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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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면 옹암리
사망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동혁은 1901년 11월 15일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면 옹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던 중 교우 임창준(林昌俊)에게서 독립선언서 6매를 받아 남대문 안의 민가에 배포하고, 3월 2일 학생 허신(許信)[1]에게서 <조선독립신문> 제2호 10부를 받아 낙원동 부근의 민가에 배포하였다. 그리고 3월 5일 다시 허신으로부터 <조선독립신문> 제3호 7∼8매를 받아 낙원동 부근의 민가에 배포하며 시위를 선도했다.

이후 경찰의 추적이 본격화되자, 그는 친구 2명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으나, 홀로 경성에 남을 여덟살 위의 작은아버지가 걱정되었다. 당시 그는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역시 3.1 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김동혁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하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작성했다.
작은아버님께 올립니다.
천지를 진동하는 만세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고 총을 잡고 칼을 든 양반이 시위를 하는 이때에 나라의 활동가는 분주히 힘을 다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오리까. 사방에서 형사가 활동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오리까.
전일 저의 비밀행위는 알고 계시다시피 선언서 배달과 독립신문 1,2호의 배달과 기타 호의 배달의 책임으로써 지금까지 사방으로 활동하였습니다. 하숙집에는 혼자만 숙박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므로 자연히 주목을 받은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작은 일로 그들에게 체포되어 수일간 구류를 당하는 것은 실로 유감으로 생각되지만 어떻게 하오리까.
죄송하지만 저는 경성을 떠나오니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후일 독립기가 휘날리고 전승고, 독립고가 울릴 때는 경성을 떠난 일이 면목 없는 일이 되겠지요. 숙부님 몸조심하시고 만사가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파일:김동혁2.png
1919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그러나 그는 편지를 품속에 넣고 있다가 체포되었고, 헌병에게 편지를 빼앗겼다. 그는 편지에 적힌 독립운동 행적을 모두 시인했지만, 친구와 숙부에 대한 것은 모두 부인했다. 이후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출판·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3년 1월 조선물산장려회의 조사부 상무이사, 1929년 8월 신간회의 회보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경성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8년 9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김동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허신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