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상세
2.1. 규모
에도막부 시기 목할법의 도입 이전에는 같은 배라도 배 크기가 들쭉날쭉이었지만 세키부네의 크기는 주로 36척부터 70척[2]정도였으며 탑승 인원은100명 정도 였을것이다.이는 최대 규격인 20m급에 2층기준으로 아무리 계산해도 면적이 80평이 채 안된다.식량과 식수,무장까지 계산하면 1인당 사용면적이 0.5평이 될까말까한다.갑판까지 포함해서 닭장이냐중형 세키부네의 경우에는 노를 30정부터 60정 정도까지 장착 가능하였고 이보다 더 적은 노를 사용하는 소형의 세키부네는 아래 설명할 고바야라고도 불렀다. 판옥선의 배수량이 대략 80~280t가량이니, 그보다 훨씬 작았던 세키부네의 배수량은 더욱 작았다. 여기에 100명이나 올라탄게 기적이다.
2.1.1. 고바야 부네(小早船)
2.2. 구조
3. 임진왜란의 종이 군함
판옥선과 세키부네 비교도안
세키부네는 일본에서 무척 효과적인 함선이었지만, 임진왜란 시기에는 상대한 판옥선이 영주들의 권세를 나타내는 안택선에 필적하는 체급에 훨씬 더 강력한 화포들을 탑재하여 접근조차 어려웠다. 낮은 뱃전 때문에 위를 보고 사격하거나, 아예 갈고리를 적선에 걸고 공성전을 하듯이 싸워야 했다. 더구나 해전이 있던 한반도 남부는 암초가 많고 소용돌이가 심한 해역이었기에, 첨저선인데다 가벼운 세키부네에게는 더 세심한 항해술을 요구하는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군은 오랜 전란으로 공성전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3], 세키부네보다 월등히 높은 판옥선에 빠르게 올라타곤 했으며, 그냥 고개돌리고 무작정 도망치다가 함대를 다 말아먹은 원균을 논외로 치고, 세키부네에 대응하였던 김완을 시작으로 이억기, 최호 모두 세키부네의 병력에 등선을 허락하여 배를 빼앗겼다.[4] 즉, 세키부네는 기동성을 살릴 여건만 허락하면 언제든 판옥선에 접현하여 병력을 올려보내는데 큰 무리가 없는 배였다. 게다가 백병전 상황에 일단 돌입하게 되어 높이의 이점을 잃어버리면 육지와 마찬가지로 조선군에겐 백병전은 어려웠는데, 고성현령 조응도는 나무 베러온 왜병 20명에게 도선을 허락하여 배를 뺏기고, 조응도가 전사하는 사례도 있었다. 일본군에게 빼앗긴 이 배는 조선수군이 뒤쫒아 함포와 화전으로 태워버렸다.
어쨌든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을 상대하던 세키부네 입장에서는 판옥선에 접근하더라도 타격을 줄 방법이 없었다.[5] 판옥선의 화포는 세키부네가 접현을 성공하더라도 괘념치 않고 병사와 함선을 통째로 갈아버릴 수 있었다.
결국 조선의 군사적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이걸 투입 시킨 결과는 참혹했다. 그러기에 전쟁을 하려면 정말로 제대로 준비해야 했다. 애초에 임진왜란 자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실책으로 평가되는 판이다. 그리고 자기 역량 고려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전쟁 하다 망한 건 450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4. 임란 이후에는?
에도 막부 정권에서 안택선 건조 금지명령[6]을 내리자 반대급부로 세키부네가 좀더 실질적인 주력함이 되자 장식성은 물론이고 크기까지 이전의 관선들 보다 크기가 훨씬 커지고 화려해지게 되었다.[7] 이런식으로 대형화된 세키부네를 천지환이라고도 부른다. 또는 "고귀한 자리의 배"라는 뜻으로 '고자부네' 혹은 '고자센'(...)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는 배 위에 영주들의 성이나 저택의 알현실을 재현한 화려한 누각을 얹어, '저택을 얹은 배'라는 뜻으로 '야카타부네'라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화려하게 개조된 세키부네들은 지방영주들의 참근교대등 '행차'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8] 조선통신사나 류큐등의 사절의 방문 때도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9]
이런 대형화된 세키부네들은 막부말 근대식 전투함이 등장할 때까지 운용되었다.
5. 매체에서의 등장
- 명량에서도 당연히 일본측 수군의 주력 전투선으로 등장했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고증이 좀 개선되어 임란 후반기에 대형화된 관선 정도 크기로 등장했으나 그래도 판옥선을 공성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작중에서는 수백 척이 떼를 지어 조선 수군의 12척의 판옥선들을 위협하였고, 이중 1척은 화공선으로 개조되어 이순신의 대장선에게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물론 여기서도 대포에 얻어맞고, 조란환에 군사들이 쓸려나가고, 판옥선의 충각 전술에 아작이 나고, 회오리에 휩쓸려 산산조각나는 야라레메카의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징비록(드라마)에서도 등장했는데 크기 비례는 비슷하게 맞춰두었지만 노가 없고 한선 배꼬리가 달리는 고증 오류가 나왔다. 함미는 오히려 위의 명량의 세키부네가 재현을 더 잘해두었다.
- 토탈 워: 쇼군2에서는 고바야(소조선)와 세키부네(조선=관선) 두 분류로 나누어져서 유닛으로 등장한다.
고바야부네 계열 유닛으로 좌측부터 순서대로 활, 조총, 포락옥으로 무장한 경우이다. 고바야 계열은 기동성이 좋아 무역선 호위함이나 게릴라식으로 운용하기는 좋지만 체력이나 화력은 부족하다.
[1] 안택선은 주로 대장선(기함)으로 사용되었다.[2] 1척을 약0.3m으로 볼 때10m에서20m정도이다. 참고로 안택선이나 판옥선의 길이가 100척(30m내외)정도였다.[3] 위의 규모 문단에 나온 이미지처럼 전국시대 당시 세키부네를 탄 병사들이 해전에서 아타케부네를 상대로 공성전처럼 싸우는 경우도 존재했다. 아타케부네는 전근대 일본의 군함 중에서는 그나마 판옥선과 맞먹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주력이 세키부네였던 만큼 대체로 세키부네끼리의 싸움이 훨씬 많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전국시대 당시 아타케부네를 상대로 한 공성전 형식의 해전 경험은 임진왜란 때 세키부네를 탄 일본 병사들이 조선의 판옥선을 상대로 싸울 때 좋은 참고사항이 되었을 것이다.[4] 단, 이때 최고 지휘관이 일본의 명장원균이었다는 점과 야간에 기습을 당했던 상황임은 감안하자.[5] 즉,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할 수 있을 뿐, 배 자체를 공격할 수는 없다.[6] 정확히는 500석급 이상의 함선을 건조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당시 안택선은 1천석급이 넘어가는 대형 전투선이였다.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은 지방영주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무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조치였다.[7] 물론 여기에는 지방영주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도 숨어있었다.[8] 관광상품으로 재현된 것도 있다. #[9] 주로 혼슈 서부와 큐슈지역 다이묘들의 배, 특히 '카와 고자부네'라고 부르는 하천운항용 선박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10] 그래도 안택선은 실제 형태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는 나왔다.[11] 영어로는 Siege Tower Bune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