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제국 황실)]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29176e><tablebgcolor=#29176e> {{{#ffd800 '''대한제국 장조의 현손'''[br]{{{+1 '''禮陽正[br]예양정'''}}}}}} || ||<width=20%> '''{{{#ffd800 작호}}}''' ||<-2><bgcolor=#fff>예양정(禮陽正) || || '''{{{#ffd800 이름}}}''' ||<-2><bgcolor=#fff>이재규(李載規) || || '''{{{#ffd800 출생}}}''' ||<-2><bgcolor=#fff>[[1877년]] [[4월 8일]] || || '''{{{#ffd800 사망}}}''' ||<-2><bgcolor=#fff>[[미상]]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의 왕족이자 [[대한제국]]의 황족이다. 이름은 이재규(李載規). [[사도세자|장조]]의 서3남 은전군의 양증손자이자 풍계군의 양손자로 아버지는 은전군가의 3대 종주 [[완평군]]이다. == 생애 == 1877년 한성부 계동 은전궁에서 완평군의 4남이자 유일한 서자로 태어났다. [[조선]] [[헌종(조선)|헌종]], [[고종(대한제국)|고종]]과 같은 항렬이나 나이는 조카 뻘인 [[의친왕]]과 동갑이었다. 참봉과 참위[* 參尉. 대한제국 시기의 장교 계급의 하나. 부위(副尉)의 아랫 계급.], 그리고 헌종비 효정왕후의 사망 당시 종척집사[* 宗戚執事. 조선 시대 국상 때 종척에게 시키는 임시 벼슬.]를 역임한 것 외에는 특별히 다른 관직을 맡은 기록은 없다. 1899년 사도세자가 장종을 거쳐 장조 의황제로 추존되어, 황제의 4대손은 황족으로 대우하는 예에 따라 그해 9월 21일 예양령(禮陽令)에 봉작된 뒤, 같은 해 예양부정(禮陽副正)이 되었고 1906년에는 예양도정(禮陽都正)으로 진봉되었다 다시 예양정(禮陽正)으로 강작되었다. == 사건, 사고 == 예양도정으로 진봉되었던 1906년 7월에 [[일본인]] 두 명과 짜서 [[위조]] [[증권]]을 가지고 사기를 쳐 [[경기도]] [[가평]]의 어느 민가 땅을 강제로 빼앗았다는 혐의로 징역 10년에 구형되었으나 고종에 의해 유배로 바뀌어 귀양 간 일이 있었다.[* 대한제국의 《형법대전(刑法大全)》 제200조 8항에 근거.][* [[http://sillok.history.go.kr/id/kza_14310024_002|출처: <조선왕조실록> - 고종실록 24권, 1906년(대한 광무 10년) 10월 24일 양력 2번째기사.]]] 1907년 7월 말에는 [[충주]]에서 의병 조인환에게 붙잡혔고 이들과 함께 이동하던 중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의병과 같이 다녀 행동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잠식된 정부에 의해 예양정 직명을 환수당한 뒤 기소되었다가 이후 1908년 [[평리원]]에서 열린 재판 때 스스로 "의병에게 천연(千連)이 함께한다."는 발언을 했음을 자백하고 무죄방면되었다.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알려진 것이 없어 정확한 사망년원일도 모르며 가족도 부인 1명에게서 아들 하나를 보았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분류:조선의 왕자]] [[분류:대한제국의 황족]] [[분류:1877년 출생]] [[분류:전주 이씨 은전군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