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670000><bgcolor=#670000> '''{{{#fedc89 고려국 고려 평장사 정평공[br]{{{+1 김봉모}}}}}}''' || ||<bgcolor=#670000> {{{#fedc89 '''이칭'''}}} ||<bgcolor=#ffffff>정평(靖平) || ||<bgcolor=#670000> {{{#fedc89 '''본관'''}}} ||<bgcolor=#ffffff>[[경주 김씨]](慶州 金氏) || ||<bgcolor=#670000> {{{#fedc89 '''이름'''}}} ||<bgcolor=#ffffff>봉모(鳳毛) || ||<bgcolor=#670000> {{{#fedc89 '''가족'''}}} ||<bgcolor=#ffffff>부 김세린(金世麟) || ||<bgcolor=#670000> {{{#fedc89 '''자녀'''}}} ||<bgcolor=#ffffff>1남 김태서(金台瑞)) || ||<bgcolor=#670000> {{{#fedc89 '''생몰년도'''}}} ||<bgcolor=#ffffff>? ~ 1209 || ||<bgcolor=#670000> {{{#fedc89 '''출생지'''}}} ||<bgcolor=#ffffff>[[고려|고려국]] 동경[br](현 [[경상북도]] [[경주시]])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경주 김씨 평장사공파의 파시조이다. == 생애 == 아버지는 [[신라]] 왕족의 후손인 김세린이다.[* 상서성의 장관인 상서좌복야를 지냈다.] [[고려]]시대의 [[음서]]제도인 문음으로 벼슬글을 올랐으며, [[명종(고려)|명종조]] 때는 [[내시]]를 지냈다.[* 고려 때는 [[조선]]과 다르게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문관들이었다.] 이후 1176년 그 시대 여러 번 발생한 [[초적]]의 난[* 한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도적 때.]을 진압해 공을 세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복궁녹사, 군기주부[* 오늘날의 [[방위사업청]]인 군기감의 관직.], 상식국직장[* 왕의 [[수라상]]을 관리하던 상식국의 정7품 관직.]과 춘방통사사인[* [[태자]]부의 정7품 관직.]등으 종7품~정7품 관직을 거쳤다. 정7품에 머물다 종6품의 감찰어사[* 현재의 [[감사원]]과 정부 내 [[경찰]], [[검찰]].]로 승진했고, 곧이어 대부경이 되었다. 다시 많은 벼슬을 거쳐서 [[동북면]]지병마사[* [[태조(조선)|태조 이성계]]도 역임한 직위로써, 동북면의 병력을 관리하는 관직.]를 역임했다. 중세 [[중국어]]와 [[여진어]]를 통달해서, 동각이라는 곳에서 계속 거처했다. 이 외국어 실력이 인진사에서 판합문사에 제수되게 도와줬다. 말년인 1203년에는 당시 [[추밀원]]이라 불리던 [[중추원]][* 국방위원회+대통령비서실의 역할.]의 정3품 부사[* 국방위원회인 추밀의 관직.]를 재임했고, 후에는 중서문하평장사와 태자태부라는 관직으로 명예직이면서도 태자의 교육을 담당했다. 6년 뒤인 1209년 사망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경순왕]]의 후예라 한다. == 후손 == 후손들은 [[전주 김씨]]로 분적하였다. 그래도 [[경주 김씨]]의 주요 분파 중 하나다. [[분류:경주 김씨]][[분류:전주 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