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식축구 선수]][[분류:1954년 출생]][[분류:1999년 사망]][[분류:미시시피 주 출신 인물]][[분류:담관암으로 죽은 인물]] ||<-2><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b162a><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IP payton.jpg|width=100%]]}}} || ||<-2><#0b162a><:> [[시카고 베어스|[[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Chicago_Bears_logo.svg.png|width=45]]]] [br] '''{{{#ffffff 시카고 베어스 No.34 }}}''' || ||<#c83803><:> {{{#ffffff '''이름'''}}} || '''월터 제리 페이턴 [br] (Walter Jerry Payton)''' || ||<#c83803><:> {{{#ffffff '''생년'''}}} ||<:> [[1954년]] [[7월 25일]]~ [[1999년]] [[11월 1일]] (향년 45세) || ||<#c83803><:> {{{#ffffff '''국적'''}}} ||<:> [[미국]] || ||<#c83803><:> {{{#ffffff '''출신지'''}}} ||<:> [[미시시피]]주 컬럼비아 || ||<#c83803><:> {{{#ffffff '''출신학교'''}}} ||<:> 잭슨 주립대학교 || ||<#c83803><:> {{{#ffffff '''신체'''}}} ||<:> 178cm, 91kg || ||<#c83803><:> {{{#ffffff '''포지션'''}}} ||<:> [[러닝백]] || ||<#c83803><:> {{{#ffffff '''프로입단'''}}} ||<:> 1975년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br][[시카고 베어스]]에 지명 || ||<#c83803><:> {{{#ffffff '''소속팀'''}}} ||<:> '''[[시카고 베어스]] (1975~1987)''' || ||<#c83803><:> {{{#ffffff '''별명'''}}} ||<:> '''Sweetness''' || [목차] == 개요 == 전직 미식축구 선수, 포지션은 [[러닝백]]. '''NFL 역사상 최고의 [[러닝백]] 중 한명''' 오로지 시카고 베어스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원 클럽 플레이어]]로, 전성기 시절에는 혼자서 팀의 오펜스의 60%를 차지했을 만큼 매우 뛰어난 러닝백이었다. == 프로 전 경력 == 보이스카우트, 리틀리그 야구, 동네 교회에서 활동하고 고교 입학 후 학교 고적대에서 드럼을 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1학년(Junior)때 미식축구를 시작했다. 비록 178cm의 작은 체구지만 스피드와 체력이 월등하여 기량이 급성장했다. 그러나 [[SEC]] 학교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하고[* 아주 적은 수의 흑인 선수만 받아들이던 때였다.] 전통적인 흑인 학교였던 Jackson State Univ.에 입학해 신문방송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칼리지 풋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 NFL == 1975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시카고 베어스에 지명됐다.[* 이 해 드래프트는 이틀에 걸쳐 17라운드까지 진행됐으며 [[부머 웰즈]]는 [[뉴욕 제츠]]에 16라운드에 지명됐으나 미식축구 커리어를 접고 야구 쪽으로 발길을 돌려 [[일본프로야구]]에서 강타자로 활약했다.] 수상 경력을 일일이 열거하기 많을 만큼 맹활약했고 1984년 9월 19일에 당시 통산 최다 러싱야드 기록(짐 브라운의 12,312야드)을 경신했다. 1987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1993년 프로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당연히 그의 등번호인 34번은 [[영구결번]]됐다. == 은퇴 후 == 은퇴 이후 1995년 NFL에서 리그 확장을 할때 본인이 [[세인트루이스]]에 신생팀을 세우려 했지만 [[잭슨빌 재규어스|잭슨빌]]와 [[캐롤라이나 팬서스|샬럿]]에 밀려 창단에 실패했으며[* 만약 창단에 성공했으면 NFL 선수 최초의 NFL 구단주가 될 뻔했다. 그리고 그 해 [[로스앤젤레스 램스|램스]]가 세인트루이스로 연고지를 이동하면서 세인트루이스 램스가 된다.] 그리고 4년 뒤 1999년 2월 원발 경화성 [[담관염]]의 증세로 [[담관암]] 투병을 시작했으며 1999년 4월 12일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커브스]]의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1999년 11월 1일 월터의 사망을 아들인 자렛 페이튼이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1999년 11월 5일 일리노이 주 배링턴의 한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뤘으며 감독이었던 마이크 딧카와 존 매든(NFL 코치, 해설가) 등이 참석했다. 그 다음날 그가 항상 뛰어다녔던 [[솔저 필드]]에서 미망인 코니 페이튼, 딸 브리트니 페이튼 등 가족들과 2만명의 팬이 운집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가졌다. 베어스 팬들을 그의 죽음을 슬퍼했으며, 그의 동상을 솔저 필드 앞에 제막하여 지금도 그를 추모하고 있다. == 여담 == 하지만 경기에서의 압도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인성]]이 대단히 훌륭했던 선수이며, 그 덕분에 별명이 다름아닌 '''Sweetness'''였다.[* 그의 인성에서 이 별명이 유래됐다고 잘 알려져 있으나 그의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냉소적으로 부르는 뜻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그의 매너를 따서 만든 상이 바로 '''월터 페이턴 상(Walter Payton Award)'''이다.[* 주요 수상자로 [[일라이 매닝]], [[래리 피츠제럴드]], [[JJ 왓]]등이 있다.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는 비슷한 상으로 [[로베르토 클레멘테]]상이 있다.] 삶의 좌우명은 "Never Die Easy"였으며 그의 자서전 제목도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