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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베르톨리니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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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베르톨리니의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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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루이지 베르톨리니 (Luigi Bertolini) |
생년월일[1]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부잘라 |
포지션 | 레프트 하프백 |
신체조건 | 178cm / 72kg |
등번호 | -[2] |
소속팀 | |
국가대표 | 26경기 / 0골 (1929~1935) |
감독 | |
1. 개요[편집]
2. 특징[편집]
- 시합 때 하얀 손수건을 머리에 두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가 공에 머리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3. 생애[3][편집]
3.1. 어린 시절[편집]
베로나 출신 아버지와 바르도네키아 출신 어머니를 둔 베르톨리니는 알레산드리아에서 자라며 축구를 접했다. 그 시간에 예술과 기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베르톨리니는 한 때 삼촌의 가게에서 채소 장수로 그리고 전문 정비사로 일한 적이 있었고 지역 축구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3.2. 선수 경력[편집]
3.2.1. 클럽[편집]
3.2.1.1. 초기 선수 생활[편집]
1924년 병역을 마치고 친구에 의해 사보나라는 클럽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당시에는 스트라이커였다. 이 당시에도 나름 재능이 있었던 베르톨리니는 알레산드리아로 이적하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출전 명단에 자주 들지 못했다. 이 때 그는 생계를 위해 신문을 팔기도 하고 자전거 수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당시 알레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카르카노에 의해 영양 불량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고 문제를 해결한 베르톨리니는 1926-27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멤버에 포함되었다. 이 시기에 레프트 하프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고 코니 컵 우승도 이뤘다. 베르톨리니는 이 무렵을 그의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라 회고하였다. 알레산드리아에서는 1930-31 시즌까지 활약하였다.
그러다 당시 알레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카르카노에 의해 영양 불량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고 문제를 해결한 베르톨리니는 1926-27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멤버에 포함되었다. 이 시기에 레프트 하프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고 코니 컵 우승도 이뤘다. 베르톨리니는 이 무렵을 그의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라 회고하였다. 알레산드리아에서는 1930-31 시즌까지 활약하였다.
3.2.1.2. 유벤투스 FC[편집]
3.2.2. 국가대표팀[편집]
3.3. 감독 경력[편집]
3.4. 사망[편집]
베르톨리니는 72세의 나이에 동맥류로 사망했다. 그의 무덤은 토리노의 공동 묘지에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공중볼 다툼과 수비 능력이 좋은 하프백. 특히 탄력이 좋아서 웬만한 센터 포워들과의 헤딩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잉글랜드인들이 그를 참 좋아라한다. 강하고 단호하며 관대하기도 한 잉글랜드인 축구 선수다.
유벤투스의 5연패와 포초의 황금기에서의 키맨 중 한 사람카를로 펠리페 치에사(이탈리아의 축구 전문 기자)
가공할만한 수비수로 꼭 머리에 공을 붙이고 다니는 느낌이었다.카를로 펠리페 치에사(이탈리아의 축구 전문 기자)
길고 다소 단정치 못하지만 머리에 하얀 손수건을 쓰고 헤딩슛에서는 무적이었다. 이례적인 한 쌍의 다리로 그를 거대한 공간을 보증할 수 있었고 의지와 기술로 신체적인 구조의 약점을 커버했다.카를로 모리온도
5. 수상[편집]
5.1. 클럽[편집]
- 코파 코니 우승 1회: 1927(US 알레산드리아)
- 리구리안 지역리그 우승 1회: 1937-38(라팔로)
5.2. 국가대표[편집]
- FIFA 월드컵 우승 1회: 1934
- 중유럽 인터내셔날 컵 우승 1회: 1933-35
5.3. 감독[편집]
- 리구리안 지역리그 우승 1회: 1937-38(라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