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영화

역사 r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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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93만 명
순수 자국생산 장편영화
10편
관객 수
252만 명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
1.30회
자국영화 점유율
22.07%
스크린 수
65개
1. 개요2. 영화 시장3. 역사4. 영화 감독5. 주요 작품6. 영화관

1. 개요[편집]

라트비아영화. 발트 3국 영화 중 가장 뒤처져 있다고 평가받는다.

2. 영화 시장[편집]

2018년 기준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편수는 1.30편으로 발트 3국 영화 시장 중 가장 낮다.

2018년 라트비아 영화 시장 내 자국영화의 비중은 22.07%까지 상승했다. 2012년 라트비아 영화 시장의 자국 영화 비중은 충격적이게도 1.3%였다. 13%를 잘못 쓴게 아니다! 발트 3국은 영화 제작에도 협력을 하기때문에, 2011년 에스토니아, 2014년 라트비아, 2015년 리투아니아까지 유로화 전환이 완료되면서 같은 통화를 사용하는 지역 이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3. 역사[편집]

3.1. 러시아 제국[편집]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1896년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되었다. 최초의 라트비아 영화는 1910년 제작되었다. 발트 3국의 영화는 리투아니아(1909년) - 라트비아(1910년) - 에스토니아(1912년) 순으로 전파되었다.

3.2. 라트비아 제1공화국[편집]

최초의 상설 영화관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라트비아가 독립한 이후인 1920년에나 들어섰다.

1930년의 Lāčplēsis 무성영화가 대표적인 라트비아 제1공화국 시절의 영화다.

3.3. 소련 지배[편집]

1939년 8월, 아돌프 히틀러이오시프 스탈린독소 불가침조약을 맺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라 라트비아는 1940년 소련 붉은 군대의 침공을 당해 멸망했다. 발트 3국소련의 직할주로 편입되었다.

3.4. 1990년대[편집]

1989년 동유럽 혁명이 터지자, 발트 3국탈린부터 빌뉴스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인간띠 잇기"를 통한 "노래 혁명"으로 소련으로부터 1990년 독립하였다.

Vilkaču mantiniece(1990)

3.5. 2000년대[편집]

3.6. 2010년대[편집]

2012년 자국영화 점유율이 1.3%까지 폭락했지만(...) 2014년 유로 도입으로 유로존 국가들의 지원에 힘입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14년 나온 모드리스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매우 유명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정작 모드리스는 한국 영화 시장을 잡고 있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개봉을 거부하여 2018년에 와서야 꼼수 개봉으로 VOD만 서비스 중이다. 모드리스

4. 영화 감독[편집]

5. 주요 작품[편집]

6. 영화관[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