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횡성군 출신 인물]][[분류:1891년 출생]][[분류:193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송병기.png|width=300px]] || || 성명 ||<(> 송병기(宋秉箕) || || 생몰 ||<(> [[1891년]] [[4월 30일]] ~ [[1930년]] [[5월 18일]] || || [[출생지]] ||<(>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매호리 || || 사망지 ||<(> [[강원도]] [[원주시|원주군]] ||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송병기는 1891년 4월 30일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매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2일 횡성군 서원면 분일리에서 성태현(成泰鉉)·[[박민희](독립운동가)|박민희]]·이정헌(李正憲)과 함께 송병창(宋秉昌)의 집에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협의하고 주민 70여명을 규합하여 분일리 내 향산과 수동 사이의 뒷산에 올라가 봉화를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다시 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산에서 내려와서 마을을 순회하며 밤새도록 시위를 벌이다가 날이 샐 무렵에야 해산되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8년경 [[신간회]] 청년회에 가입하여 활동했지만 1930년 5월 18일 원주군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송병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