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동명이인/ㅈ]] [목차] == 화순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영진 == || 성명 ||정영운(鄭永珍) || || 생몰 ||[[1856년]] [[7월 6일]] ~ [[1919년]] [[3월 10일]] || || [[출생지]]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원리 || || 사망지 ||[[전라남도]] [[화순군]]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정영운은 1856년 7월 6일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7월 [[고광순]] 의병장이 자신을 찾아와서 의병 모집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자 흔쾌히 수락하고 1908년 8월 8일 박경선(朴京善)[*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박경선(독립운동가)|박경선]]과 동명이인이다.]·강원숙(姜源淑)·박화중(朴化中)·김산안(金山安) 등 4명을 고광순의 의진에 알선하고자 4명을 인솔하고 곡성(谷城)으로 향하던 도중에 마침 고광순을 만나 4명을 인도하였다. 또한 조진규(趙晋奎)가 소유하고 있던 총 1정을 강원숙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이 일로 1908년에 일제 헌병대에게 체포된 그는 9월 30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유배형 5년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11월 7일 대구 공소원에서 그대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화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19년 3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정영운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5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분류:조선 의병장]][[분류:화순군 출신 인물]][[분류:1856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 의병장, 정영진 == || 성명 ||정영진(鄭永軫) || || 생몰 ||? ~ [[1910년]] [[2월]] || || [[출생지]] ||미상 || || 사망지 ||경성형무소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매천야록]]에 따르면, 정영진은 1910년 2월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의병장으로서 활동하다가 체포된 뒤 서울로 끌려와 감옥에서 피살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정영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조선 의병장]][[분류:생년 미상]][[분류:191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