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제43대 요시다 오사무 | → | 제44대 나카야마 야스히데 | → | 제45대 요시다 오사무 |
제46대 무라카미 마사토시 | → | 제47~48대 나카야마 야스히데 | → | 현직 |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70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오사카의 오테몬 가쿠인 소학교와 도쿄에 있는 치요다구립 구단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프랑스에 있는 알자스 세이조 학원[5]에 유학을 다녀온 뒤 세이조대학 법학부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덴츠에 입사했다.
이후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사카부 제5구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이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지만 또 낙선한다. 아예 체급을 낮춰 2001년 오사카부의회 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지만 또 낙선하면서, 5년 간 고향에서 3번이나 낙선했다(...).
3차례의 낙선 후 고이케 유리코의 정책 비서로 근무하다가, 2003년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사카부 제4구로 지역구를 바꿔 출마해 지역구 당선에는 실패하지만 석패율 비례대표로 구제되어 당선되면서 중의원 세 번째 도전 끝에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는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 성공 후 아베 신조 1차 내각과 후쿠다 야스오 내각에서 외무대신 정무관을 지냈다. 그러다가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낙선했으며, 원외에 있는 동안 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와세다대학 대학원을 다녔다.
이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인 오사카부 제4구에 출마했으나 지역구 당선에는 실패하고 석패율 비례대표로 다시 당선되면서 원내에 복귀한다. 복귀 후 아베 신조 2차 내각에서 외무부대신을 맡았으며,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지역구 당선에 다시 성공했다.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당선에 성공하면서 5선을 기록했다.
이후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사카부 제5구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이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지만 또 낙선한다. 아예 체급을 낮춰 2001년 오사카부의회 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지만 또 낙선하면서, 5년 간 고향에서 3번이나 낙선했다(...).
3차례의 낙선 후 고이케 유리코의 정책 비서로 근무하다가, 2003년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사카부 제4구로 지역구를 바꿔 출마해 지역구 당선에는 실패하지만 석패율 비례대표로 구제되어 당선되면서 중의원 세 번째 도전 끝에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는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 성공 후 아베 신조 1차 내각과 후쿠다 야스오 내각에서 외무대신 정무관을 지냈다. 그러다가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낙선했으며, 원외에 있는 동안 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와세다대학 대학원을 다녔다.
이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인 오사카부 제4구에 출마했으나 지역구 당선에는 실패하고 석패율 비례대표로 다시 당선되면서 원내에 복귀한다. 복귀 후 아베 신조 2차 내각에서 외무부대신을 맡았으며,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지역구 당선에 다시 성공했다.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당선에 성공하면서 5선을 기록했다.
3. 기타[편집]
- 다모가미 도시오의 논문 사건 당시 논문 심사를 의뢰받은 심사 위원 중 한 명이었다. 본인이 국회 업무때문에 심사를 못 할 때는 비서를 대리로 보내기도 했다.
- 2016년 오사카시에서 열린 국가 예산 관련 설명회에서 “전 시장(하시모토 도루)의 비서가 각성제 때문에 체포된 건 정말이냐”라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당시 하시모토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으며. 당시 오사카시장이었던 요시무라 히로후미는 오사카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나카야마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참고로 요시무라 히로후미는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오사카부 제4구에 출마해 나카야마와 맞붙었던 적이 있다.
- 대학원 동료 중 야구 선수 쿠와타 마스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