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선수 시절
청소년 대표로 주목받았지만 프로 지명에서 제외되어 신고선수로 해태에 입단하였다. 첫 시즌인 1992년에는 표본은 작지만 wRC+ 108.1, WAR* 1.05 라는 쏠쏠한 스탯을 기록했다.
그 이후 1995~1996년에도 많은 경기에 뛰면서 장성호가 성장하기 전까지 팀 내에서 좌타요원으로 활약했으나, 해태가 IMF로 인해 운영이 힘들어지자 1998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면서 은퇴하였다.
특이점이라면 엄청난 수의 몸에 맞는 공을 얻어낸 것이다. 통산 1006타석에서 무려 51개를 얻어내며 5%가 넘는다. 통산 볼넷 57개와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KBO 역대 최다인 최정(3.7%), 박석민(3.4%)을 아득히 뛰어넘는 비율.
여담으로 유난히 정삼흠에게 유난히 강해서 1년치 안타의 절반 가량을 정삼흠을 상대로 뽑아냈다고 한다.
그 이후 1995~1996년에도 많은 경기에 뛰면서 장성호가 성장하기 전까지 팀 내에서 좌타요원으로 활약했으나, 해태가 IMF로 인해 운영이 힘들어지자 1998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면서 은퇴하였다.
특이점이라면 엄청난 수의 몸에 맞는 공을 얻어낸 것이다. 통산 1006타석에서 무려 51개를 얻어내며 5%가 넘는다. 통산 볼넷 57개와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KBO 역대 최다인 최정(3.7%), 박석민(3.4%)을 아득히 뛰어넘는 비율.
여담으로 유난히 정삼흠에게 유난히 강해서 1년치 안타의 절반 가량을 정삼흠을 상대로 뽑아냈다고 한다.
3. 은퇴 후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92
| 66
| .275
| 36
| 6
| 1
| 2
| 15
| 29
| 12
| 10
| 9
| 15
| .364
| .382
| .746
| |
1993
| 19
| .115
| 3
| 1
| 0
| 0
| 0
| 3
| 0
| 1
| 0
| 5
| .148
| .154
| .302
| |
1994
| 10
| .200
| 2
| 1
| 0
| 0
| 0
| 2
| 0
| 0
| 0
| 4
| .200
| .300
| .500
| |
1995
| 98
| .239
| 78
| 9
| 5
| 1
| 25
| 35
| 20
| 17
| 18
| 23
| .311
| .306
| .617
| |
1996
| 116
| .249
| 68
| 14
| 2
| 1
| 21
| 32
| 6
| 16
| 17
| 26
| .329
| .326
| .655
| |
1997
| 76
| .208
| 20
| 4
| 0
| 1
| 10
| 16
| 7
| 12
| 7
| 9
| .333
| .281
| .615
| |
1998
| 8
| .111
| 1
| 0
| 0
| 0
| 1
| 1
| 1
| 1
| 0
| 3
| .200
| .111
| .311
| |
KBO 통산
(7시즌) | 393
| .239
| 208
| 35
| 8
| 5
| 72
| 118
| 46
| 57
| 51
| 85
| .321
| .314
| .63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