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국 고려 평장사 정평공
김봉모 | |
이칭
| 정평(靖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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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경주 김씨(慶州 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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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봉모(鳳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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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부 김세린(金世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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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1남 김태서(金台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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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 ~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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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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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아버지는 신라 왕족의 후손인 김세린이다.[1]
고려시대의 음서제도인 문음으로 벼슬글을 올랐으며, 명종조 때는 내시를 지냈다.[2] 이후 1176년 그 시대 여러 번 발생한 초적의 난[3]을 진압해 공을 세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복궁녹사, 군기주부[4], 상식국직장[5]과 춘방통사사인[6]등으 종7품~정7품 관직을 거쳤다. 정7품에 머물다 종6품의 감찰어사[7]로 승진했고, 곧이어 대부경이 되었다. 다시 많은 벼슬을 거쳐서 동북면지병마사[8]를 역임했다.
중세 중국어와 여진어를 통달해서, 동각이라는 곳에서 계속 거처했다. 이 외국어 실력이 인진사에서 판합문사에 제수되게 도와줬다.
말년인 1203년에는 당시 추밀원이라 불리던 중추원[9]의 정3품 부사[10]를 재임했고, 후에는 중서문하평장사와 태자태부라는 관직으로 명예직이면서도 태자의 교육을 담당했다. 6년 뒤인 1209년 사망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경순왕의 후예라 한다.
고려시대의 음서제도인 문음으로 벼슬글을 올랐으며, 명종조 때는 내시를 지냈다.[2] 이후 1176년 그 시대 여러 번 발생한 초적의 난[3]을 진압해 공을 세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복궁녹사, 군기주부[4], 상식국직장[5]과 춘방통사사인[6]등으 종7품~정7품 관직을 거쳤다. 정7품에 머물다 종6품의 감찰어사[7]로 승진했고, 곧이어 대부경이 되었다. 다시 많은 벼슬을 거쳐서 동북면지병마사[8]를 역임했다.
중세 중국어와 여진어를 통달해서, 동각이라는 곳에서 계속 거처했다. 이 외국어 실력이 인진사에서 판합문사에 제수되게 도와줬다.
말년인 1203년에는 당시 추밀원이라 불리던 중추원[9]의 정3품 부사[10]를 재임했고, 후에는 중서문하평장사와 태자태부라는 관직으로 명예직이면서도 태자의 교육을 담당했다. 6년 뒤인 1209년 사망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경순왕의 후예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