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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경우에 해당하면 작성이 가능합니다.
- 제도권 언론사에서 명언이라고 밝힌 경우
- 네이버 명언 카테고리 내에서 존재하는 경우
- 나무위키에 개별 문서가 있는 경우 [3]
- 기타 토론 합의
1.1. KBO 리그
1.1.1. 긍정적 명언
명문 해태의 10승대 투수로 태어나 선배들이 일군 업적을 이어가겠다. - 김상진
원래 별은 밝은 낮이 아닌 어두운 밤에 빛나기 마련입니다. 그는 화려했던 현역시절보다 더 화려하게 빛날 거예요. - 빅토르 메사[5]
시련은 기회가 될 수 있다. - 류중일
야구 몰라요. - 하일성
해설을 하다가 드라마틱하거나 보기 힘든 장면이 나올 때 외치던 명언. 야구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으로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과 일맥상통.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가 나오기 전까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명언이었다.
내 뒤에 야수가 일곱명이나 있는데 뭣 하러 삼진을 잡아요? 공 세 개 던져 삼진 잡느니 공 한 개로 맞혀 잡는 편이 훨씬 낫죠! - 장호연
장호연은 역대 100승 투수들 가운데 탈삼진율이 가장 낮은 투수다. 1988년 개막전에서는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KBO 유일의 무삼진 노히트노런을 달성해[8] 자신의 야구 철학을 유감없이 증명했다. 심지어 그는 개막전 선발투수로 내정되어있던 것도 아니었다. 김진욱이 훈련중 급소에 공을 맞는(!) 부상을 당해서 대타로 들어가게 된 상황에서 이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 경기의 투구수는 99구.류현진 부들부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저 말과 한국 팀의 선전이 어우러져 유례없는 명언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김인식 감독의 소속팀인 한화 이글스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며 암흑기라는 또다른 위대한 도전을 이어갔다... 결국 한화는 창단 첫 해인 1986년 이후 두 번째 꼴찌를 하고 김인식 감독은 감독을 그만두고 잠시 야인 생활을 하다 한국야구위원회 기술 위원장 자리로 갔다. 그는 이후 2015년 프리미어 12의 우승감독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다.그러나 2017년에
나갈 수 있겠냐고 묻지 마시고 나가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언제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상훈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 3경기 연속 등판으로 지쳐있는 상황에 다시 박빙의 상황이 되고 자진해서 불펜으로 향하자, LG 코치진들이 나갈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김성근 감독에게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코치진들에게 한 말이었다고 한다.
다시는 공을 제가 못 던져도 좋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지금 나가게 해주십시오. - 염종석
1999년 플레이오프 때 코칭 스태프진들에게 전의를 불사르며 했던 이야기다. 1999년 그가 시즌이 끝나고 수술을 받았을 때 코치진들은 그가 이제 은퇴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수술과 재활이 많았고, 1999년 수술은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수술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제가 필요하다고 불러주시면 등판할 것입니다. 1992년 당시 그때 그렇게 던진 것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저는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때처럼 다시 던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때 너무 행복했습니다. - 염종석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중에서.#
만일 제도가 바뀐다면 우리는 또한 그 바뀐 제도에 따라 우승할 것이다. - 김응용
1987년 한국시리즈를 끝내고 한 말. 그는 이후 해태에서 6번, 삼성에서 1번 더 우승 감독이 되며 자신의 말을 지켰다.
나는 수비만큼은 국내에서 니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힘들겠지만 후배들을 위해서 뛰어주라. 2군에 있는 후배들에게 니 수비를 보여주는게 어떤 코치에게 배우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저런 수비를 하는데도 2군에 있다니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라. 저들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게 니가 할 일이다. - 김진욱
2군 코치 시절 2군으로 강등된 김재호에게 격려를 한 말. 이후 김재호는 2군을 휩쓸며 1군으로 복귀에 성공, 영광의 2015시즌에서는 OB/두산 최초의 풀타임 3할 유격수 및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야구 선수인 나에게 삼성은 가장 오래된 연인이다. 오래된 연인의 품에서 은퇴할 수 있게 돼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 양준혁
Q: 어떤 선수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2천 안타의 사나이? 아니면 만세 타법의 타격 천재? 그도 아니면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A: 그저 1루까지 열심히 뛰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난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걸어서 1루까지 간 적이 없다. - 양준혁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가 확인하러 가겠다. - 김시진
2012년 8구단 출사표 인터뷰에서. 이 말을 하고 넥센은 전반기를 3위로 마감하는 저력을 보여주였다.다만 끝은 좋지 못했다.
당시 연장 15회 제한이 없었으면 난 20회, 30회도 던졌을 거다.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던지겠느냐고? 물론이다. 그게 내가 아는 야구다. - 박충식
박충식은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연장 15회까지 181구를 역투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선동열과 최동원은 선동열 VS 최동원이라는 문서까지 작성되어 있을 정도로 완투에 연장까지 가는 팽팽한 맞대결을 여러 번 펼쳤다둘 사이에 누가 뛰어난 선수냐는 논쟁이 치열한데, 통산 기록은 선동열이 월등히 뛰어나지만 자존심 강한 선동열도 "최동원은 라이벌이 아니라 나의 스승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최동원은 선동열과는 달리 프로야구 창단 전인 실업야구 시절에 전성기를 보냈고 롯데 자이언츠 시절의 혹사로 하락세를 맞았다. 무엇보다도 선동열은 당시 최고의 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최동원은 롯데 자이언츠의 몇 안되는 에이스였기에 초인적인 완투를 해야만 했다.
은퇴가 왜 명예로운가? - 이종범
현대 유니콘스가 끝난 순간 나의 야구 인생도 끝이 났다. - 정민태
히어로즈와의 연봉 협상이 결렬되고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남긴 말. 현대 유니콘스는 정민태가 정상급 투수로 성장하면서 강팀으로 발돋움했고 정민태가 무너짐과 동시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2006년 주간 잡지 스포츠 2.0에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가서 은퇴하고 싶다'라는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는데 이후 본인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밝혔다. 그 후 히어로즈의 지나친 연봉 후려치기에 반발하여 KIA로 이적했으나 특별한 활약 없이 은퇴. 그리고 현대의 선수단을 인수한 히어로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2012년 시즌 후 롯데 자이언츠로 자리를 옮겼다. 넥센 때 감독과 코치 인연을 이어간 김시진이 2014 시즌 후 감독직을 관둔 후에는 한화 이글스로 건너가 코치 자리를 이어간다.
프로는 인내의 삶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진 뒤의 쓸쓸함을 곱씹을 줄 알아야 한다. - 이호준
가슴에 팀 로고가 있는 이유가 분명 있다. - 조성환
2013년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 한 말. 사실 2011년 사직 야구장 전광판 영상에서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었다.
No Fear.
Have Faith and Trust That the team will get better.팀이 나아질 것이라고 신뢰하고 믿어라. - 제리 로이스터
2011년 시즌 초반 한 롯데 팬이 로이스터의 페북에다 팀이 부진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글을 썼고, 로이스터는 이에 대한 답변을 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임창용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그래서 이런 방향으로도 간 적 있다.사실 이것은 임창용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명언을 인용한 것이나, '강속구보다 제구력이 낫다' 라고 해석될 여지도 있기 때문에 야구와 삶을 절묘하게 비유하는 맛이 있어 유명해졌다.이과생 한숨 쉬는 소리 들린다[19]
落ち葉は秋風を恨まない。
無二一球무이일구 - 장명부
죽기 전에 그가 운영하던 마작집 벽에 쓴 글씨 중 하나.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으니 공 하나하나를 혼신의 힘을 다하여 던진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순서가 바뀐 '일구이무' 로 널리 통하지만 뜻은 동일하다.
우린 더 강해진다. - 한대화
2011년 6월 8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임찬규 보크 오심 사건으로 인해 석패한 다음 날, 제소를 포기하고 오심에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도로 남긴 말이다.
지고 분할 줄 모르면 발전은 없다. - 박종훈
그가 두산 2군 감독 시절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이 말을 꼽았다.
2011 시즌 종료 후 당시 야구 팬들은LG에서 온갖 잡음을 일으키고FA 시장에 나오게 된 이택근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었다. 당연히 A급 외야수에게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구단만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여론이 많았지만, 4년 50억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로 그를 데려간 팀은 만년 빈곤 팀 이미지였던 친정 팀 넥센이었다. 이 영입은 그동안 자기 배만 불리려고 야구판에 뛰어들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던 이장석 사장과 거지 팀이라 조롱받던 팀에 대한 여론을 180도 바꾸고, 이후 FA 시장에서 김주찬 등 선수가 예상 이상의 몸값을 받게 되는 FA 인플레이션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일대 사건이다. 그리고 야구 팬덤 내에서 '눈물을 닦아주다'라는 말은 '선수에게 (돈으로) 좋은 대우를 해주다.'라는 의미로 쓰게 된다.신영언니 눈물도 좀 닦아주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강병철 감독이 최동원에게 1, 3, 5, 7차전을 준비하라고 한 뒤, 최동원의 '무리 아니냐'라는 질문에 강병철 감독이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 대답. 그리고 최동원은 위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최동원은 한국시리즈 1, 3, 5, 7차전 선발 등판, 6차전에선 5회부터 등판했고, 한국시리즈 7차전 중 총 5경기에 출전, 4승 1패 40이닝 투구 평균 자책점 1.80 WHIP 1.08이라는 초인적인 기록을 달성한다. 이말년은 저 멘트를 선수 혹사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마법의 멘트라 칭했다. 이후 최동원은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에서 저 질문을 들었을 땐 답을 유보할 거란 말을 했다. 최후가 트레이드였다면 그렇게까지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
오늘 무조건 이기라. 안 그라몬 다 지기삔다! 알긋나? - 박정태
펠릭스 호세에게 퇴장 명령이 내려진 후 호세, 박정태를 위시한 선수, 코치단 일부는 대구아재들과 철창 펜스 사이로 실랑이를 벌였다. 이때 제대로 분통이 터진 박정태는 선수단에게 "씨발! 짐 싸라!" 를 외쳤다고 한다. 하지만 덕장으로 유명한 김명성 감독이 배트를 관중에게 던진 호세도 잘못이 있으며 경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해야 한다고 완강히 말렸고, 그 후에 한 말이다.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 문서 참조.
무슨 신과 경기를 한 것 같았다. - 김응용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힘겹게 김성근 감독의 LG 트윈스를 이기고서 남긴 소감. 당시 엘지는 꼴지 전력이라는 세간의 평과는 다르게 아슬아슬하게 4위로 가을 야구에 진출, 현대와 기아를 이기고서 한국시리즈에서는 수많은 선수들의 부상과 삼성의 막강한 전력에 굴하지 않고 삼성과 치열하게 싸웠다. 허나 한국시리즈에서 마해영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아 우승을 놓쳤다.당시 부족한 실력을 가진, 부족한 숫자의 선수들을 데리고서 정확한 작전을 수없이 걸면서 끝까지 버텨내던 '야구의 신' 김성근은 김응용 감독의 이 명언으로 야신이라는 멋진 별명이 생겼다. 당시 인터뷰에서는 "LG 김성근 감독이 워낙 잘했어요. '신이 아닌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라고 말했다. 훗날 김응용 감독이 한화 감독 재임시절 인터뷰에서 "저는 야신이라고 안 하고 그냥 신이라고 했었는데, 신도 여러 가지 신[22]이 있잖아요."라고 해명했다. #1,#2
위의 신 발언을 듣고 웃으며 남긴 말. 김응용 감독의 언론 플레이 경향과 이후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김성근에 대한 립 서비스에 '신을 이긴 내가 더 대단하다' 라는 자화자찬성 발언이다. 실제로 야신은 김성근 감독 휘하의 SK 와이번스가 연속 우승을 하는 등의 성과가 나온 다음에 기자들에 의해서 자주 불렸지, 당시에도 자주 불린 별명은 아니다.
이진영: 항상 LG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팬들에게 사인해 줄 준비가...
김재현: 팬에게 사인을 주기 보다는 승리를 줘라, 팬들은 너의 사인 볼보다는 이기는 걸 더 좋아할 수도 있어.
2009년 불타는 그라운드 22화에서 방영된 대화. 처음에는 프로 정신을 강조한 김재현의 말만이 명언이었으나, 후에 팬 서비스가 부실한 선수들이 논란이 되며 이진영의 말 또한 명언이 되었다. 프로 선수는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나, 팬이 없는 프로 선수와 구단은 존재 가치가 없으므로 팬 서비스 역시 중요하다.
2009년 8월 25일 당시 SK는 에이스 김광현과 주전 포수 박경완의 부상으로 패넌트레이스 1위를 KIA 타이거즈에게 내 준 상황이었다. 시즌을 20경기 남겨두고 김성근은 기자들에게 '남은 경기에서 전승하면 된다'고 말했고, 그 뒤부터 SK는 무섭게 질주하며 아시아 최다 연승 신기록인 19연승을 만들어 낸다. 심지어 저기 포함되지 않은 1경기에서도 무승부를 달성하며, 당시 SK는 지지 않는 야구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여담으로, 19연승을 했음에도 결국 1위는 못 했다(...). 다만 KIA나 SK나 승패마진이 똑같이 33이었기 때문에 승차는 0였다. 2009년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KIA 타이거즈 81승 4무 48패, SK 와이번스 80승 6무 47패였는데, 2011년 이후로 저런 상황이 나왔다면 1위를 할 수 있었지만 이 시즌에는 승률 계산에서 무승부를 패배로 간주했기 때문에 1위가 되지 못한 것이었다.
반드시 내 손으로 형의 승리를 따낼 테니 지켜봐. - 손승락
채우지 못한 33개의 도루는 해설로써 여러분의 마음을 훔치겠다. - 박재홍
오늘 던지고, 내일 던질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런 하루가 조금 더 이어지기만 바랄 뿐이다. - 신용운
욕심이 없는 선수는 프로의 자격이 없다. - 손아섭
한 인터뷰에서. 그리고 그는 매 시즌 초마다 각오를 다지며 성적을 쭉쭉 올리게 된다.
다른 학생들이 고교를 졸업하고 한 번에 대학문을 들어갈 때 난 재수를 했다. 사업할 때도 실패를 무려 18번이나 경험했다. 돌아보면 단번에 무언가에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 오늘 투구도 마찬가지다. 8년 동안 준비했던 데뷔전이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재수할 때도,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데뷔전을 망친 지금도 변하지 않는 건 하나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재수와 사업 실패, 데뷔전 참패까지 지금껏 20번 실패했지만, 먼 훗날 사람들은 20번째 실패를 21번째 성공을 위한 교훈이자 좋은 예감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50살까지 너클볼을 계속 가다듬고, 꾸준히 목표를 향한 전진할 거다. - 허민
미국 독립리그 락랜드 보울더스(Rockland Boulders)입단후 첫 데뷔경기를 마치고 나서.#
시즌 중 암으로 사망한 장효조 감독을 기리는 멘트였고, 삼성 팬들뿐만 아니라 타 구단 팬들도 모두 감동했다며 이 멘트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이의도 달지 않았다. 워낙 이 멘트가 칭송을 받았던지라 2013년 한국시리즈 하이라이트에서 이 멘트를 마지막 부분만 "삼성의 3연패입니다"로 바꿔서 한 번 더 사용했고, 2015년 삼성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고별 행사를 할 때 이 멘트를 변형하여 클로징 멘트로 사용하였다.#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다.
2009년 9월 24일 넥센:KIA 경기가 끝난 후. 해태 타이거즈가 KIA로 바뀐 이후 12년동안 우승이 없었기에 이 멘트는 많은 KIA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수많은 야구 팬들이 이 멘트에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나에게 두산은 너무나도 큰 존재이기 때문에 도저히 한 문장으로 말할 수가 없다. - 더스틴 니퍼트
한국 생활 마지막 해인 2007년 KBSN과의 인터뷰 中. 아쉽게도 이 인터뷰가 있고 난 후 호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성적 부진으로 결국 방출되었다.
70퍼센트의 몸 컨디션으로도 100퍼센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프로다. - 박경완
난 한 게 없다. 그저 구단이 좋은 선수들을 잘 데려와 주고, 좋은 코치들이 정성껏 지도해줘 효과를 보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선수들 스스로 열심히 해준 덕분이다. 칭찬은 그분들이 받아야 한다. 난 결과가 안 좋았을 때 책임만 지면 된다. - 염경엽
넥센 구단이 선수들을 잘 키워 내는 것 같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 하지만 2016년 준플레이오프에서 LG에게 패한 이후 넥센 감독을 사퇴한 염경엽은 1년도 안되어 SK의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넥센팬들에게 금지어가 된다.
제 야구 인생은 시속 70㎞ 커브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느리고 돌아가지만, 스트라이크존에 꽂히는 공처럼 언젠가 성공할 거라고 믿었거든요. - 유희관
느린 구속이라는 투수로서의 약점을 제구와 구위라는 자신의 강점으로 덮어버림으로써 2013년부터 3년연속 10승 달성은 물론 2015년에는 18승으로 다승 2위의 기록과 동시에 최동원상을 수상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파란 유니폼을 입은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의 목표이자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응원해주시는 팬들에 대한 의무다. - 이승엽
나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한다. 오늘 풀어지면 내일은 두 배로 땀을 흘려야 어제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 오승환
그리고 그는 그 자세로써 고작 만 32세에 한일 통산 300세이브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전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피나는 노력에 대타란 없다. - 박병호
LG 트윈스 시절 미니 홈피에 걸어 두었던 말이다.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1할대의 타율을 찍는 중이었기에 팬들에게 까임보다 안타까운 시선을 받았지만, 2011년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후 그 노력의 결과가 나타나며 2012~3년 2년 연속으로 홈런왕과 MVP, 골든 글러브 등 다양한 부문에서 수상, 리그 최고의 타자로 자리잡았다. 2014년에는 2010년 이대호에 이어 40홈런 이상을 기록하고 KBO 역대 단일 시즌 홈런 3위(52개)에 오른 것으로 모자라 그 다음 해에는 53홈런으로 스스로의 기록을 경신하며 4연속 홈런왕을 찍는 등 KBO를 평정했다.
네 뒤에 있는 7명의 야수들이 널 도우려 하는데, 너는 왜 그 기회를 빼앗는가? - 차명석
레다메스 리즈가 흔들리자 삼진을 의식하지 말고 수비를 믿고 던져라는 의도로 한 말.
우리 팀은 이제 1게임이 남은 것이 아니라 10게임 더 남았다. - 변진수
내 손에서 공이 떠나면 그 공과 결과는 더 이상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 이태양
2014 시즌 전까지만해도 유망주에 그쳤으나 2014년 풀타임을 뛰며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고, 인천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에도 선출되어 좋은 모습을 보였다.
목동구장에서 박병호처럼 홈런을 많이 치지 못한 선수는 일단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나는 올해 목동에서 1개밖에 홈런을 못 쳤다. - 이승엽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 깰 수 있을 때 깨는 게 좋다. - 이승엽
2014년 시즌 50홈런 페이스로 자신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할 것이 예상되던 박병호에게 경기 중 루상에서 해준 말. 다만 박병호는 총 52개의 홈런을 때리면서 기록 갱신에는 실패했다.
기록은 선수의 가치를 올려준다. 감독은 선수의 가치를 올려주는 사람이다. - 염경엽
박병호의 51, 52홈런 이후 인터뷰에서.#
마음대로 쓰세요. - 손승락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이 마무리 손승락에게 선발 등판에 대한 의사를 묻자 이에 대한 답변. # 결국 LG 트윈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손승락의 선발 등판은 무산되었지만, 팀을 위한 손승락의 희생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단 한 마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PO 뒤에 이어진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 손승락은 팀을 위해 한번 더 희생한다.
정말로 우승하고 싶었다. - 염경엽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상대로 2승2패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5, 6차전에서 연달아 패하여 우승이 좌절된 후 인터뷰에서. 넥센 역사상 최고의 전력이었기에 우승을 놓친 것을 매우 아쉬워했을 것이다.
넥센에서 밴 헤켄이 어떤 투수였는지 잘 보여준다.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을 때 하지 못한다. - 최만호
포기하지 마라. 이 위기를 넘겨야 진짜 강해지는 것이다. 괴로워하지 말라. 나중에 그들이 무릎꿇게 만들면 된다. - 김성근
결혼을 앞두고 있던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계약 결렬 소식을 알리자. 그리고 202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 메이저리그 데뷔를 성공적으로치렀다.
야구에서 나이, 학력, 재력 등 모든 게 무의미하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해야 한다. 야구장에 가면 스무 살이든 마흔 살이든 다 똑같다. 후배들에게 뒤쳐지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 이승엽
2015년 1월 한 인터뷰에서.
남들은 나보고 운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KIA 타이거즈 같은 명문팀에서 1선발로 뛰고 있는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 윤석민
2007년 암울한 KIA 타선과 수비로 최다패를 기록했을 때. 지금에서야 끝나지 않는 재활로 먹튀 소리를 듣고 있으나 우완 에이스였던 시절에는 팬들에게 감동을 준 의미있는 말이었다. 기아가 당시 타격이 바닥을 치는 팀이라 타 팀에서였다면 더 많은 승수를 거둘수 있는데도 패를 기록하기도 했으니... 윤석민 본인이 타이거즈에 가지고 있는 애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말이자 야구를 본지 좀 오래 된 기아팬들이 왜 최악의 먹튀인 윤석민을 아직까지도 안타깝게 여기는지를 증명하는 말.
내가 마무리를 실패했을 때 나오는 소리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공을 던지겠다. - 권혁
2015년 5월 12일 인터뷰 중 혹사 논란에 대한 답변 중에 나온 말. 그런데 당시 권혁은 실제로도 심각하게 혹사당하고 있었다.
홈런은 점수를 주는 방식의 하나일 뿐입니다. 맞기 싫어 주자를 쌓아두다가 안타를 맞아도 점수를 주잖아요. 투수는 홈런 맞는다고 해서 야구인생을 패하는 게 아니라 승부를 피할 때, 도망갈 때 야구인생에서 패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승부를 두려워한다면 유니폼을 벗어야죠. - 안영명
이 기사에서 나온 말로, 안영명의 두둑한 배짱과 깡다구를 잘 알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도 안영명은 피홈런이 많은 유형의 투수다. 2009년엔 KBO 단일시즌 최다 피홈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나로 인해 뒤집어질 이 세상을 난 기대한다. - 김민우
자신의 모자챙 안쪽에 써놓은 문구로, 신인답게 패기있는 모습과 김민우의 목표를 알 수 있는 말이다.
주전 자리를 빼앗길까 두렵다. 초심을 잃었다 보이거든 언제든 말씀해 달라. - 박병호
박병호가 염경엽 감독에게. 이 발언은 2015년 7월 29일 경기 중 현재윤 해설에 의해 알려졌다. 하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이 말은 정말 깨는데다 앞일을 예감한 발언이라고 볼 수 밖에... 염감독의 2015년 시즌 참조.
사람들은 늘 마지막을 기억한다. - 장원준
2015년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한 말. 그리고 그는 더스틴 니퍼트와 함께 두산의 원투펀치로 맹활약, FA이적 첫 해에 두산베어스를 2015년 한국시리즈 챔피언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롯데보다 4억 덜 받았지만 우승 보너스를 챙겨감그러나 그의 마지막도 좋지 않다.
역시 야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마지막에 이기면 되는거죠. - 안경현
프리미어 12 4강전 한국:일본전에서 9회 초 첫 득점 이후 한 멘트. 이 경기 내내 실속없는 애국해설로 1이닝 전까지 신나게 까이던 안경현 위원은 마지막 순간 모든 야구팬을 바보로 만들었다.
꼼수는 실력을 이길 수 없다. - 이현승
제 1회 프리미어12 준결승 일본전 이틀전 인터뷰에서 한 말. 그리고 이 말은 현실로 일어났다.
입단식도 못 가는 연습생이었는데, 그런 것도 없는, 이게 진짜 신기해 나는, 전광판이... - 김현수
지금은 나중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팀이 잘 나가고 있으니 보다 책임감을 갖고 던져야 한다. - 정우람
무려 3이닝 59구를 던지며 팀의 연장 승리를 책임진 다음 날 인터뷰에서 한 말. 참고로 정우람은 2016 시즌 하위권 팀의 마무리 투수였음에도 61경기 81이닝을 소화했다.
투수가 공을 던져야 야구가 시작된다. 내가 던질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타자가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수인 내가 타자를 공격한다고 생각한다. - 브룩스 레일리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진정하지 않은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 - 이승엽
이젠 1이닝도 못 버티니 옷을 벗는 게 당연하다. - 최영필
은퇴를 선언하면서 남긴 말. 선수로서 자기관리가 매우 철저했던 최영필은 언제든 1이닝도 못 막는 순간이 오면 선수 생활을 정리하겠다 마음먹고 있었으며, 현재 자신의 자신감과 몸 상태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냉정한 현실을 알고 있다 답했다.그리고 KIA 불펜들을 상대로 나날이 의문의 1승을 적립하고 있다.
야구장은 제 인생에서 정말 학교와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야구는 제가 선택 한 인생 과목과도 같고요. 야구를 통해서 너무나 많은 그러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 박찬호
못 떠나겠어요. 내 최종 목표는 영구결번인데 그 꿈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아요. - 양현종
100억대 계약 기회를 놓치고 1년 계약을 하고, 가치가 최고로 치솟은 올해도 굳이 KIA 잔류를 먼저 선언한 이유에 대해 인터뷰에서 한 말.[송년 인터뷰&] 양현종의 ‘너는 내 운명’…“아내 거짓말 덕에 KS 완봉승 했죠” 지역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로서의 자부심과 애정이 담긴 말이다.
너무 커서 뭐라 간단하게 말하기 어렵다. 내 첫 직장이었고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었다. 같이 지낸 시간이 부모님과 보낸 시간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 이우민
형, 심장이 좀 떨리나. 두근두근 대나. 이게 마무리다, 형. 내가 막아줄게. 내가 다 막아줄게. 자신있게 던져. - 김태군
지난 11년동안 한화 팬들이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 2018! 가을, 한화 이글스가! 암흑기를 끝냅니다. - 한명재
마운드 위에 올라가면 항상 누구보다 내가 최고라는 마음가짐으로 던졌습니다. - 서준원
1점대 평균자책점이나 다승왕은 내가 조절할 수 없기에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KBO 최고의 투수가 되는 것보다는 팀에 필요한 투수가 되고 싶다 - 앙헬 산체스
2019년 7월 2일 문학 롯데전서 12승째를 거두고 인터뷰에서 한 말. #
야, 너나 나나 은퇴라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우리 같은 선수는 그냥 잘려서 사라지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은퇴할 수 있는 선수는 몇 명 안 돼. 양준혁, 이승엽, 박찬호 선배 정도라고. 나머지? 나머지는 다 방출이지. 난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은퇴 운운하는 배부른 소리하지 말고 열심히 달려. 난 나이 생각 안하고 무조건 직진할 거야. - 권오준
비야구인이었다. 관계 없습니다. - 최일언
젊어서 흘리지 않는 땀은 늙어서 눈물로 나온다. - 최일언
한선태의 첫 등판 때 던진 공에 적어둔 말.
그 팀이 한화 이글스니까요. - 류현진
왜 굳이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자 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그냥 빅리그에서 은퇴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저는 신도 아니고, 점쟁이도 아니다. 그 역할은 선수들이 다 하고 있다. 기록적으로 강점 있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다. - 장정석
2019 플레이오프 승장 인터뷰에서 투수교체 적중에 대한 질문의 답변.#
아무리 인물이 뛰어나도 야구를 못하면 바보 같이 보이고, 괴물 같이 생겨도 야구만 잘하면 멋있게 보인다. - 김응용
그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 신분으로 참석한 2019년에 이만수 홈런상 및 포수상 시상식에서 이만수 홈런상을 받은 야탑고 안인산과 이만수 포수상을 받은 유신고 강현우의 화장한 모습과 눈에 차지 않는 몸상태를 보며, 예비 프로선수로써 좀 더 훈련에 매진해 줄 것을 당부하며 남긴 말.근데 그냥 지나가듯 한 말인데 무슨 꼰대마냥 말한 것 같잖아
방망이는 못 치면 나만 죽는다. 하지만 수비 실수 하나 하면 팀이 질 수 있다. - 정훈
"팬들은 감동을 원하지 기록을 원하지 않는다" - 이상훈
꼴등 하지 말자는 메시지 보다 1게임, 1구에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이기고 싶다고 이기고 지고 싶다고 지는 게 아니다. 남은 12게임, 2020년은 다시 오지 않는다. - 박경완
팀의 포스트시즌 탈락이 조기 확정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1.1.2. 부정적 명언
원문은 "박한이는 정신병자다.1회 무사 2루에서 박종호의 깊숙한 우익수 플라이 때 2루에서 기다리다 3루로 가야 하는데 미리 뛰는 바람에 2루에 발이 묶였다. 그때 3루에만 갔으면 경기 초반 진필중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는데…. 3회 홈런을 친 것은 칭찬할 만하지만 박한이는 본헤드 플레이 전문가다."
이 발언은 박한이 특유의 타석에 들어서서 취하는 길고도 특이한 행동 때문에 이것과 엮어져서 현재는 의미가 이쪽으로 많이 바뀌어져 있다. 하지만 본래 저 발언을 한 의도는 상기와 같다. 나중에 해명하기를, 화가 났지만 그냥 웃자고 해본 말이었는데 기자들이 곧이곧대로 써버린 거라고 한다. 2013년 FA 거품 덕에 또 다시 이 명언이 조명받고 있다...원래 기자들한테는 미친 놈 운운했겠지만 그건 넘어가자
비난은 순간이고 기록은 영원하다. - 김영덕
김영덕 감독은 선수들의 타이틀 획득을 위해 9연타석 사사구나 선발 투수의 불펜 투입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비난이 들끓었다. 2010년 인터뷰에서 본인은 그런 말 한 적이 없고 기자들이 지어낸 거라 주장했다. 기사 그러나 현실은 비난도 영원하다(…). 1984년에 상대하기 만만한 롯데를 한국시리즈 상대로 맞이하기 위해 져주기 시합을 했다가.[34] 최동원에게 패배하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후에 타이틀을 위해 승부를 피하거나 출장을 하지 않는 등의 상황이 오면 위의 말이 다시 언급되곤 한다. 대표적으로 2009년 박용택이 타격왕 타이틀을 위해 마지막 롯데전에 출전하지 않자 다시금 이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35] 그리고 2015년 밴헤켄이 탈삼진왕을 달리고 있었으나, 차우찬이 막판에 불펜알바를 뛰며 탈삼진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때 이 말이 회자되었다. 하지만 차우찬의 경우는 팀의 사정상 케이스가 다르다는 옹호 의견도 없지 않다.임창용이 불지르는 바람에[36]
2004년 FA 시장에는 거물 박진만, 심정수의 행보가 단연 화제였다. 당시 '큰 손' 삼성 라이온즈가 나서 두 명을 모두 영입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자 언론에서 이에 대해 물어보자 프런트 쪽에서 발뺌하며 언급했던 말. 근데 삼성은 당시까지 FA 영입을 가장 많이 한(이강철, 김동수, 양준혁, 박종호 4명) 구단이었다.그런거 다 배제하고도 삼성이 돈이 없다는 게 말이 될까?하지만 거액을 들여 이들을 전부 '모셔 온' 것은 결국 삼성이었다. 이로 인해 야구 팬들은 삼성을 가리켜 '돈 없는 구단'이라며 비아냥 거렸는데 삼성팬들도 자기들이 듣기에도 어이없었는지 때때로 '우리는 돈없는 구단'이라며 자조했다. 실제로 이 FA 영입 후 2016년 이원석을 영입하기까지 삼성의 FA영입은 없었다.[39] 그 이유는 바로 아래 항목 참조. 그리고 돈없는 구단의 현실이라는 짤방들도 세트로 묶여 유명해졌다.
사실 이 인터뷰는 특정 구단이 방송사에 돈을 주고 자팀 위주로 중계 방송을 편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보도에 대한 해명이다. 중계 방송사가 2~3개밖에 없어 중계되지 못하는 경기가 있었던 이 당시 삼성 등 특정 구단의 경기 중계율은 100%를 초과했으며 그에 따라 비인기 팀이었던 SK, 현대의 경기가 거의 중계되지 못하다 보니 이런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일일 5경기가 모두 중계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는 프로야구 암흑기로 공중파 중계를 위해 한여름 낮경기도 불사했었던 시절이었다. 또한 '구단이 돈이 없다'는 말은 프로야구단이 적자 법인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인데, 삼성 입장에서는 암흑기에도 불구하고 리그 스폰서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투자했다는 이유로 이런 오해를 받게 된 데 대해 굉장히 불쾌했을 것이다.
이후 FA 시장이 과열되고, 삼성이 스포츠단의 모기업을 제일기획으로 이전하는 등 예전과는 달리 스포츠 투자에 소극적으로 변해서 박석민, 최형우 등의 선수가 FA 시장에서 타 구단으로 이적하게 되자 "이젠 진짜로 돈 없는 구단이다"라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16년 7월 10일 삼성이 최하위로 떨어지자 최훈은 웹툰에서 이 말을 언급했다.#
삼성이 박진만, 심정수 등 현대 선수들을 FA로 빼 가서 2005년 우승을 차지하자 김재박 당시 현대 감독이 했던 말. 이에 열받은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은 앞으로 FA는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이 이후 장원삼을 사오기 전까지[44] 삼성은 한 번도 외부 FA를 잡지 않았다. 그리고 2006년 오버 페이스로 우승한 이후 부상자들이 삼성에 넘쳐나게 되자, 삼성은 이후 445라는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사실 좋은 FA 매물들이 많아서 삼성에도 전력 상승의 기회가 있었으나, 선동열 감독의 자존심 때문에 이를 무시했고 삼성은 결국 삼성 팬들이 기억하기 싫은 암흑기 빠지게 된다. 후대에 선동열이 KIA에서 막장급 성적을 찍게 되자, 김재박의 이러한 효과적인 심리전(?)에 대한 재평가가 슬슬 이뤄지고 있는 상황. 그러나 중요한 건 현대 시절의 김재박 본인도 쌍방울에서 박경완, 조규제, 마일영을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오는 등 돈으로 선수 모아서 우승을 시켰다. 그리고 망하기 일보 직전이던 현대에서도망나와 역시 한 돈 쓰는 LG 트윈스 감독에 임명되어 당시 투타 최고 FA였던 박명환, 정성훈, 이진영 등을돈질영입하여 당시 지속되던 암흑기(6668를 끊고 다시 우승에 대한 포부를 드러냈으나 현실은 시궁창. 재임 3년 동안 587이란 최악의 성적을 남기고[45] 사퇴했다. 암흑기를 끊기는커녕 도리어 비밀번호를 연장시킨 꼴(...). 돈으로 선수 모아도 안 되는 걸 본인 스스로가 반증했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그런데 스즈키 이치로의 저 발언은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감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스즈키 이치로 항목 참조. 참고로 한국과 대만이 30년 동안 일본야구를 이길 생각을 하지 못하겠다고 주석을 더 붙여서 기사를 낸 건 한국도 대만도 아닌 오히려 일본 언론이다. 그런데 2013년 타이중 참사 이후 이 말은 이치로가 사실은 한국야구를 높게 평가해준 것이라며(...) 재평가를 받게 된다.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동점 5-5 1아웃 상황에서 나온 끝내기 홈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무덤덤하게 전해서 놀림거리가 되었다. 당시 중계 방송국이 일본 프로야구 중계, 허접한 카메라 워크 등으로 국내 야구 팬들에게 진작 미운털이 박힌 SBS여서 한층 가열차게 까였다. 게다가 7차전 끝내기 홈런은 메이저리그에도 한 번 밖에 없는 진기록인데도 그렇다(...). 이 이후 2011년 SBS는 스포츠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되는데, ESPN과 제휴해 SBS ESPN을 세우면서 스포츠 중계의 질이 좋아졌다.
볼이 가운데로 꽂혀도 볼에 혼이 실리지 않으면 그건 스트라이크로 인정을 안 합니다.
흔히 김풍기 심판이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김풍기 심판은 그런 말 한 적 없다(…). 야구 팬들의 김풍기 심판에 대한 적개심이 그대로 드러난 말이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사실 일본에도 一球入魂(일구입혼)이라는, '공 하나 하나 혼신을 다 해 던진다' 라는 야구에서 비롯된 관용구가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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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다. 그리고 빠른 템포의 경기 운영과 타자와의 승부를 즐기는 편이다. - 톰 션
2008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대체용병으로 들어왔다가 무려 평균자책 10.73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기고 집으로 가는 바람에 그 임팩트로 인해 투수(특히 주로 삼성)가 삽질하면 그 짤방에 합성되어 올라오곤 한다. 윤 션이라든가. 무엇보다 숀 헤어의 3할, 30홈런 발언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이건 공식 인터뷰에서 나온 말인지라 빼도 박도 못한다.
2008년 극도로 부진하던 이승엽이 당년도 1호 홈런을 날리자 백인천이 캐스터와 함께 흥분하여 요시! 그란도 시즌!이라는 의미불명의 대사를 외쳤다. 몬더그린이란 주장도 있으나, 요시! 그란도 시즌이라는 발음 자체가 굉장히 임팩트있는 단어인데다 일단 웃겼기 때문에 유행어로 정착, 이후 야구 갤러리에서 xx! 요시 그란도 시즌!이라고 애드립을 치게 되는 소스가 되기도 하였다. 원래는 "요시 그란도 시즌!" 이후 계속 요시 요시라고 중얼거리다 "라지에타가 터져버렸어 아주 그냥." 이 풀버전이지만 뒷부분은 임팩트가 떨어져서인지 사용빈도가 낮다. 백인천 해설 스타일의 정수[51]가 이 한 문장에 모두 들어 있으며, 이것의 영향으로 구글에서 "요시"를 입력하면 자동 검색 맨 위에 "요시 그란도 시즌"이 뜬다(…).
하지만 3년이 지난 2011년, 이 명언이 사실 집단 몬데그린(역시! 하나 둘 셋이야!)이란 떡밥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국내 야구 팬덤을 혼돈의 카오스로 몰아넣었다.결론은 왠지 '하나 둘 셋이야' 같긴 한데 그래도 그란도 시즌이다어쨌든 현대판 예송논쟁을 야기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인기를 끈 명언이다.
병신족밥꼴때ㅔ끼야ㅋ - 류현진
미니 홈피에 친구가 살살 약올리자 리플로 남긴 말.# '꼴데/세끼야'가 아닌 '꼴때/ㅔ끼야'이다. 프로 입단 전이라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알려졌다. 이 말 때문에 야빠들은 롯데를 깔 때 '병신족밥'이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사용한다. 롯데 팬들은 화가 날 만했지만 하필 류현진을 거르고 데려온 나승현에게 데인 데다 류현진이 워낙 호감 이미지라 이 말에 대해 크게 화내지 않는다. 훗날 류현진은 '꼴때'는 당구 은어라고 해명했는데, 사실 그 친구는 롯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다가 글의 문맥 또한 당구 얘기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에 류현진의 해명이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이런게 명언문서에 써져있다.
2019년 4월 28일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중, 8회말 투수 구승민이 던진 공이 정수빈의 등에 맞았다. 이때 김태형 두산 감독과 공필성 당시 코치가 홈 플레이트에 나왔고 김태형이 무언가 이야기를 했고, 곧 이어 롯데의 양상문이 김태형 감독에게 "야 너 뭐라고 했어 임마" 라고 외치며 감독 벤치 클리어링이 이루어졌다. 경기 당시에는 양상문 감독에게 비난이 오갔지만 경기 종료 후 김태형 감독이 공필성 당시 코치와 구승민 선수에게 말도 담기 힘든 폭언을 했다. 이후 두산이 시즌 중반 성적 부진에 빠지자 팬들 사이에서는 "감독같지 않은 새끼가" 라면서 조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두산이 거짓말처럼 역전 우승을 하면서 어느 정도 묻힌 감도 있고, 결정적으로 본인은 저 말을 하지도 않았다는 게 문제.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현진이 형은 내가 알기로는 단순해서 조금만 생각을 가지고 치면 얼마든지 칠 수 있다. - 김광현
2007 시즌을 앞두고 미디어데이 행사장에서 한 말. # 당시 류현진은 전 시즌에 프로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투수 3관왕, 시즌 MVP 등 모든 타이틀을 쓸어담은 괴물 신인에다 전국구 스타였던 터라 이 말을 듣고 즉석에서 황당함과 당황감을 담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54] 둘은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고 이후 김광현이 재밌게 하라는 구단의 요구에 따라 웃자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백만 안티는 생겨버린 후였다. 이후 김광현은 첫 시즌을 말아먹고 실력은 없는데 입만 살았다고 '오랄 킴'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저 대사는 김광현이 망하거나 류현진이 잘 던질 때(특히 SK전)마다 울려퍼지게 된다.형들 저 단순한 공을 왜 그렇게 못 쳐요?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 문서 참조.
양준혁 해설 위원이 방문했던 다큐에서 라이언 가코에게 했던 말. 줄여서 나믿가믿으로 쓰인다. 이 말을 들은 양준혁은 "나도 가코처럼 믿어주는 감독 밑에서 뛰었으면 얼마나 좋을꼬?"라는 말을 남겼다나.# 현실적으로 가코는 믿어줄 만한 성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대신 '가'로 시작하는 다른 외국인 선수인 카림 가르시아나 가도쿠라 등에 대해서 더 자주 쓰인다. ~~그리고 류중일은 7년 뒤 나믿가믿을 또 한 번 시전하였다. 물론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엉뚱하게도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가빈 슈미트. 다른 분야에서는 예능 프로 영웅호걸에서 가희에게 PD가 "나는 믿을 거야 가희 믿을 거야"라고 자막으로 드립친 적도 있었다.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 - 이진영
'야잘잘' 또는 '잘놈잘'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OBS에서 방영하던 SK 와이번스 전문 다큐멘터리인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이진영이 박재상에게 한 말로, '노력으로 넘어설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이 존재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한물 간 것으로 치부되거나 오랫동안 부진하던 왕년의 스타가 결정적인 상황에서 승부를 뒤집는 등의 활약을 보여줄 때 자주 사용된다. 그리고 못하던 선수가 갑자기 잘하다가 못하는 경우(즉 DTD)에도 사용한다. 축구계의 명언인 '클래스는 영원하다'와도 상통하는 명언. 그리고 최훈 카툰에서는 장성호가 "대괄이 넌 10년 정도 3할 치고 나서 그런 소리 해라"라며디스리즈를 저격했다.정작 본인도 9년 연속에 그쳤지만
웃어라 웃어. 야구는 못해도 연봉은 나온다. - 양승호
2011년 4월 12일, 19타석 무안타로 빈축을 산 이승화를 격려하면서 나온 말. 며칠 전 황재균에게 한 말과 대비되고 뒤이은 아래 발언으로 까임이 배가 되었다. 그런데 2012년에 진짜 야구 못해도 연봉받는 사람이 나왔다. 한편 양승호 전 감독이 체포되면서 이 말은 다시 재조명받았다.감방에 들어가도 콩밥은 나온다.
국내 여건상 프로야구는 6개 구단이 맞다 - 장병수
NC 다이노스의 창단부터 줄기차게 반대해 온 롯데 자이언츠의 사장 장병수의 발언. NC 다이노스 창단 이후 2013시즌 1군 진입에 대해 반대를 표명하는 와중에 나온 발언으로 그 전까지도 줄곧 경남 지역 텃밭을 빼앗기기 싫어서 반대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확신을 준 발언으로 이 발언 이후 롯데 팬들에게조차 욕을 들어먹었다.[57] 2013 WBC 타이중 참사와 시즌 초반 경기 수준이 뚝 떨어져 버리는 상황이 오자 "롯데가 반대했다는 걸 기록으로 남겨 달라"라고 주문까지 했던 사실이 재조명 받을 것 같은 설레발이 있었지만, 역시나 설레발로 끝났다. 특히, NC가 진입한 첫 해인 2013 시즌에는 NC를 상대로 롯데가 압도적 우세를 보이지 못하면서 5위로 탈락. 거기다 NC는 무려 2개 팀을 제치고 7위를 달성했으니 타어강과 함께 길이 남을 설레발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2014년, NC는 3위를 달성해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반면, 롯데는 7위 추락은 물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까지 터지면서 설레발의 정점을 찍게 된다.자기 구단이 6개 구단 안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건 모른 모양.장병수 : 6개구단이 맞습니다. 물론 저희팀 빼구요허나 2016년, NC가 소속 선수들의 승부조작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9~10구단 창단으로 인해 프로야구의 수준 저하를 우려했던 장병수 사장의 말이 다른 의미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그 모자 삐뚤게 쓰는 건 트레이드 카드가 됐어요 - 박노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던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국민 타자 이승엽을 두고 내뱉은 발언. 이것과 양준혁의 은퇴 건 2가지만으로도 선동열 전 감독에게 치를 떠는 삼팬들도 있을 정도다. 물론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젊은 클린업 트리오인 박석민, 최형우, 채태인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승엽은 요미우리에서 2군을 전전하던 신세였다. 하지만 양준혁의 강제 은퇴와 맞물려 한국 야구와 삼성이 낳은 대스타이자 역대 최강의 타자인 이승엽을 홀대하는 듯한 이 발언이 많은 삼성팬의 공분을 사게 되었다. 그리고 이해 타격 난조로 무기력한 코시 4연패까지 당하면서 구단 고위층에게 밉보이면서[60] 결국 감독직을 사퇴하게 되었다. 한편 이승엽은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 삼성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선동렬의 발언 때문에 삼성에 갈 수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오릭스 버팔로스와 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2011 시즌이 시작되었고 류중일 감독이 취임했다. 류중일은 '삼성 올래?' 등 발언으로 이승엽의 복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이승엽을 감동시켰고, 결국 이승엽은 1년 남은 오릭스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2012 시즌 삼성 라이온즈로 전격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복귀하자마자 0.307 21홈런 85타점을 올리면서 삼성을 우승으로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고 선동렬의 이 발언은 다시금 회자되면서 두고두고 까이게 되었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패러디되었다.이승엽 KIA 벤치에 자리 없다.
다만 이 발언의 뉘앙스에는 약간 오해가 있는데, 선동열이 인터뷰 내용 역시 단호한 거절의 뉘앙스는 사실 기자의 제목 뽑기 실력에서 비롯된 것. 원래 인터뷰는 국내에 복귀하면 연봉차이가 큰데 후배 선수들이 의욕이 나겠냐며, 일본에서 결착을 보라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었다. 원문 기사를 보면 당시 넥센 감독이었던 김시진 감독도 비슷한 의견을 내보였다. 물론 평소 선동열의 꼰대 기질과 레전드 백정질을 감안하면 다소 악의적으로 보이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다(...).
선동열 감독이 2010 시즌을 앞두고 한 말. 그리고 2010 시즌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 꼴찌를 기록한다. 그리고 2011년 류중일 감독이 1위로 올라서자마자 디씨인사이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이 짤방이 헌정되었다.
2007 시즌 뉴욕 메츠 등에서 뛰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박찬호를 보고 한 말이다. 본인이 선수 생활 말년에 미국 진출을 모색했지만, 구단 측에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냥 쿨하게 은퇴를 결정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로 보인다. 하지만 박찬호는 부진에 굴하지 않고 2012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이 발언은 1997년 IMF 사태 시절때 영웅을 모욕하는 이야기이다.
2013 시즌 초반 KIA 타이거즈가 치고 올라가면서 1위를 기록하자 5월 3일 네이버의 스포츠 웹진인 매거진 S에 작성한 칼럼의 제목. 하지만 이 칼럼이 올라간 후 KIA는 귀신 같이 DTD를 타며 한 달 만에 6위까지 추락했으며, 안 그래도 기자들의 무한 푸시를 받고 있는 KIA에 대해 반감이 많았던 다른 팀 팬들이 KIA가 질 때마다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됐나(줄여서 타어강)'를 조롱의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덩달아 당시 표지 모델(?)이었던 앤서니 르루는 퇴출. 용법도 다양해서 타이거즈 대신 '○○는 어떻게 다시 □□가 됐나' 식의 용법으로 다른 이름 집어넣으면 아무렇게나 조합이 가능하다. 어쩌다 갑자기 반짝하다 순식간에 몰락하는 팀이나 선수가 나오면 자주 눈에 띈다. 그런데 기아는 2017년 진짜로 강팀이 된다.
다른 팀은 강민호 구경도 못할 것.
줄여서 강구못. 롯데 프런트는 강민호의 FA 계약을 앞두고 얼마나 자신을 갖고 있었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강민호와 4년 75억 계약을 맺으면서 다른 팀은 정말 구경도 못했다. 이를 두고 2013 한국 프로야구는 번저강으로 시작해서 강구못으로 끝났다는 드립도 나왔다. 그러나 2017년 강민호는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100승 투수와 호흡을 맞춰본 포수가 몇 명이나 되겠나? 나는 4명의 100승 투수와 호흡을 맞춰봤다. 내가 현역 시절 명포수로 이름을 떨쳤던 것도 투수의 역할이 크다. - 조경택
내일 경기 준비 잘 하겠다 - 이만수
2014년 5월, SK 와이번스가 투타 난조로 1위에서 7위로 급격히 추락하는 동안 이만수 SK 감독이 경기 패배 후 덕아웃을 떠나면서 이 말만 남긴 후부터이다.[63] 평소에는 구설수에 자주 엮이며 이런 저런 얘기를 잘 하던 이 감독이 막상 경기에서 지면 아무런 총평 없이 그저 준비만 잘 하겠다는 말만 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만수 감독의 안티가 되어버린 SK 팬들에 의해 대책없이 팀을 위기로 몰아가는 무능한 자기 팀 사령탐을 까는 대표적인 발언이 되었다.그리고 허구연 위원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 이만수 감독을 지목하자 "내일 물 맞을 준비 잘 하겠다"는 덧글이 올라왔다(...)월간 승률 1할대까지 추락했던 SK는 5월 말부터 연속 위닝 시리즈를 가져가면서 반등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5월 최종 성적은 9승 15패, 승률 0.375에 그치고 말았다.
어ㅡ예. - 양준혁
라뱅 쓰리런 당시 외야로 살짝 넘어가는 뜬공인 줄 알았으나, 저게 넘어가버려서 내뱉은 감탄사의 일종(?). 안 그래도 야구 팬들의 대축제였던 라뱅 쓰리런이었으나 저렇게 어물쩡 넘어가버리면서 까였고, 배기완과의 시너지 효과까지 합쳐서 어마어마하게 재미없는 해설이 나오자 놀림거리로 써먹고 있는 중.
전 실수한 거는 선수들에게 절대 얘기 안 합니다. 대신 코치를 조집니다. -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의 염경엽 감독이 2014년 12월 9일자 스포츠투나잇 인터뷰에서 한 말. 당시염감독 얼빠김선신 아나운서가 염경엽 감독에게 "표정에서는 변화가 없지만, 혹시 경기 끝나고 선수들에게 표현을 많이 해 주는지 궁금해요."란 질문에 염 감독이 대답한 것. 이 말을 들은 김선신도 경악했지만, 본인도 당혹해 하면서 이거 나가도 되냐고 물었다. 급후회했지만 방송에는 나갔고, 이 인터뷰를 본 팬들은 옳다구나하면서 넥센 코치는 극한직업이라고 놀리기까지 했다.그리고 이걸 본 코치들은 단체로 멘붕했다.그리고 최만호는 롯데로 도망갔다 카더라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스프링캠프 도중 나이저 모건을 귀국시키며 했던 말. 2015 시즌을 거치며 다양하게 재평가 받고 있는 중이다.그러나 재평가 자체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경우도 있긴 있다.
롯데 자이언츠가 지역 라이벌인 NC 다이노스와의 2016 시즌 상대전적이 단 1승만 거뒀을 정도로 처참하자 창원지역 롯데 응원단인 창원갈매기가 9월 25일 경기에서 걸은 현수막에 적힌 문구. 롯데는 이 날도 졌으며 이후 홈 최종전에서도 연패당하며 1승 15패로 마쳤다. 상대전적과 더불어 동남 방언의 어감으로 인해 타 팀 팬들에게도 유명해졌다. 단순히 1승 15패라는 전적 뿐 아니라 2013년 이후 가을야구에 번번이 좌절하는 롯데 팬들의 분노를 나타낸 문구라 할 수 있다. 그 이듬해 롯데는 와신상담하여 NC에 우세를 거둘 뿐 아니라 가을야구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보이게 된다.그러나 다음해 원상복구
2009년 SK 와이번스가 계속해서 1위를 지키자 한 말. 하지만 시즌 후반에는 2위로 고꾸라져 산에 올라가는 입장이 되었으며???: 김성근인지 뭔지 올라오더라고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KIA 타이거즈에게 패했다. 여담으로 같이 있던 인물 중엔 스포츠서울 기자이자 김 감독의 개인 팬로 악명높은 장강훈이 있었다.
고려대 후배 김상훈의 국대 승선을 위해 소변에 약을 탔다. - 진갑용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로 선발된 도중 도핑테스트에 걸린 진갑용이 한 변명. 진갑용은 KBO 리그 도핑 1회 적발자로[66] 금지약물이 걸리자 "대학 후배인 김상훈을 대표선수로 만들어서 군 면제를 시켜주고 싶어서 일부러 소변에 금지약물을 넣었다."라는 후배 핑계를 댄 것이다. 이 일로 진갑용은 국가대표에서 탈락했지만 당시 KBO에는 도핑에 대한 징계규정조차 없었고 결국 삼성 구단 내규에 의해 벌금 200만원 및 개인적으로 300만원을 수재의연금으로 기탁하는 것으로 징계가 마무리되었고 심지어 2002년 당해에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였다.
인천의 전설이 되겠습니다! - 서상준
2018년 10월 6일 SK : KIA DH 2차전 클리닝 타임 중 신인 소개에서의 인사말. 그런데 부정적 명언이 된 이유는 이 말을 한 선수가 2020년에 일어난 SK 와이번스 2군 기합 및 구단 은폐 의혹 사건에 연루된 선수이기 때문이다.
1.2. 해외
1.2.1. 미국
You've got to be very careful if you don't know where you are going because you might not get there.
어디로 가는 지 모른다면 당신은 곧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갈 것이다. - 요기 베라
가보지 못한 곳이라고 주저한다면, 결코 그곳에 갈 수 없을 것이다. - 요기 베라
경기는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 레지 잭슨
It's not your arm that makes you a great pitcher. It's that thing between both of your ears we call a brain.
투수를 위대하게 해 주는 것은 팔이 아니라 뇌라고 불리는, 두 귀 사이에 있는 것이다. - 그렉 매덕스
리그에는 두 가지 승수가 있다. 1등과 그 나머지다. - 톰 시버
내 몸엔 파란 피가 흐른다. - 토미 라소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명언.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이 팀 컬러로 파란색을 쓰고 있는 관계로 삼성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간혹 쓰인다. 두산에서 은퇴했지만 삼성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던 배영수에게 붙은 '푸른 피의 에이스'가 예시.
슬럼프란 푹신한 침대와 같다. 들어가기는 쉽지만 빠져나오기는 어렵다. - 자니 벤치
일 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 - 토미 라소다
A man has to have goals - for a day, for a lifetime - and that was mine, to have people say, "There goes Ted Williams, the greatest hitter who ever lived."
남자라면 그날의 목표,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나의 목표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저기 테드 윌리엄스가 지나간다. 이제까지 존재한 타자들중 가장 위대한 타자다." - 테드 윌리엄스
그리고 테드 윌리엄스는 MLB의 마지막 4할 타자가 되었다.
야구를 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일이 되었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더 이상 야구가 아니다. - 조 디마지오
Any time you think you have the game conquered, the game will turn around and punch you right in the nose
게임을 정복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게임은 다시 돌아와 당신의 코에 펀치를 날려줄 것이다. - 마이크 슈미트
선수들은 나이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야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늙어버리는 것이다. - 사첼 페이지
사첼 페이지는 1경기뿐이긴 했지만 59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기도 했다.
How old would you be if you didn't know how old you are?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 나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나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사첼 페이지
그는 니그로 리그에서 전설적인 기록을 세운 뒤 42세의 나이가 돼서야 흑인 차별이 철폐된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었다.
링크된 항목의 전설적인 실책 상황에서 나온 말로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명대사가 되었다.
계획을 짜놓고 실행하다가 운이 따를 수는 있어도 운이 따를 것을 감안해서 계획을 짜서는 안된다는 의미와 운이란 계획한 자에게 찾아온다는 중의적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철저한 계획을 통해 스프링 캠프의 도입, 팜 시스템의 정립, 흑인 선수의 등용을 통해 다소 처졌던 전력을 가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브루클린 다저스를 일약 내셔널 리그의 강호로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의 메이저리그를 만들어냈다.
See that fella over there? He's 20 years old. In 10 years, he's got a chance to be a star. Now that fella over there, he's 20 years old, too. In 10 years he's got a chance to be 30.
저기 있는 저 선수가 보이는가? 지금 그는 스무 살이다. 10년 후 그는 스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 옆에 있는 선수도 역시 스무 살이다. 10년 후 그는 서른 살이 될 가능성이 있다. - 케이시 스텐겔
뉴욕 메츠 감독으로 있던 시절 에드 크레인풀과 그렉 구슨을 두고 한 말. 크레인풀은 스타까지는 안 됐지만 그래도 18년간 메츠에서만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했고, 반면 구슨은 5년 만에 은퇴했다.그렇지 않다면 좀 무서울 거다.
You can hate a man for many reasons. Color is not one of them.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고작 피부색 따위여서는 안 된다. - 피 위 리즈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 팀으로 참가하면서 소속 팀 탬파베이 레이스의 허락을 받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며.누군가 생각난다면 기분 탓이다.근데 월급은 구단에서 준다.정작 로드니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뛴 후유증으로 2013 시즌 블론을 자주 하면서 불드니라는 별명이 붙으며 까였다.
You can't tell me nothing about death. Death ain't nothing but a fastball on the outside corner.
죽음이란 아웃 코스를 순식간에 지나가는 패스트볼과 같은 것이다. - 조시 깁슨
Baseball is like a poker game. Nobody wants to quit when he's losing; nobody wants you to quit when you're ahead.
야구는 포커와 같다. 잃고 있을 때 그만두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고, 따고 있을 때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다. - 재키 로빈슨
Well, you can't steal first base.
음, 1루는 못 훔치죠. - 레오 마조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투수코치였던 시절 1995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하기 전에. 당시 신시내티는 발이 빠르기로 유명한 팀이었지만 1루에 나가지 못하게 투수들이 틀어막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결과는 애틀랜타의 스윕. 사실 엄밀히 따지면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란 룰이 있으니 1루를 훔치는 게 불가능하지야 않다.
좌완 투수 상대로 도루하는 게 더 쉽다. 눈빛으로 제압할 수 있으니까. - 리키 헨더슨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야구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이고, 두 번째로 기분 좋을 때는 야구경기에서 졌을 때다. - 척 태너무승부는MLB는 무승부 없잖아
모든 희망이 없어질 때까지, 불가능한 일이란 결코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 짐 애보트
그는 조막손 장애를 앓고 있으면서도 메이저리그에서 노히트를 기록했다.
I decided I'd rather ride the buses in the minor leagues than practice law for a living.
생계를 위해서 법률 업무를 보는 것보다는 마이너 리그에서 버스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더 낫겠다고 결정했다. - 토니 라 루사
라 루사는 별볼일 없었던 선수 시절을 마감하고 로스쿨에서 법률을 배워서 로펌 입사까지 결정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까지 뿌리치고 마이너리그 코칭스탭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Winning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my life, after breathing. Breathing first, winning next.
내게 승리는 숨 쉬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 숨쉬고 있다면 승리해야 한다. - 조지 스타인브레너
All ballplayers should quit when it starts to feel as if all the baselines run uphill.
모든 야구 선수들은 모든 베이스라인이 오르막길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때 은퇴해야 한다. - 베이브 루스
선수 생활을 정리하며 남긴 말.
앨스턴은 큰 덩치와 달리 조용한 성격으로 별명 또한 '조용한 남자(The Quiet Man)' 였는데, 그의 과묵함과 잘 어울리는 명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년들이여, 연습하고 노력하라. 모든 것을 내던져라. - 디지 딘
나는 늘 특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전을 멈출 수가 없었다. - 배리 라킨
야구가 없는 겨울에 뭘 하느냐 묻는다면, 나는 창 밖을 내다보며 봄을 기다린다고 말할 것이다. - 로저스 혼스비
1948년 뉴욕 자이언츠 감독이 된 후, 기자가 찾아와서 전임 감독인 멜 오트도 좋은 사람이었다고 하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후 듀로서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했다.
Baseball is like church. Many attend, few understand.
야구는 교회와 같다. 사람들은 많이 오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 레오 듀로셔
듀로셔는 야구에 야구 외적인 부분이 끼어드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재키 로빈슨이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데뷔했던 시기의 감독이었는데, 로빈슨이 합류하면 팀이 승리하고 선수들에게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선수들을 설득했다. 즉, "피부 색이 뭔 상관이냐 야구만 잘 하면 됐지" 정도의 마인드.
야구는 후회를 관리하는 게임이다. - R.A. 디키
자신의 자서전 <어디서 공을 던지더라도>에서 남긴 말. 지난 경기에서 공을 잘 못 던졌다고 후회하기보단 다음 경기에 던질 공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한 말이다.
저주는 그저 미신일 뿐입니다. 그런 것에 얽매이면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 조 매든
만일 내가 가족을 부양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정형편에 여유가 있다면 반드시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살아남는 야구선수가 될 것이다. - 스캇 보라스
다시 태어난다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는가, 처음부터 변호사(에이전트)로 시작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한 말이다. 결과적으론 A-Rod나 로빈슨 카노 같은 슈퍼스타보다도 큰 돈을 벌었지만, 그 역시 메이저리그를 노리던 한 명의 야구선수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태어날 아기를 생각해보라. 오늘 한 경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가정이 중요하다. - 우디 윌리엄스
필라델피아 필리즈 시절 팀동료 박찬호가 원인모를 장출혈로 고생할때 치료를 권유하며 한 말.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면 의사소통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매직 존슨(LA 다저스 구단주로써)
류현진의 LA 다저스 입단식에서. 영어를 열심히 배우겠다고 하는 류현진의 말에 대한 매직 존슨의 덕담.
Some people are born on third base and go through life thinking they hit a triple.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이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
ㅡ 베리 스위처(Barry Switzer)[86]]
아래 선수들은 모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안드로스테네디온 같은 금지약물(PED) 사용 전력이 밝혀진 선수들이다. 말 자체는 명언이지만 약물 복용으로 인해 흑역사가 된 경우.
홈런이냐, 아니냐는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하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배리 본즈
배리 본즈는 통산 762홈런을 쳤으며,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그야 약 먹고 세운 기록이니까
타석에 설 때마다 내가 떠올린 건 그 동안 내가 해온 순수한 훈련과 연습 그리고 노력이었다. - 마크 맥과이어
타수당 홈런1위(10.61타수), 신인홈런왕(40개)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통산 583홈런을 친 대표적인 홈런 타자였다.
1.2.2. 일본
한번 떠났으면 뒤를 돌아보지 마라. 기웃거리지도 마라. 차라리 사내라면 신발끈 질끈 묶고 다시 뛰어라.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는데 주력해라. - 장훈
神様、仏様、稲尾様
신주님, 부처님, 이나오님.
195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니시테츠 라이온즈와의 일본시리즈 5차전에서 투수 이나오 카즈히사가[95] 상대를 1회부터 완봉으로 막고 연장 10회 말에 끝내기 홈런을 치고 난 뒤, 경기장을 나서는 이나오 앞에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외친 말. 이후 이나오 카즈히사는 3차전까지 팀이 3패를 당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후 4~7차전에서 내리 승리투수가 되어 팀에 일본시리즈 3연패와 함께 일본시리즈 4승 투수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국내 기사에서는 2013년 다나카 마사히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神様을 '하나님'이라고 의역했는데, 일본은 기독교 성향이 짙지 않은데다 신주님과 하나님의 어감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논란이 꽤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방출 된 후 독립리그를 전전하는 당시 "독립리그를 뛰는 당신을 퇴물이라고 비웃는 사람이 있는데?" 라는 기자의 질문에 했던 대답. 대개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갈 때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강타자를 끌어와도 팀 타율은 고작 3할이고 7할은 범타다. 그 7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 노무라 카츠야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절대 천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를 이루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천재가 맞습니다. 천재의 손끝에는 노력이라는 핏방울이 묻어 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일본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보다 많이 연습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저 자신과 맺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 스즈키 이치로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상상력의 한계가 그 사람의 한계가 된다. - 스즈키 이치로
남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건 7~8할의 힘으로도 가능하지만,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데는 10할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 스즈키 이치로
자신의 기록이었던 23경기 연속 안타를 24경기 연속 안타로 갱신하자.
야구는 축구와 달리 반바지와 공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 호시노 센이치
호시노 센이치는 야구를 비난하는 축구 팬들에 대해서 공격적인 언행으로 유명했다. 자신은 야구에 대한 자부심으로 한 말이겠지만, 역으로 축구는 반바지와 공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단순한 스포츠라는 말이 된다. 축구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고 월드컵이 최대의 단일 스포츠 이벤트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적은 자원과 도구로도 시작할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며 반대로 야구가 국제적 보급에 애를 먹는 것은 야구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우며 돈도 많이 드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바를 비롯하여 도미니카 공화국 등은 1인당 GDP가 낮아 야구를 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국가지만 상대적으로 야구 강국이라고 불리우며 많은 국민들이 야구를 즐기고 실력이 있는 선수들을 메이저리그에 배출하고 있다. 사실 야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스포츠고 미국 주변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왜 전파가 덜 되었는지 설명이 된다.
巨人・上原と中日・川上 、どうして差がついたのか…慢心、環境の違い
요미우리 우에하라와 주니치 카와카미, 왜 차이가 벌어졌는가... 자만심, 환경의 차이
2006년 여름에 석간 후지가 저런 제목으로 기사를 뽑은 데서 출발, 75년생 동갑내기 투수인 우에하라 코지와 카와카미 켄신은 각각 1년의 시간 차를 두고[107] 세리그 신인왕을 타낸 초특급 유망주들이었으나, 우에하라가 2005년부터 부진이 시작된 반면 가와카미는 데뷔 시즌 이후 쭉 이름값을 못 하다가 2002년부터 포텐이 터졌다. 이들의 희비 쌍곡선이 가장 극명하게 나뉜 시기가 바로 2006년으로, 우에하라는 그해 2년 연속 승률 5할 미달로 성적을 망친 데 반해 가와카미는 17승을 거두며 다승, 승률, 탈삼진 1위를 먹으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그러나 기사의 단정적인 어조와는 달리 그 이후 두 투수는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이게 된다. 두 투수 모두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것까지는 같았으나 카와카미 켄신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3년간 8승 22패를 찍고 일본으로 초라하게 돌아갔고 그 뒤 2015년 은퇴, 반면 우에하라 코지는 아시아 선수 최초 월드시리즈 세이브를 기록하며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도 따냈다.
동명의 스레드가 2ch 스포츠 속보판에 올라오면서, 인터넷에서 초기에는 비슷했지만 격차가 벌어진 것들을 말할 때 관용구처럼 쓰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사용할 때는 'A와 B, 왜 차이가 벌어졌는가…자만심, 환경의 차이' 식의 용법으로 사용한다. 주의할 점으로는 'A와 B'에서 전자인 A에는 떨어지는 것을, 후자인 B에는 우세한 것을 위치시킨다는 것. 애초에 결과론적인 트집 수준의 억지 분석이었기에 패러디로 비꼬려던 것이 높은 범용성을 보이면서 유행어가 되었다.
야구를 처음 보는 사람은 야구가 지루하다고 하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야구 선수들의 목표는 한 이닝을 최대한 재미없게 막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 니시오카 츠요시
야구라는 종목은 경기장에서 땀 흘리는 게 아니라 경기 전에 땀을 흘리는거야. 평범한 2루수 땅볼을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몇천 몇만 번의 땅볼을 잡으며 땀 흘리고 외야 플라이를 잡으면서 주자를 진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수도 없이 하늘로 뜬 하얀 공을 쳐다보지. 야구란 건 힘들어...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해야 하니까. 프로야구 선수들이 TV에도 나오고, 옷도 멋지게 입고, 경기 때도 별로 힘들지 않은 것 같으니까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1군 무대에서 꾸준히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려면, 엄청난 연습이 필요한 거지. 보이는 것과는 달라. 축구나 농구만큼, 힘들지 않을 지도 몰라. 하지만, 야구는 결코 놀면서 할 수 있을 정도의 스포츠는 분명 아냐. 땀 흘리는 것에만 가치를 부여한다면, 세계 최고의 스포츠는 철인 3종 경기가 될 테니까. - 니시오카 츠요시
좀 더 연습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 가네모토 도모아키
은퇴 후 한 인터뷰. 얼핏 보면 평범한 말이지만, 이 말을 한 가네모토는 누구나 혀를 내두를 정도의 연습 벌레 라는 점. 처음 히로시마에 입단했을 때 코치가 '넌 키만 컸지 힘이 없어 외야로 공을 보내기 힘드니 내야 안타라도 노려 보는 게 어떠냐' 라는 말에 충격받고 그 길로 피나는 노력으로 엄청나게 벌크업 하여 타구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체격과 연속 경기에 출장할 정도의 지구력을 순수하게 트레이닝만으로 손에 넣었다고 한다. 이런 선수가 스스로 연습이 부족했다고 말하니 놀랄 수 밖에. 사실 이런 생각은 연습 벌레라 불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Vやねん!タイガース 08激闘セ・リーグ優勝目前号
우승이야! 타이거스 08 격전 센트럴리그 우승 눈앞에!
2008년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는 한때 2위와 13경기 차까지 벌려놓는 등 1위를 순항하고 있자 9월 쯤 나온 기사. '올해 한신은 왜 강한가'라는 기사도 있었고, 곧 1군에서 뛴다던 신인 선수들 소개란도 있었다. 하지만 한신은 그 이후 요미우리에 패배해 10월쯤 순위가 뒤바뀌어버렸고 우승도 실패. 클라이맥스에서도 1스테이지 때 광탈하며 시즌종료.마침 얘도 타이거즈다
2004년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에 취임한 뒤 첫 전지훈련에 들어가면서 한 말. 원래부터 연습이 많은 구단이지만 전지훈련때는 보통 타구단같이 3일 훈련후 하루 쉬는 일정으로 소화하고 있었는데, 오치아이는 본인이 현역때 그러했듯 놀시간 있으면 하루라도 연습이나 더 해라 라는 의미로 위의 명언을 남기고는 팀 훈련 일정을 6일 연습 1일 휴식으로 바꿔버렸다. 물론 이렇게 무식하게 훈련 시킨 결과 오치아이는 2004년 이 해 센트럴리그 우승을 거두었고[112] 감독을 맡은 8년동안 리그 우승 4번, 일본시리즈 우승 1번.[113] 그리고 결정적으로 리그 B클래스(4~6위)로 단 한번도 내려가 본적이 없었다.
何回も言いますけど、日の丸ってのは僕の中で絵でしかないわけで。何も思わないです。
몇번이고 말했지만, 일장기라는 것은 내 안에서 그림일 뿐. 아무렇게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 다르빗슈 유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기자가 '일장기의 무게를 느끼는가?'라고 질문하자 다르빗슈가 양손의 검지와 엄지로 사각형 모양을 만들며 담담하게 돌려준 답변.
好きで始めた野球なんですけども、プロになった瞬間に仕事になって……。よく最近、“楽しむ”“楽しむ”というんですけど、僕は一回も楽しんだことはない。仕事として、真剣に向き合って、19年間、やってこられたところが誇れることです
좋아서 시작한 야구입니다만, 프로가 된 순간에 일이 되고… 최근 흔히, “즐긴다” “즐긴다”라고 말하지만, 저는 한 번도 즐겨 본 적이 없습니다. 일로서, 진지하게 마주보고, 19년간 해 온 것이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 미야모토 신야
얼핏 들으면 디스하는 것같이 들리지만 실제 의미는 정 반대이다. 미야모토는 프로로써 돈 받고 하는 선수 생활인 만큼, 선수 생활은 자기 만족이 아니라 철저하게 직업으로써 임해야 한다는 그의 야구 철학이 있었고, 프로생활하면서 그것을 관철해 왔다. 해당 발언도 그런 의미의 연장선이다. 사생활 면에서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었지만, 야구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구도자의 삶을 살아왔던 미야모토의 은퇴식 발언으로써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신성시하는 정서가 강한 일본에서는 폭풍간지 발언으로 꼽히고 있다.
수비할때 아슬아슬하게 잡는 플레이는 가급적 하지 마라 - 미야모토 신야
수비수의 기본은 안정적으로 공을 잡는 것이지 멋 부리려고 하는게 아니며, 쓸데없이 파인 플레이를 하는 것은 투수에게 하여금 오늘 제구가 안 된다는 불안요소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공이라도 최대한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잡아줘야 투수가 안심하고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의도였다. 철저하다 못해 편집증적으로 보일 수 있을 정도의 진지함을 엿볼 수 있다.
[1] 다만 밈과 서브컬처 관련 예시는 작성이 불가능합니다.[2] 다만 밈과 서브컬처 관련 예시는 작성이 불가능합니다.[3] 다만 밈과 서브컬처 관련 예시는 작성이 불가능합니다.[4] 前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5] 前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6] 메이저리그에서도 단 2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거기에 이 진귀한 기록을 시즌 개막전이라는 무게감 큰 경기에 해냈다.[7] 메이저리그에서도 단 2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거기에 이 진귀한 기록을 시즌 개막전이라는 무게감 큰 경기에 해냈다.[8] 메이저리그에서도 단 2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거기에 이 진귀한 기록을 시즌 개막전이라는 무게감 큰 경기에 해냈다.[9] 그 해 한화 그룹의 슬로건이었다. 리그에서 한화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그룹에서는 만족했다는 후문.#[10] 그 해 한화 그룹의 슬로건이었다. 리그에서 한화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그룹에서는 만족했다는 후문.#[11] 보통 야수들이 바로 1구로 송구할 수 있는 경우 주자는 낙담하고 그냥 걸어서 아웃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뛰어 봤자 공이 더 빨라서 아웃 될 것이니 차라리 체력을 아끼기 위해 걸어서 가는 것이다.[12] 은퇴 경기였던 SK전에서 양준혁은 김광현에게만 3개의 삼진을 당하는 등 4타수 3삼진 1땅볼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현역 마지막 타석이 바로 앞의 1땅볼이었다.[13] 보통 야수들이 바로 1구로 송구할 수 있는 경우 주자는 낙담하고 그냥 걸어서 아웃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뛰어 봤자 공이 더 빨라서 아웃 될 것이니 차라리 체력을 아끼기 위해 걸어서 가는 것이다.[14] 은퇴 경기였던 SK전에서 양준혁은 김광현에게만 3개의 삼진을 당하는 등 4타수 3삼진 1땅볼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현역 마지막 타석이 바로 앞의 1땅볼이었다.[15] 보통 야수들이 바로 1구로 송구할 수 있는 경우 주자는 낙담하고 그냥 걸어서 아웃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뛰어 봤자 공이 더 빨라서 아웃 될 것이니 차라리 체력을 아끼기 위해 걸어서 가는 것이다.[16] 은퇴 경기였던 SK전에서 양준혁은 김광현에게만 3개의 삼진을 당하는 등 4타수 3삼진 1땅볼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현역 마지막 타석이 바로 앞의 1땅볼이었다.[17] 사실 속도는 속력과 방향을 아우르는 벡터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은 문서 참조.[18] 사실 속도는 속력과 방향을 아우르는 벡터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은 문서 참조.[19] 사실 속도는 속력과 방향을 아우르는 벡터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은 문서 참조.[20] 물론 직접 대놓고 병신이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김응용 감독 특유의 어법상 김성근 감독을 아래로 보는 시선으로 한 말이었음을 감안하면 야신과 같은 그런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 아니라면 병신 혹은 등신 말고는 없다.[21] 물론 직접 대놓고 병신이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김응용 감독 특유의 어법상 김성근 감독을 아래로 보는 시선으로 한 말이었음을 감안하면 야신과 같은 그런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 아니라면 병신 혹은 등신 말고는 없다.[22] 물론 직접 대놓고 병신이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김응용 감독 특유의 어법상 김성근 감독을 아래로 보는 시선으로 한 말이었음을 감안하면 야신과 같은 그런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 아니라면 병신 혹은 등신 말고는 없다.[23] 게다가 염경엽이 2015년부터 밴 헤켄이 선발로 나오지 않은 포스트시즌 경기를 전패(...)하면서 염경엽을 까는 의미로도 쓰이게 된다.[24] 게다가 염경엽이 2015년부터 밴 헤켄이 선발로 나오지 않은 포스트시즌 경기를 전패(...)하면서 염경엽을 까는 의미로도 쓰이게 된다.[25] 당시 김진성은 시즌 초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았다가 실패했고 한 해 동안 거둔 세이브가 2개에 불과했다. 김태군의 말을 듣고 과감한 직구 승부로 경기를 지켜낸 후 김진성은 “그 말이 힘이 됐다. 태군이가 내려간 뒤 로진을 만지면서도 ‘태군이가 다 막아준댔어. 다 막아준댔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26] 당시 김진성은 시즌 초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았다가 실패했고 한 해 동안 거둔 세이브가 2개에 불과했다. 김태군의 말을 듣고 과감한 직구 승부로 경기를 지켜낸 후 김진성은 “그 말이 힘이 됐다. 태군이가 내려간 뒤 로진을 만지면서도 ‘태군이가 다 막아준댔어. 다 막아준댔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27] 당시 김진성은 시즌 초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았다가 실패했고 한 해 동안 거둔 세이브가 2개에 불과했다. 김태군의 말을 듣고 과감한 직구 승부로 경기를 지켜낸 후 김진성은 “그 말이 힘이 됐다. 태군이가 내려간 뒤 로진을 만지면서도 ‘태군이가 다 막아준댔어. 다 막아준댔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28] 듣보잡 2군 투수를 선발 등판 시켰다가, 그 선수가 의외로 호투를 하자 바로 강판시키고, 급기야 수비에서 눈에 보이는 실수를 하며 공을 일부러 놓쳐주는 등 누가 봐도 '지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는 경기였다. 해당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는 "이런 경기를 중계하는 게 부끄럽습니다."라고 하기도. 물론 같은 시간대에 열리고 있던 OB와 해태의 경기도 져주기 매치 성향이 있었다는 평이 많은데, 문제는 이 경기가 공중파로 중계되고 있었다는 점. 물론 삼성의 2군도 털지 못한 롯데의 막장성도 큰 요인(…).[29] 사실 출장하지 않는 것 자체가 비난대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김영덕 감독처럼 9연타석 고의사구 시키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마지막 경기가 롯데전이었다는 점, 경쟁자였던 홍성흔은 출장해서 볼넷과 땅볼을 얻었다는 점, 그리고 마침 이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는데 홍성흔 타석에 박용택이 대화하며 웃는 장면이 방송을 타버린 점 등이 컸다.[30] 그리고 차우찬은 경쟁자가 스텟을 못 쌓도록 방해공작을 펼치는게 아니라 본인이 출장해서 스텟을 쌓는 쪽이니 팀 사정 제외하고 봐도 일리가 있다. 비슷한 사례로는 2013년에 손아섭이 3번에서 1번으로, 2018년엔 양의지가 5번에서 4번으로 전진배치되어 타격왕 타이틀을 노린 적 있다. 물론 팀 순위가 결정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31] 듣보잡 2군 투수를 선발 등판 시켰다가, 그 선수가 의외로 호투를 하자 바로 강판시키고, 급기야 수비에서 눈에 보이는 실수를 하며 공을 일부러 놓쳐주는 등 누가 봐도 '지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는 경기였다. 해당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는 "이런 경기를 중계하는 게 부끄럽습니다."라고 하기도. 물론 같은 시간대에 열리고 있던 OB와 해태의 경기도 져주기 매치 성향이 있었다는 평이 많은데, 문제는 이 경기가 공중파로 중계되고 있었다는 점. 물론 삼성의 2군도 털지 못한 롯데의 막장성도 큰 요인(…).[32] 사실 출장하지 않는 것 자체가 비난대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김영덕 감독처럼 9연타석 고의사구 시키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마지막 경기가 롯데전이었다는 점, 경쟁자였던 홍성흔은 출장해서 볼넷과 땅볼을 얻었다는 점, 그리고 마침 이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는데 홍성흔 타석에 박용택이 대화하며 웃는 장면이 방송을 타버린 점 등이 컸다.[33] 그리고 차우찬은 경쟁자가 스텟을 못 쌓도록 방해공작을 펼치는게 아니라 본인이 출장해서 스텟을 쌓는 쪽이니 팀 사정 제외하고 봐도 일리가 있다. 비슷한 사례로는 2013년에 손아섭이 3번에서 1번으로, 2018년엔 양의지가 5번에서 4번으로 전진배치되어 타격왕 타이틀을 노린 적 있다. 물론 팀 순위가 결정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34] 듣보잡 2군 투수를 선발 등판 시켰다가, 그 선수가 의외로 호투를 하자 바로 강판시키고, 급기야 수비에서 눈에 보이는 실수를 하며 공을 일부러 놓쳐주는 등 누가 봐도 '지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는 경기였다. 해당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는 "이런 경기를 중계하는 게 부끄럽습니다."라고 하기도. 물론 같은 시간대에 열리고 있던 OB와 해태의 경기도 져주기 매치 성향이 있었다는 평이 많은데, 문제는 이 경기가 공중파로 중계되고 있었다는 점. 물론 삼성의 2군도 털지 못한 롯데의 막장성도 큰 요인(…).[35] 사실 출장하지 않는 것 자체가 비난대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김영덕 감독처럼 9연타석 고의사구 시키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마지막 경기가 롯데전이었다는 점, 경쟁자였던 홍성흔은 출장해서 볼넷과 땅볼을 얻었다는 점, 그리고 마침 이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는데 홍성흔 타석에 박용택이 대화하며 웃는 장면이 방송을 타버린 점 등이 컸다.[36] 그리고 차우찬은 경쟁자가 스텟을 못 쌓도록 방해공작을 펼치는게 아니라 본인이 출장해서 스텟을 쌓는 쪽이니 팀 사정 제외하고 봐도 일리가 있다. 비슷한 사례로는 2013년에 손아섭이 3번에서 1번으로, 2018년엔 양의지가 5번에서 4번으로 전진배치되어 타격왕 타이틀을 노린 적 있다. 물론 팀 순위가 결정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37] 30억을 주고 데려온 장원삼은 FA가 아닌 트레이드로 영입한 케이스다.[38] 30억을 주고 데려온 장원삼은 FA가 아닌 트레이드로 영입한 케이스다.[39] 30억을 주고 데려온 장원삼은 FA가 아닌 트레이드로 영입한 케이스다.[40] 이것도 명목적으로는 FA가 아닌 트레이드의 방식으로 영입한 거다. 하지만 결국 돈이 오갔으니 이거나 저거나 [41] 그 중 2008년은 압도적인 꼴찌였다.[42] 이것도 명목적으로는 FA가 아닌 트레이드의 방식으로 영입한 거다. 하지만 결국 돈이 오갔으니 이거나 저거나 [43] 그 중 2008년은 압도적인 꼴찌였다.[44] 이것도 명목적으로는 FA가 아닌 트레이드의 방식으로 영입한 거다. 하지만 결국 돈이 오갔으니 이거나 저거나 [45] 그 중 2008년은 압도적인 꼴찌였다.[46] 참고로 저 '형'은 다름 아닌 이승엽 선수를 가리킨다.[47] 참고로 저 '형'은 다름 아닌 이승엽 선수를 가리킨다.[48] 참고로 저 '형'은 다름 아닌 이승엽 선수를 가리킨다.[49] 웅얼대는 말투, 지나친 승빠질,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일본어 등등.[50] 웅얼대는 말투, 지나친 승빠질,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일본어 등등.[51] 웅얼대는 말투, 지나친 승빠질,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일본어 등등.[52] 앞서 "광현이는 프로에서도 잘할 것."이라 의례적인 평가를 내렸던 류현진은 저 말이 끝나고 "요즘 언론에서 광현이를 너무 띄워준다."고 맞섰지만 이 멘트는 묻혔다.[53] 앞서 "광현이는 프로에서도 잘할 것."이라 의례적인 평가를 내렸던 류현진은 저 말이 끝나고 "요즘 언론에서 광현이를 너무 띄워준다."고 맞섰지만 이 멘트는 묻혔다.[54] 앞서 "광현이는 프로에서도 잘할 것."이라 의례적인 평가를 내렸던 류현진은 저 말이 끝나고 "요즘 언론에서 광현이를 너무 띄워준다."고 맞섰지만 이 멘트는 묻혔다.[55]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찬성하는 파도 그에 못지 않게 많아졌다. 하지만 찬성파 쪽도 '8구단이라면 몰라도 6구단은 오버'라는 의견이 대세.[56]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찬성하는 파도 그에 못지 않게 많아졌다. 하지만 찬성파 쪽도 '8구단이라면 몰라도 6구단은 오버'라는 의견이 대세.[57]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찬성하는 파도 그에 못지 않게 많아졌다. 하지만 찬성파 쪽도 '8구단이라면 몰라도 6구단은 오버'라는 의견이 대세.[58] 다만 선동열의 사퇴는 삼성그룹 내의 인사 정리 과정의 일환이라 보는 이들도 있다.[59] 다만 선동열의 사퇴는 삼성그룹 내의 인사 정리 과정의 일환이라 보는 이들도 있다.[60] 다만 선동열의 사퇴는 삼성그룹 내의 인사 정리 과정의 일환이라 보는 이들도 있다.[61] 이 멘트는 양승호 감옥니뮤 의 18번 멘트이기도 했는데 롯데 팬들은 이미 12년부터 재미소재로 즐기고 있었다.[62] 이 멘트는 양승호 감옥니뮤 의 18번 멘트이기도 했는데 롯데 팬들은 이미 12년부터 재미소재로 즐기고 있었다.[63] 이 멘트는 양승호 감옥니뮤 의 18번 멘트이기도 했는데 롯데 팬들은 이미 12년부터 재미소재로 즐기고 있었다.[64] 그전까지는 약물복용 선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도핑테스트를 실시한 적이 없었다.[65] 그전까지는 약물복용 선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도핑테스트를 실시한 적이 없었다.[66] 그전까지는 약물복용 선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도핑테스트를 실시한 적이 없었다.[67] 글래빈의 투구 스타일과 부합하는 말이라서 유명하긴 하지만, 글래빈의 독창적인 발언인지 아니면 원래 있던 말을 인용한 것인지 여부는 불명이다. 일단 글래빈이 실제로 했던 말은 맞다.[68] 글래빈의 투구 스타일과 부합하는 말이라서 유명하긴 하지만, 글래빈의 독창적인 발언인지 아니면 원래 있던 말을 인용한 것인지 여부는 불명이다. 일단 글래빈이 실제로 했던 말은 맞다.[69] 글래빈의 투구 스타일과 부합하는 말이라서 유명하긴 하지만, 글래빈의 독창적인 발언인지 아니면 원래 있던 말을 인용한 것인지 여부는 불명이다. 일단 글래빈이 실제로 했던 말은 맞다.[70] 뉴욕 양키스의 산하 방송국인 예스 네트워크의 캐스터.[71] 뉴욕 양키스의 산하 방송국인 예스 네트워크의 캐스터.[72] 뉴욕 양키스의 산하 방송국인 예스 네트워크의 캐스터.[73] 30세가 되기 전에 메이저리그에서 150승 이상을 올린 몇 안 되는 투수. 다만 이후에 있었던 부상으로 인해 35세에 은퇴하여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 했다. 다만 60년대에는 10년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투수 중 하나였다.[74] 당시 MLB에서도 중무리가 대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치고는 매우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75] 30세가 되기 전에 메이저리그에서 150승 이상을 올린 몇 안 되는 투수. 다만 이후에 있었던 부상으로 인해 35세에 은퇴하여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 했다. 다만 60년대에는 10년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투수 중 하나였다.[76] 당시 MLB에서도 중무리가 대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치고는 매우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77] 30세가 되기 전에 메이저리그에서 150승 이상을 올린 몇 안 되는 투수. 다만 이후에 있었던 부상으로 인해 35세에 은퇴하여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 했다. 다만 60년대에는 10년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투수 중 하나였다.[78] 당시 MLB에서도 중무리가 대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치고는 매우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79] 1950~70년대 브루클린 다저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감독. 스모키(Smokey)라는 별명이 있었다. 선수로서의 빅리그 경력은 카디널즈에서 대타로 한 타석 뛴 게 전부였지만, 브루클린 지역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 포함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4번이나 우승시킨 명장이다. 당대 최고의 투수 돈 드라이스데일, 샌디 쿠팩스를 키워내기도 했으며, 통산 2000승, 6할 승률, 감독 최초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다.[80] 1950~70년대 브루클린 다저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감독. 스모키(Smokey)라는 별명이 있었다. 선수로서의 빅리그 경력은 카디널즈에서 대타로 한 타석 뛴 게 전부였지만, 브루클린 지역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 포함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4번이나 우승시킨 명장이다. 당대 최고의 투수 돈 드라이스데일, 샌디 쿠팩스를 키워내기도 했으며, 통산 2000승, 6할 승률, 감독 최초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다.[81] 1950~70년대 브루클린 다저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감독. 스모키(Smokey)라는 별명이 있었다. 선수로서의 빅리그 경력은 카디널즈에서 대타로 한 타석 뛴 게 전부였지만, 브루클린 지역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 포함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4번이나 우승시킨 명장이다. 당대 최고의 투수 돈 드라이스데일, 샌디 쿠팩스를 키워내기도 했으며, 통산 2000승, 6할 승률, 감독 최초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다.[82] 前 뉴욕 자이언츠 감독.[83] 前 뉴욕 자이언츠 감독.[84] 前 뉴욕 자이언츠 감독.[85] 전설적인 대학 미식축구 감독. 오클라호마 대학의 미식축구팀 헤드코치를 16년간 재직하면서 4번의 오렌지볼 우승과 3번의 준우승, 3번의 챔피언십 우승을 시켜내며 명문대로 성장시켰으며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94년~96년 동부 1위를 기록하고 95년에는 슈퍼볼 우승을 거머쥐었다.사실 프로에서는 지미 존슨의 팀에 숟가락만 얹었다 이 발언은 그가 불우한 청년기를 보낼 때 했던 말로 자서전에도 언급되어 있는 부분.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언급되는데, 주인공 백승수가 구단주 권경민에게 이 말을 한다.[86] 전설적인 대학 미식축구 감독. 오클라호마 대학의 미식축구팀 헤드코치를 16년간 재직하면서 4번의 오렌지볼 우승과 3번의 준우승, 3번의 챔피언십 우승을 시켜내며 명문대로 성장시켰으며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94년~96년 동부 1위를 기록하고 95년에는 슈퍼볼 우승을 거머쥐었다.사실 프로에서는 지미 존슨의 팀에 숟가락만 얹었다 이 발언은 그가 불우한 청년기를 보낼 때 했던 말로 자서전에도 언급되어 있는 부분.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언급되는데, 주인공 백승수가 구단주 권경민에게 이 말을 한다.[87] 나머지 4명은 행크 애런, 윌리 메이스, 에디 머레이, 라파엘 팔메이로[88] 나머지 4명은 행크 애런, 윌리 메이스, 에디 머레이, 라파엘 팔메이로[89] 나머지 4명은 행크 애런, 윌리 메이스, 에디 머레이, 라파엘 팔메이로[90] 선수 교체시에는 심판에게 먼저 통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91] 선수 교체시에는 심판에게 먼저 통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92] 선수 교체시에는 심판에게 먼저 통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93] 이 때 당시에는 양대리그 모두 지명타자 제도가 없었다.[94] 이 때 당시에는 양대리그 모두 지명타자 제도가 없었다.[95] 이 때 당시에는 양대리그 모두 지명타자 제도가 없었다.[96] 단체 구기라면 모두 성립하기에 통용될 수 있는 범위가 넓다.[97] 단체 구기라면 모두 성립하기에 통용될 수 있는 범위가 넓다.[98] 단체 구기라면 모두 성립하기에 통용될 수 있는 범위가 넓다.[99] 이사야 55 : 9[100] 이사야 55 : 9[101] 이사야 55 : 9[102] 代打 オレ라고도 쓰인다. 발음은 "오레"로 같다.[103] 代打 オレ라고도 쓰인다. 발음은 "오레"로 같다.[104] 代打 オレ라고도 쓰인다. 발음은 "오레"로 같다.[105] 왜 1년 차이가 나냐면 그 사이에 우에하라가 대학 재수를 했기 때문.[106] 왜 1년 차이가 나냐면 그 사이에 우에하라가 대학 재수를 했기 때문.[107] 왜 1년 차이가 나냐면 그 사이에 우에하라가 대학 재수를 했기 때문.[108] 일본시리즈에선 이토 츠토무가 이끄는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패퇴.[109] 그것도 1954년 첫 우승 이후 53년만의 우승이었는지라 더 값졌다.[110] 일본시리즈에선 이토 츠토무가 이끄는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패퇴.[111] 그것도 1954년 첫 우승 이후 53년만의 우승이었는지라 더 값졌다.[112] 일본시리즈에선 이토 츠토무가 이끄는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패퇴.[113] 그것도 1954년 첫 우승 이후 53년만의 우승이었는지라 더 값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