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clude(틀:창경궁)] ---- [include(틀:조선 왕궁의 편전 정문)] ---- [목차] ||<table width=750>[[파일:창경궁 문정문.jpg|width=100%]]|| || 문정문 || == 소개 == --[[긔엽긔는 거꾸로 해도 긔엽긔|문정문은 거꾸로 해도 문정문]]-- {{{+1 昌慶宮 文政門}}} [[조선시대]] [[궁궐]]인 [[창경궁]]의 [[편전]] [[창경궁 문정전|문정전]]의 [[정문]]이다. 1층 [[목조]] 문[* 보통 [[한옥]]의 경우 1층보다는 단층(單層)으로 말한다.]으로 되어 있다. 이름은 당연히 [[창경궁 문정전|문정전]]의 [[문]]이란 뜻으로, '문정(文政)'이란 명칭 자체는 [[창경궁]] 창건 당시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이던 [[서거정]](徐居正)이 지었다. == 역사 == 1483년([[성종(조선)|성종]] 14년) [[창경궁]] 창건 때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6년([[광해군]] 8년)에 복구하였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에 [[일본]]이 창경궁을 [[놀이공원]]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헐렸으며 이 주변을 [[동물원]]으로 사용했다. 1983년 동물원 기능이 [[서울대공원]]으로 이관되었으며, 창경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1984년부터 발굴 조사를 한 후 1986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 구조 == * 본전 [[창경궁 문정전|문정전]]은 남향을 한 반면, 문정문은 동향을 하고 있다. 그래서 문정문과 문정전은 일직선상에 놓여있지 않고, 문정문으로 들어와 동쪽으로 90도 [[각도]]로 틀어야 비로소 문정전이 보인다. * [[문]] 본채를 따로 만든 것은 아니고 [[복도|행각]]의 일부분을 문으로 삼았다. 장대석을 4벌 깐 기단을 놓고 그 위에 행각과 문을 만들었으며 역시 4벌 깐 계단을 가운데 칸 앞에 하나를 두었다. 계단은 장식한 소맷돌로 아름답게 꾸며 한껏 격을 높혔다. 문만 놓고보면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좌, 우 협문은 [[신하]]들이 다니고 가운데는 [[왕]]이 다니는 어칸(御間)으로 두었다. 어칸의 [[지붕]]을 높여 솟을대문 형식으로 만들었고 문 부분 높이 역시 좌, 우 신하들이 다니는 문보다 높게 지어 차별화를 두었다. 각 칸의 인방 위에 안상의 모양대로 풍혈을 뚫은 3개의 궁판이 놓여있고 그 위에 홍살을 놓았으며 가운데 칸 궁판에 [[현판]]을 걸었다. [[지붕]]은 맞배지붕, [[처마]]는 홑처마로 [[공포]]는 간결한 초익공 양식이다. [[주춧돌]]과 [[기둥]]은 네모난 형태이며 [[단청]]은 모로단청으로 칠했다.[* 부재 끝부분에만 문양을 넣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한 단청이다.] [[천장]]은 서까래와 구조들이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하였다. * [[조선시대|조선 후기]] 들어 [[문정전]]은 [[편전]]보다는 혼전[* 魂殿. [[임금]]이나 [[왕비]]의 [[국장]] 뒤 3년 동안 신위(神位)를 모시던 전각.]으로 자주 쓰이면서 문정문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문정전이 혼전으로 지정되면 문정문의 어칸은 신이 다니는 [[문]]이 되기 때문에 [[왕]]과 신하들은 [[협문]]으로 다녔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문정문(文政門)|#]] 그리고 문정전으로 가는 길에 새롭게 [[복도|복도각]]이 설치되었다. 여기서 복도각은 [[혼령]]이 드나드는 [[길]]이란 의미를 갖는다. 복도각 역시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고 1986년 문정문, 문정전이 [[복원]]될 때 함께 지어지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른다. ||<table width=662>[[파일:동궐도 문정전.png|width=100%]]|| || <[[동궐도]]>에서 묘사 한 문정문과 문정전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창경궁 문정전, version=34)] [[분류:창경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