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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편집]
2. 이름[편집]
‘준명(浚眀)’ 뜻은 ‘다스려 밝힌다’, 또는 ‘다스리는 이치가 맑고 밝다’이다. 《서경(書經) -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온 구절인 “날마다 세 가지 덕을 밝혀, 밤낮으로 소유한 집을 다스려(浚) 밝힌다(眀)."에서 따왔다.#
특이하게 ‘명’자를 흔히 ‘밝을 명’자로 쓰는 ‘明’이 아닌 ‘眀’자로 썼다. 얼핏 보면 잘 구분이 안가지만 ‘明’에서 ‘해 일(日)’ 이 아닌 ‘눈 목(目)’이 들어가있다. ‘明’과 모양만 다른 같은 글자이며, ‘밝게 볼 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를 두고 여러 설이 있다. 그 중 일제가 '明'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眀'을 대신썼다는 주장과 반대로 일본(日本)을 싫어한 대한제국 정부에서 '日'이 들어간 '明'대신 '眀'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론을 말하면 둘 다 낭설이다. '眀'은 '朙'의 이체자이며 엄연히 대한제국 이전부터 쓰던 한자이다. 진짜로 '明'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창경궁에 있는 명정전은 물론 다른 전각들의 편액에 들어간 '明'을 모조리 갈아치웠을 것이다. 이런 거짓 정보에 속지 말자.
특이하게 ‘명’자를 흔히 ‘밝을 명’자로 쓰는 ‘明’이 아닌 ‘眀’자로 썼다. 얼핏 보면 잘 구분이 안가지만 ‘明’에서 ‘해 일(日)’ 이 아닌 ‘눈 목(目)’이 들어가있다. ‘明’과 모양만 다른 같은 글자이며, ‘밝게 볼 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를 두고 여러 설이 있다. 그 중 일제가 '明'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眀'을 대신썼다는 주장과 반대로 일본(日本)을 싫어한 대한제국 정부에서 '日'이 들어간 '明'대신 '眀'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론을 말하면 둘 다 낭설이다. '眀'은 '朙'의 이체자이며 엄연히 대한제국 이전부터 쓰던 한자이다. 진짜로 '明'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창경궁에 있는 명정전은 물론 다른 전각들의 편액에 들어간 '明'을 모조리 갈아치웠을 것이다. 이런 거짓 정보에 속지 말자.
3. 역사[편집]
경운당# |
준명당은 덕수궁 내 건물들 중에서 창건 시기가 늦은 편이다. 기록과 그림에 의하면, 1904년(광무 8년) 이전에는 현재 준명당 자리에 경운당(慶運堂)과 덕경당(德慶堂), 그리고 관명전(觀明殿)이 있었다. 경운당의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기록 상으로는 1901년(광무 5년) 2월 3일 자 《승정원일기》에 처음 나타난다.#
준명당과 즉조당이 붙어있는 지금과 달리, 경운당이 있던 시절에는 경운당과 즉조당[A] 사이에 행각을 두어 영역을 구분하였다. 고종은 경운당에서 주로 전배하거나# 진찬을 열었다.# 이후 같은 해 7월#에서 12월 사이에 이름을 덕경당으로 바꾸었으며# 1902년(광무 6년) 10월에는 관명전으로 개칭하였다.#
준명당과 즉조당이 붙어있는 지금과 달리, 경운당이 있던 시절에는 경운당과 즉조당[A] 사이에 행각을 두어 영역을 구분하였다. 고종은 경운당에서 주로 전배하거나# 진찬을 열었다.# 이후 같은 해 7월#에서 12월 사이에 이름을 덕경당으로 바꾸었으며# 1902년(광무 6년) 10월에는 관명전으로 개칭하였다.#
이름을 바꾸면서 건물도 새로 지었다. 즉조당[A]과 덕경당 사이의 행각을 헐어 두 건물을 한 영역에 두었다. 또한 건물도 정면을 9칸으로 늘리고 용마루에 취두, 추녀마루에 잡상도 설치하는 등 전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지었다. 이런 변화는 진연 장소의 격을 높이고, 공간을 넓혀 진연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었다.#
1904년(광무 8년) 경운궁 대화재로 불탔고 직후 복구하였다. 재건하면서 이름을 준명당(浚眀堂)으로 바꿨으며 건물도 관명전 시절보다 작아지는 등 전보다 격을 낮추었다.[4] 즉조당과 통하는 복도도 이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1904년(광무 8년) 경운궁 대화재로 불탔고 직후 복구하였다. 재건하면서 이름을 준명당(浚眀堂)으로 바꿨으며 건물도 관명전 시절보다 작아지는 등 전보다 격을 낮추었다.[4] 즉조당과 통하는 복도도 이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준명당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덕혜옹주(주황색 원 안) |
4. 구조[편집]
- 준명당 난간의 구멍#
- 서쪽의 온돌방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총 2칸이다. 동온돌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총 4칸으로 중간에 기둥을 두고 기둥의 동, 서, 남쪽으로 문지방을 두었다. 다만 동온돌의 북쪽 2칸과 동북쪽 온돌의 서남쪽 방은 서로 트여 ‘」’ 자 평면을 이룬다. 동북온돌 4칸 중 동남쪽 방은 다른 방과 문지방으로 나누었고, 나머지 칸은 서남쪽 방을 제외하고 텄다.위 좌측 부터 서온돌, 동온돌, 맨 아래는 동북온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