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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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부걸지비(夫乞支妃)[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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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법류(法流) / 묘법(妙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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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경주 박씨(慶州 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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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 박(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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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보도(保道 / 保刀) / 파도(巴刀) / 부걸지(夫乞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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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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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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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연도
| ? ~ 539년 이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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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삼국유사에 따르면, 말년에 남편 법흥왕과 더불어 영흥사로 출가하여 비구와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울주 천전리 각석에 남은 추명에서는, 539년 딸 지소태후, 어린 외손자 진흥왕과 함께 그곳으로 행차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10]
화랑세기와 그를 인용한 논문에서는 소지 마립간의 딸이라고 하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그녀의 출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마 금석문에서 지증왕이 재위 중에도 갈문왕 호칭을 쓰고, 오히려 법흥왕이 다시 마립간(매금) 호칭을 쓰는 등 시열대가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나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 정도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법흥왕의 어머니 연제부인과 진흥왕의 왕비 사도부인이 모두 모량리 출신 박씨인 점을 감안해 연제부인, 사도부인과 같은 모량리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랑세기와 그를 인용한 논문에서는 소지 마립간의 딸이라고 하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그녀의 출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마 금석문에서 지증왕이 재위 중에도 갈문왕 호칭을 쓰고, 오히려 법흥왕이 다시 마립간(매금) 호칭을 쓰는 등 시열대가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나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 정도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법흥왕의 어머니 연제부인과 진흥왕의 왕비 사도부인이 모두 모량리 출신 박씨인 점을 감안해 연제부인, 사도부인과 같은 모량리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