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등번호 2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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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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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2012)
| →
| 이호준(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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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등번호 2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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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문영(2012)
| →
| 김태우(2013)
| →
| 임정호(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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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등번호 2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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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2013)
| →
| 김태우(2014)
| →
| 임정호(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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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등번호 1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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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열(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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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2017)
| →
| 김형준(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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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성남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성남고등학교 시절에는 진야곱과 호흡을 맞추면서 대붕기 우승을 이끌었다. 고교 졸업 당시에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포수라는 포지션의 특성 상 어차피 대학에서 발전하는 것이 더 유리한 편이라 크게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단국대에 진학한 후, 기대대로 성장하면서 대학 무대에서 수준급의 포수로 손꼽히게 되었다.[5] 2009년 KBO총재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는 홈런상과 타점상을 타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3. 프로 선수 시절
3.1. 2012년 ~ 2013년
3.2. 2014년
3.3. 2017년
5월 13일 박세웅을 대신하여 1군으로 콜업되었다.
13일 kt wiz전에서 김태군이 수비 도중 파울 타구에 맞아 고통을 호소하자 바로 마스크를 쓰고 투입되었다. 갑작스런 출전이었지만 수비에서도 안정감을 보였고, 7회 1사 1, 3루 상황에서는 우전 안타를 쳐내며 데뷔 첫 타점을 신고했다.
그러나 14일 잇따른 실책으로 패배하게 되었다. 이후 말소되었다가 6월 13일 1군으로 다시 콜업되었다. 이후 NC는 강장산을 내주고 kt에서 포수 김종민을 영입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11월 25일자로 방출당했다. 박광열, 신진호 등이 있어서 필요 없다고 판단한 듯.근데 정작 살아남은 저들도 성적이 영 좋지 않다.
13일 kt wiz전에서 김태군이 수비 도중 파울 타구에 맞아 고통을 호소하자 바로 마스크를 쓰고 투입되었다. 갑작스런 출전이었지만 수비에서도 안정감을 보였고, 7회 1사 1, 3루 상황에서는 우전 안타를 쳐내며 데뷔 첫 타점을 신고했다.
그러나 14일 잇따른 실책으로 패배하게 되었다. 이후 말소되었다가 6월 13일 1군으로 다시 콜업되었다. 이후 NC는 강장산을 내주고 kt에서 포수 김종민을 영입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11월 25일자로 방출당했다. 박광열, 신진호 등이 있어서 필요 없다고 판단한 듯.
3.4. 은퇴 및 은퇴 이후
방출된 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이여상이 만든 야구교실에 코치로 들어갔다가 이여상이 이여상 강제 도핑 사건의 여파로 구속된 후 2019년부터 모교인 단국대학교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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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출루율
| 장타율
|
2013
| 7
| 13
| .000
| 0
| 0
| 0
| 0
| 0
| 1
| 0
| 1
| .071
| .000
| |
2014
| 5
| 5
| .200
| 1
| 1
| 0
| 0
| 0
| 0
| 0
| 0
| .200
| .400
| |
2015
| 군복무(경찰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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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
2017
| 3
| 7
| .429
| 3
| 0
| 0
| 0
| 2
| 0
| 0
| 0
| .429
| .429
| |
KBO 통산
(3시즌) | 15
| 25
| .160
| 4
| 1
| 0
| 0
| 2
| 0
| 0
| 1
| .192
| .200
| |
[1] 실제로 NC 팬들 사이에서도 거지, 한방거지와 함께 꽃거지라고 불린다. 왜 거지인지는 김태군 문서 참조.[2] 실제로 NC 팬들 사이에서도 거지, 한방거지와 함께 꽃거지라고 불린다. 왜 거지인지는 김태군 문서 참조.[3] NC 다이노스 창단에 따른 지원책으로 2라운드와 3라운드 사이에 다섯 명을 특별 지명[4] NC 다이노스 창단에 따른 지원책으로 2라운드와 3라운드 사이에 다섯 명을 특별 지명[5] 김태우의 활약으로 1년 후배인 이홍구가 포수 출장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6] http://news.tf.co.kr/read/baseball/1435303.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