다 '무리 군'자로, '羊' 의 위치가 '君' 위에 있느냐 오른쪽에 있느냐의 차이만 있다.] || ||||<:><#94153E> '''{{{#gold 부왕}}}''' ||<(> [[정종(조선)|조선 정종]] || ||||<:><#94153E> '''{{{#gold 생모}}}''' ||<(> 숙의 기씨(淑儀 奇氏) || ||||<:><#94153E> '''{{{#gold 부인}}}''' ||<(> 군부인 [[설(성씨)|순창 설씨]](淳昌 薛氏) || ||||<:><#94153E> '''{{{#gold 자녀}}}''' ||<(> 2남 2녀 || ||||<:><#94153E> '''{{{#gold 묘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 ||<|2><:><#94153E> '''{{{#gold 생몰[br]기간}}}''' ||<:><#94153E> '''[[음력|{{{#gold 음력}}}]]''' ||[[미상]] ~ [[1456년]] [[8월 21일]] || ||<:><#94153E> '''[[태양력|{{{#gold 양력}}}]]''' ||[[미상]] ~ [[1456년]] [[9월 20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초기의 왕족. [[정종(조선)|정종]]의 차남이다. 어머니는 숙의 기씨이다. 친형제로는 남동생 [[금평군]]과 [[정석군]], 그리고 [[무림군]]이 있다. == 생애 == 1412년([[태종(조선)|태종]] 12년)에 부정윤이 되었고[[http://sillok.history.go.kr/id/kca_11205003_001|#]], 1417년(태종 17년)에 순평군에 봉해졌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1709012_002|#]] 1425년([[세종(조선)|세종]] 7년)에는 형 [[의평군]]이 [[태조(조선)|태조 이성계]]의 [[도장]]을 베껴서 사패를 위조할 때 공모했던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0704003_001|#]] 1442년(세종 24년)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파직되었고[[http://sillok.history.go.kr/id/kda_12412005_001|#]][* 직책과 사유는 나와있지 않다. 파직 사실만 기록되어있다. 파직 사유가 다른 신료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장령 이겸지가 이유를 물었으나 [[세종(조선)|세종]]은 알 바 아니라며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412019_001|#]]] 이듬해인 1443년(세종 25년)에 복권된 뒤 그 다음해인 1444년(세종 26년)에 종2품 중의대부로 승격되었다. 1450년([[문종(조선)|문종]] 즉위년)에는 [[처형]]과 [[간통]]했다는 죄로 [[탄핵]]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ea_10008002_005|#]][[http://sillok.history.go.kr/id/kea_10203028_004|#]][[https://ko.wikipedia.org/wiki/순평군|#]] == 사망과 이후 == 1456년([[세조(조선)|세조]] 2년) 9월 20일에[* 음력 8월 21일.] 사망했다. [[무덤|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다. 한 때 위치가 잊혔다가 14세손 이발원(李發源)이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아냈다고 한다.[[http://www.rfo.co.kr/view_party.php?refnum=026|#]] 1872년([[고종(대한제국)|고종]] 9년)에 영종정경(領宗正卿)으로 추증되었다. == 여담 == * 순평군은 나이 40이 되도록 글을 깨치지 못했다. 종친이 무슨 글을 모르겠냐고 할 수 있지만, 의외로 [[왕족]]들 중에서 저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순평군처럼 [[문맹|글 한 자도 모르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학식과 [[교양]]이 부족한 경우 역시 꽤 많았다. 똑똑하다거나 열심히 공부한다거나 하면 왕위를 노린다는 괜한 의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BR][BR]어쨌든 순평군은 40이 넘어서 [[종친]]들을 교육하는 [[학교]]인 종학(宗學)에 입학했다. 그리고 첫 수업 때 《효경(孝經)》을 배웠다. 교수관이 효경의 첫 장 제목인 ‘개종명의장 제일(開宗明義章 第一)’이란 일곱 글자를 가르쳤지만 순평군은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외우지를 못했다. 나이 들어 배우려니 암기가 잘 안되는 게 당연했다.[BR][BR]그리고 “내가 지금 늙고 둔하니 ‘개종(開宗)’ 두 글자만 알면 됐다.”라 하고는 집에 돌아갈 때 [[말(동물)|말]] 위에서도 그 글자를 계속 생각하면서 외웠다. [[노비]]들에게도 “너희들도 ‘개종’ 두 자를 외워두었다가 내가 막히면 알려다오.” 하고 일러두었다. 글공부가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순평군은 죽을 때 식구들에게 “영원히 종학과 이별하는 것이 아주 통쾌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 가족과 후손 == 군부인 순창 설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딸들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것이 없다. 장남은 의성군 이백평(義城君 李伯平)이고 차남은 의신부정 이숙평(義新副正 李叔平)이다. 의성군의 자손은 끊겼고, 의신부정이 3남을 두었다. 그 중에서도 의신부정의 장남과 차남은 후손이 없고, 3남 의상령의 자손으로 대가 이어졌다. 의상령은 3남을 낳았고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순평군파를 이루고 있다.[[http://www.rfo.co.kr/view_party.php?refnum=026|#]] 순평군의 18대손이 탤런트 [[이정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