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 Ali Shariati Mazinani * [[이란어]] : علی شریعتی مزینانی [목차] == 개요 == 알리 샤리아티는 이란의 [[이슬람주의]] 혁명가이자, [[이슬람 사회주의]] 사상가였다. 시아파 신도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시아파 [[12이맘파]] 신학 사이의 통합을 추구했는데, 이는 [[하산 알 반나]] 같은 순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이 비공식적으로 [[레닌주의]]의 교리를 흡수한 것과 차이가 있었다. == 사상 == 이슬람을 투쟁의 종교라고 해석한 종래의 쉬아파 전통 신학은 "검은 시아파" 혹은 "[[사파비야|사파비 시아파]]"[* 이란이 시아파 주류 국가가 된 것은 근세의 튀르크계 [[사파비 제국]] 때문이다. 다만 사파비야 교단은 신비주의와 구세주 신앙이 강해서, 사파비 왕조가 무장 집단에서 제국으로 구색을 갖추어가는 과정 와중에 12이맘파 자파리파에 밀려 도태되었다.] 자신의 이슬람 사회주의 이념은 "적색 시아파"라고 부르며 구분하였다. 또한 "진정 정의로운 사회는 이슬람적 가치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세속주의 무신론 계열의 공산주의자들과 자신을 구분지었다. 남미의 이른바 [[해방신학]]과 비슷한 경우라 하겠다. 그의 독창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타일의 신학, 철학은 이란 대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샤리아티는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재교육받아 이슬람 신정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이슬람주의 철학을 전파했는데, 이는 이란의 진보적 대학생들이 [[이란 혁명]] 당시 보수 율법학자였던 호메이니의 편을 드는 계기가 되었다. 샤리아티 역시 반서구주의자로서 특히 당시 이란 사회 내에 퍼져있던 반영감정을 공유했으며, 서구식 민주주의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 사망 == 알리 샤리아티의 사상을 이어받았던 이란 내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이란 혁명]]의 성공 이후 호메이니 정권에 의해 대부분 숙청당했으나, 이란 혁명이 마무리되기 이전 팔레비 왕조에 의해 영국으로 추방당해 그곳에서 사망한 샤리아티[* 사인은 암살은 아니고 심장병으로 추정된다.]의 경우 호메이니 정권에서 어느정도 예우를 받을 수 있었다. 영국에서 이란으로 옮겨진 알리 샤리아티의 유해는 프로파간다 차원에서 쉬아파 성묘 근처에 안장되었다. [[분류:이란의 인물]][[분류:사회주의자]][[분류:1933년 출생]][[분류:197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