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신(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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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허신(許伸)
생몰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자양리
사망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허신은 1873년 7월 1일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자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0일 오후 2시 신등면 단계리 장터에 모인 7백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시위행진한 후, 수천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과 함께 단성면 성내리 장터로 시위행진하였다. 도중에 일본 헌병오장(憲兵伍長) 대평(大平)이 이 사실을 알고 3월 19일 체포했던 김상준등 5명을 석방하면서 해산할 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단성읍에 도착하여 밤이 늦도록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뒤, 이튿날의 재의거를 약속하고 해산하였다.

다음날은 3월 21일 오후 1시, 천여 명의 군중은 다시 단성면 성내리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대열이 단성공립보통학교 앞의 삼거리에 이르렀을 때, 15명의 일본 헌병과 보조원이 출동하였다.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이들에게 육탄 돌격하여 병기를 빼앗고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에 의해 김영숙·정태륜 등 6명이 체포되었다. 이에 시위군중은 체포된 자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였지만, 시위대열이 해산하면 석방하겠다는 일본 헌병들과 대치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시위대열은 돌과 몽둥이를 들고, 체포된 사람의 석방을 요구하며 계속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이 무차별 발포를 가했고,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던 그는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허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