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버튼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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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Burton
CBE | |||||||||
본명
| 리처드 월터 젠킨스 주니어 (Richard Walter Jenkins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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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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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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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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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 제네바 Vieux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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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 17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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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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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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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뷔
| 1949년, 'The Last Days of Dolw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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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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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아내 시빌 윌리엄스(1949년 ~ 1963년: 이혼)
아내 엘리자베스 테일러(1964년 ~ 1974년: 이혼)(1975년 ~ 1976년: 이혼) 아내 수지 밀러(1976년 ~ 1982년: 이혼) 아내 샐리 헤이(1983년 ~ 1984년: 리처드 버튼 사망) 슬하 4녀 | ||||||||
1. 개요
2. 생애
1925년 탄광 노동자의 아들로 자랐으며 16세엔 중퇴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나 교사였던 필립 버턴이 그를 양자로 입적시켜 18세에 옥스포드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다.그리고 이후 1943년에 리버풀 무대에 데뷔를 하였고 이후 연극배우로 활약했으며 1년뒤엔 잠시 영국 공군의 조종사로 지냈다.그리고 이후 복귀하여 1949년에 영화에 데뷔하였고 이후 함께 연기한 시빌 윌리엄스와 혼인했다.그리고 같은해에 <the lady's not for burning>에서 연기가 호평받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것을 계기로 1952년엔 할리우드 초청으로 <수수께끼의 가인 레이첼>로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탑급 배우로 떠올랐다.그리고 1953년엔 연극으로 햄릿을 연기하였고 오셀로에선 당시 흥행 아이돌이었던 존 네빌과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그리고 이당시 햄릿은 그에게 두려움이자 매력적인 배역이었다.영국극장에서 존 길구드와 로런스 올리비에가 그배역을 맡았기 때문이다.반면에 당시 햄릿을 맡은 배우에게 좋은 끝을 못본다는 말을 들어 두려움이기도 했다.아무튼 버튼은 할리우드의 탑급 배우로써 최고의 활약을 보인 이후 1958년에 <라임 리멤버드>로 토니상 후보에 오르면서 브로드웨이에도 발을 들였고 이후 뮤지컬배우로도 최고급 활약을 보였다.당시 카멜롯이란 작품으로 1961년엔 토니상을 받기도 했다.그리고 영화에서는 <성의>[1]<알렉산더 대왕>[2], <클레오파트라>[3] <천일의 앤>과 같은 대작 역사물에서 주연을 맡았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독수리 요새>와 <자객의 멜로디> 등 스릴러 영화에서도 명연기를 펼치며 호평을 받았다.그러나 <수수께끼의 가인 레이첼>을 시작하여 7차례나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한번도 수상 못했다. 주로 뻔뻔스럴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상남자 역을 맡았지만, <메두사 터치>에서 맡은 초능력자 사이코패스 테러범처럼 악역을 맡아도 잘 어울렸다.
3. 엘리자베스 테일러와의 사랑
196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역을 맡아 <클레오파트라>에서 함께 연기했던 클레오파트라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사랑을 하게 되고 결국 불륜까지되며 기존 아내였던 윌리엄스와 이혼하고 테일러와 재혼하게 된다.둘은 부부로 <예기치 못한 사건> <샌드 파이퍼>등에서 호흡을 맞추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부부가 되었다.그러나 1974년에 이혼하게 되었다.[4]그리고 또 다음해에 다시 재결합을 하지만 이듬해 또 다시 이혼한다.1983년 브로드웨이의 무대가 두사람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한편1966년에 버튼은 테일러와의 관계를 담은 책을 발간한 적이 있었다.그리고 이혼후에도 버튼은 2차례 더 결혼관계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