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제1호 ~ 제10호
- 제1호: 남대문로 한국전력 사옥 :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6번 출구 앞에 있으며 일제 강점기인 1928년 내진 설계로 건립된 6층 빌딩. 이 빌딩에는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어 있다. 바로 옆 을지로2가 199-1, 199-48 상가건물도 1934년 지어졌으나 등록문화재 등록은 되어있지 않다.
- 제5호: 대봉동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 및 강당 :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및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내에 있다. 달구벌대로를 따라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경대병원역에서 반월당 방향으로 조금 못 미친 지점의 길가에 바짝 붙어 있다. 1970년대에 화재가 나서 본관 상당수가 탔지만, 당시 학교 출신 유명한 선배의 지시로 복구되었다.
- 제9호: 청주 문화동 우리예능원 : 현재는 '우리예능원' 대신 '일·양 절충식 가옥'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6]
3. 제11호 ~ 제20호
- 제11호: 구 대한민국 국회의사당(구 부민관) : 서울특별시 태평로에 소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부민관[12]이란 부립(당시 경성부였기 때문에)극장으로 시작하여, 1954년부터 1970년까지 국회의사당, 이후에는 한때는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의 별관[13]으로 사용하다가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1991년부터 서울특별시의회의 본관으로 쓰고 있다.부민관 폭탄의거 사건과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의 현장으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 중에 한 곳.[14]
- 제13호: 서울공업고등학교 본관
- 제14호: 이화여자대학교 파이퍼 홀 : 외벽이 돌로 되어 있는 근대 석조 건축물.
- 제15호: 대구동산병원 구관 : 지상 3층 규모의 적벽돌 구조로 되어 있다. 본래 현관에 포치가 있었지만,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공사로 인해 철거된 점이 안습. 길 건너편은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유명한 서문시장이다.
- 제16호: 광주 전라남도청 구 본관 :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를 사진이든 영상이든 보다 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3층짜리 건축물로 현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에 있다. 여담이지만 도청 별관이 존폐의 기로에 선 적이 있는데, 5.18 유족들과 지역 단체들 덕분에 보존한다고는 했지만, 그 후에 나온 안전등급이니 뭐니 해서 2라운드 돌입. 이러다 서울시청과 같은 이유로 정면만 남는 꼴이 될까 두렵다.[16]
▲ 과거 도청 시절의 전라남도청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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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21호 ~ 제30호
- 제21호: 철암역 구내 선탄 시설 : 연탄을 제조하던 곳이며, 아직도 사용 중이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박중훈과 안성기의 결투 씬이 이 곳에서 벌어졌으며, 현재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
- 제23호: 구 철원 감리교회 : 한국전쟁 중에 대부분 파괴되어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위의 노동당사처럼 민통선 밖에 있어서 방문이 가능하다.
- 제24호: 철원 얼음창고 : 한국전쟁 중에 파괴되어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곳곳에 커다란 총포 자국이 뚫려 있으며 지붕이 없다.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기 때문에 민간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므로, 이 곳에 가려면 철원군 안보관광 견학코스를 이용해서 가는 방법이 유일하다. 늦어도 약 1주일 전에 한탄강관광사업소(철원군 동송읍 소재)에 전화하여 인적 사항을 통보하고 마지막에 나올 때 이 곳에 들러야 한다.(안보관광 견학 마지막 코스인 도로 주변에 있어 주행 중인 견학 버스를 탄 채로 볼 수는 있다.)
- 제25호: 철원 농산물 검사소 : 한국전쟁 중에 파괴되어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이 곳도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기 때문에 민간인의 출입은 불가능하다.(이곳도 안보관광 견학코스 마지막 도로 주변에 있어 스쳐가는 식으로 볼 수는 있다.)
- 제27호: 화천 구 인민군사령부 막사 : 분단의 상징을 말해주는 건물.
- 제29호: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 신한은행 지점으로 사용 중이다가 현재는 목포문화원 건물로 쓰고 있다.
- 제30호: 구 목포공립심상소학교(현 유달초등학교) 체육관
5. 제31호 ~ 제40호
- 제31호: 여수시 구 청년회관
- 제32호: 여수 애양원교회
- 제34호: 구 나주경찰서
- 제36호: 구 통영청년단 회관 : 통영문화원 옆에 있으며, 현재는 충무고등공민학교에서 사용 중.
- 제37호: 함양 구 임업시험장 하동.함양지장 : 현재 산림청 산하 서부지방산림청 함양국유림관리소의 전시관으로 사용 중.
- 제38호: 남제주 강병대교회 : 6.25 전쟁 당시 모슬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 영외에 설치된 군종교회 건물.
- 제39호: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6. 제41호 ~ 제50호
7. 제51호 ~ 제60호
- 제58호: 진천 덕산양조장 : 한때 경영난을 겪으면서 폐업 위기를 겪었지만, 다행히 위기를 딛고 현재도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 제59호: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 그 유명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 벌어졌던 곳으로 민간인을 상대로 미군의 무자비한 학살이 바로 여기서 벌어졌다. 이 다리는 지금도 경부선 철도 교량으로 쓰인다. 개근천 위에 축조된 아치형 쌍굴 철도 교각이다. 또한 해당 다리 옆에는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 제60호: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8. 제61호 ~ 제70호
- 제61호: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 원래는 '김제 농업기반공사 동진지부 죽산지소'로 등록했지만, 이후 소유권이 시로 이전되었고, 기관 명칭 변경('농업기반공사' → '한국농어촌공사'), 그리고 문화재의 역사성과 건물의 특성 및 건립 당시의 학술적,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목적 등의 이유로 2010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했다.
- 제62호: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 제65호: 제천 엽연초생산조합 구 사옥 :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 제66호: 구 소록도갱생원 검시실
- 제67호: 구 소록도갱생원 감금실
- 제68호: 구 소록도갱생원 사무본관 및 강당
- 제69호: 구 소록도갱생원 만령당
- 제70호: 구 소록도갱생원 식량창고
9. 제71호 ~ 제80호
- 제71호 : 구 소록도갱생원 신사
- 제72호 : 구 소록도갱생원 등대
- 제73호 : 소록도 구 녹산초등학교 교사
- 제74호 : 소록도 구 성실중고등성경학교 교사
- 제79호 : 경의선 장단역 죽음의 다리 : 경의선 철도 위에 있는 작은 다리로, 장단역을 동서로 연결하던 다리였다. 한국전쟁 때의 격전지였다. 수많은 미군 병사와 남한 병사들이 죽은 이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로 인하여, 침묵의 다리라고도 불린다.
제80호 : 덕수궁 석조전 동관(2008. 6. 23일 문화재 지위 박탈, 사적 124호로 통합)
10. 제81호 ~ 제90호
제81호 : 덕수궁 석조전 서관(2008. 6. 23일 문화재 지위 박탈, 사적 124호로 통합)
- 제83호 : 창경궁 대온실 : 자세한 건 창경궁 문서의 4.4.의 항목 참조.
- 제84호 : 원서동 고희동 가옥
- 제85호 : 계동 배렴 가옥
- 제87호 : 홍지동 이광수 별장 터 : 현재 그 위치에 세워진 한옥은 70년대에 지어진 것이라 터만 문화재로 등록한 것.
- 제89호 : 평창동 박종화 가옥
- 제90호 : 홍파동 홍난파 가옥
11. 제91호 ~ 제100호
- 제91호 : 돈암장 : 서울 성북구에 소재하고 있으며, 이 곳은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내부가 개방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이 곳을 답사하려면 방문 전에 회신을 보내는 것이 좋다. 원래 4개 동이 등록되어 있었지만, 2008년 6월 23일부로 증개축이 이루어져 문화재로의 가치가 없어진 3개 동을 제외하고, 한옥 본채 1동만 등록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 제94호 :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 : 단, 본관 전체 건물 중에서 1954년에 세워진 중앙의 5개 박공 건물에 한해서 문화재로 등록했다.
- 제95호 : 광주수창초등학교 본관
- 제96호 : 전남대학교 인문대 1호관
- 제97호 : 광주교육대학교 본관
[1] 구 청주상업고등학교[2] 구 청주상업고등학교[3] 굵은 글씨가 들어간 이유는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적혀 있는 주소지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4] 굵은 글씨가 들어간 이유는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적혀 있는 주소지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5] 이 외에도 초기에 지정되었던 상당수의 국가등록문화재의 명칭들이 많이 바뀌었다.[6] 이 외에도 초기에 지정되었던 상당수의 국가등록문화재의 명칭들이 많이 바뀌었다.[7] 현재 문화재 명칭은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8] 현재 문화재 명칭은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9] 해당 건물 역시 야인시대에서 많이 등장하는 장소이긴 하지만, 해당 드라마의 주 무대로 우리들이 잘 아는 우미관하고는 다르다.[10] 서울시민회관 별관 시절 옆에 위치한 본관에서 1972년 화재가 발생,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낸 참사로도 악명이 높았다.[11] 여담으로 과거(적어도 1970년대 이전) 사진과 현재의 모습이 다름을 알 수 있는데 건물 앞의 태평로(현 세종대로)의 확장으로 인해 일부 부분이 철거되었다고...[12] 해당 건물 역시 야인시대에서 많이 등장하는 장소이긴 하지만, 해당 드라마의 주 무대로 우리들이 잘 아는 우미관하고는 다르다.[13] 서울시민회관 별관 시절 옆에 위치한 본관에서 1972년 화재가 발생,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낸 참사로도 악명이 높았다.[14] 여담으로 과거(적어도 1970년대 이전) 사진과 현재의 모습이 다름을 알 수 있는데 건물 앞의 태평로(현 세종대로)의 확장으로 인해 일부 부분이 철거되었다고...[15] 자세한 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서의 2.1문단 참조.[16] 자세한 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서의 2.1문단 참조.[17] 학교가 서 있는 위치가 상술한 옛 전남도청 본관 길 건너편으로 학교 바로 옆에는 지금은 주차장이지만, 2010년 이전에는 광주여자고등학교(현재는 서구 화정동)가 자리했었다.[18] 학교가 서 있는 위치가 상술한 옛 전남도청 본관 길 건너편으로 학교 바로 옆에는 지금은 주차장이지만, 2010년 이전에는 광주여자고등학교(현재는 서구 화정동)가 자리했었다.[19] 다만, 현재 백마고지역은 경원선 개량 및 전철화 사업 등의 이유로 임시 운영 중단 상태이기 때문이므로, 방문을 하려면, 동송시외버스공용터미널을 이용해서 와야 할 것이다.[20] 다만, 현재 백마고지역은 경원선 개량 및 전철화 사업 등의 이유로 임시 운영 중단 상태이기 때문이므로, 방문을 하려면, 동송시외버스공용터미널을 이용해서 와야 할 것이다.[21] 육군사관학교1기 생으로 졸업 하였으며 당시 국군 7사단 5연대 연대장이 였다. 1950년 덕천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같은 수용소에서 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소 경비들이 그를 수용소에 수감 되어 있던 국군 고급 장교들을 소달구지에 함께 실려간 이후엔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슬하엔 1남이 있다고 전해진다.[22] 다리를 걷는 건 가능하나 차량 통행은 금지되어 있다.[23] 육군사관학교1기 생으로 졸업 하였으며 당시 국군 7사단 5연대 연대장이 였다. 1950년 덕천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같은 수용소에서 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소 경비들이 그를 수용소에 수감 되어 있던 국군 고급 장교들을 소달구지에 함께 실려간 이후엔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슬하엔 1남이 있다고 전해진다.[24] 다리를 걷는 건 가능하나 차량 통행은 금지되어 있다.[25] 덕수궁 내에 있는 이 3개의 등록문화재는 덕수궁 전체가 사적 124호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중복 등록 논란이 있었고, 결국 등록문화재에서 해제하고 사적으로 통합 관리하기로 했다.[26] 덕수궁 내에 있는 이 3개의 등록문화재는 덕수궁 전체가 사적 124호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중복 등록 논란이 있었고, 결국 등록문화재에서 해제하고 사적으로 통합 관리하기로 했다.[27] 추가조사 결과 이중섭과 관련없는 것으로 밝혀져서 해제되었다.[28] 추가조사 결과 이중섭과 관련없는 것으로 밝혀져서 해제되었다.[29] 추가조사 결과 이상의 집이 1943년 헐린 뒤 그자리에 다시 지어진 건물로 밝혀져 해제되었다.[30] 추가조사 결과 이상의 집이 1943년 헐린 뒤 그자리에 다시 지어진 건물로 밝혀져 해제되었다.[31] 다만 해당 문서 2번 항목에 나와있다시피 중앙정보부의 해외 파트 청사로 사용되면서 엄청나게 훼손이 되었다. 1995년에 현재의 내곡동으로 이전할 때까지...[32] 의릉 주 능선(홍살문~정자각~능침)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 [33] 다만 해당 문서 2번 항목에 나와있다시피 중앙정보부의 해외 파트 청사로 사용되면서 엄청나게 훼손이 되었다. 1995년에 현재의 내곡동으로 이전할 때까지...[34] 의릉 주 능선(홍살문~정자각~능침)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