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기환은 1905년 10월 20일 함경남도 리원군 남면 상차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5년 12월 20일 시대일보(時代日報) 기자로서 함경남도 이원군의 기자들로 조직된 이원기자대회에서 조사부(調査部)의 임원으로 선임되었고, 차호청년회(遮湖靑年會)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2월 18일 상차호리(上遮湖里) 자택에서 「선포문」이란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선전문서를 작성했다.
1926년 2월 18일 상차호리(上遮湖里) 자택에서 「선포문」이란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선전문서를 작성했다.
"동년 3월 1일은 소위 3·1기념일이라. (중략) 아! 고려민족이여. 우리의 피와 살을 먹는 일본-세계 침략적 자본주의, 동양에 있어서의 만견(蠻犬) 일본 제국주의적 침략주의를 뿌리에서부터 파멸코자 예리한 창을 세련(洗鍊)하여 고려의 민족 대동단결을 공고히 하여 고려 강산에 영광 있는 새사회 건설을 위한 기념할 이 날이다. 고려 민족아. 용감히 일어나라. 암흑에서 광명으로 우리들은 이날을 기념하라.".
동월 22일경 같은 장소에서 스스로 등사판으로 문서 약40여 통을 인쇄하여 관북 대중운동자의 명의로 함경남도 원산부에 있는 함남청년회(咸南靑年會) 외 15개 단체에 동 문서를 우편으로 배포한 사건으로 이원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6년 5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7년 3월 24일 출옥하였다.
1927년 12월 27, 28일 함남기자연맹(咸南記者聯盟) 주최로 함경남도 고원군 하발면의 천도교 종리원 내에서 개최된 제4회 함남기자대회에 중외일보(中外日報) 이원지국(利原支局)의 기자로 참여하였다. 27일 동 대회의 토의사항인 「만주에 있는 동포 구축 문제에 관한 건」외 여러 항목이 동일 오후 관할 고원경찰서로부터 치안방해 우려의 명목으로 토의를 금지당하자, 참석자들은 동 경찰서의 부당 조치에 대항하여 그날 밤 같은 장소에서 동경찰서 탄핵연설회를 개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김기환을 비롯한 수십 명이 고원경찰서 탄핵연설회라고 크게 쓴 붉은 깃발을 선두로 고원 읍내로 시위행렬을 한 뒤, 그 날 밤 7시 30분경 천도교 종리원 내에서 대회를 개최하였다.
고원경찰서에서는 이 대회의 개최를 금지시키고 청중 2, 3백여 명에게 해산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김기환 등은 금지와 해산 명령에 저항하면서, 청중을 향하여 "경찰의 횡폭한 해산명령은 소용이 없다"고 외쳤다. 이어 동일 오후 8시경 하발면 관덕리의 최상의(崔尙義)의 상점 부근 광장으로 이동하면서 수백 명에 달한 시위대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검속자를 탈환하러 경찰서를 습격하자"고 외치며 시위하다가 체포되었다.
1928년 1월 6일 구류되어 동년 12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금고 8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9년 11월 18일 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김기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