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城新聞 [목차] == 개요 == [[1898년]](광무 2년) 9월 5일에 [[남궁억]], 나수연 등의 유학파가 주축이 되어 창간한 [[대한제국]] 시기의 [[신문]]이다. == 시작 == 이전에 발간되던 대한 황성 신문의 판권을 인수받아 창간하였다. 주필로는 [[유근]], [[박은식]], [[장지연]], [[신채호]] 등이 활동하였다. 고금제를 최초로 이용한, 즉 민간의 자본을 바탕으로 한 신문이었다. 국한문 혼용체가 사용되었으며 주2회 2면 발행이였다. 주 독자층은 한문에 능숙한 중류 이상의 유림층과 식자층을 대상으로 하였다. 1899년 11월 23일부터 4면 4단제로 발행을 시작했다. == 위기와 폐간 == 1900년 8월 8일자 간행본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밀약[* 러시아와 일본이 나중에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 통치하자는 밀약을 맺었다.]을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는데, 이를 고깝게 여긴 일본의 압력으로 인해 핵심 인물인 남궁억이 투옥되고 사장직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 이후로 어찌저찌 운영을 이어갔지만 1905년 을사 조약에 대한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계기로 인해 정간당했으며,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신문 제호가 강제로 '한성신문(漢城新聞)'으로 바뀌었고 9월 14일 제3470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황성 신문이 발행된 13년간 평균 발행 부수는 3000부 가량이었다. 당시의 황성 신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 옛 한글 텍스트 형태 : [[http://www.mediagaon.or.kr/|한국 언론 진흥 재단]]의 [[http://www.mediagaon.or.kr/jsp/sch/mnews/gonews/SearchGoDirMain.jsp?code=HSS|고신문 디렉토리 서비스]] * 이미지 형태 : [[http://search.i815.or.kr|한국 독립 운동사 정보 시스템]]의 [[https://search.i815.or.kr/subService.do|원문 정보]] * 텍스트 & 이미지 형태 : [[http://www.nl.go.kr/newspaper/index.do|국립 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의 [[http://www.nl.go.kr/newspaper/sub0101.do?dir_q_paperIndex=%E3%85%8E&dir_paper=%ED%99%A9%EC%84%B1%EC%8B%A0%EB%AC%B8_%E7%9A%87%E5%9F%8E%E6%96%B0%E8%81%9E|황성신문]] == 기타 사항 == 해당 [[신문]]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인 [[장지연]]은 훗날 변절하여 [[일본]]을 옹호하는 투의 사설과 시를 [[매일신보]] 주필 당시 써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그 당시 [[이승만]]과 유영석의 주도로 발행되었던 [[제국신문]]과는 라이벌(?) 사이였다. 제국신문은 창간시부터 순한글로 신문을 만들며 일반 대중과 부녀자들이 타겟이었는데, 이를 좋게 보지 않았는지 제국신문을 아녀자들이나 보는 암신문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분류:대한제국]][[분류: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