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able bordercolor=#00001b><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bgcolor=#000000>{{{+1 {{{#ffffff '''啓聖王 | 계성왕'''}}}}}}|| ||||<:><bgcolor=#00001b>'''{{{#white 시호}}}'''||<bgcolor=#ffffff>계성왕(啓聖王) || ||||<width=25%><:><bgcolor=#00001b>'''{{{#white 성}}}'''||<bgcolor=#ffffff>자(子)|| ||||<:><bgcolor=#00001b>'''{{{#white 씨}}}'''||<bgcolor=#ffffff>공(孔)|| ||||<:><bgcolor=#00001b>'''{{{#white 휘}}}'''||<bgcolor=#ffffff>숙량흘(叔梁紇) / 추인흘(郰人紇) / 추숙흘(鄹叔紇) || ||||<:><bgcolor=#00001b>'''{{{#white 생몰년도}}}'''||<bgcolor=#ffffff>? ~ [[기원전 548년]] || ||||<:><bgcolor=#00001b>'''{{{#white 직업}}}'''||<bgcolor=#ffffff>대부(大夫) || ||||<:><bgcolor=#00001b>'''{{{#white 가족}}}'''||<bgcolor=#ffffff>부왕: 창성왕(昌聖王)[br]아내: 시씨(施氏), 안징재(顔徵在)[br]아들: [[맹피]], [[공자]] || [목차] [clearfix] == 개요 == [[공자]]의 아버지다. [[춘추전국시대|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창성왕(昌聖王)으로 추봉된 공백하(孔伯夏)의 아들. 다른 이름은 추인흘(郰人紇), 추숙흘(鄹叔紇). 시호는 계성왕(啓聖王).[* [[청나라]]의 [[옹정제]] 추봉(1724).] == 상세 == 숙량흘 자체의 기록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지만 용감하고 무예를 갖췄으며 완력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노양공]]의 재위기간 때 추읍의 대부(大夫)의 관직을 얻었다. 양공 10년 [[진(춘추전국시대)|진]](晉)이 제후의 군사와 함께 노나라를 공격했을때 아래로 내려오는 성문을 팔로 받쳐 아군을 달아나게 했었고 양공 17년엔 [[제(춘추전국시대)|제]](濟)의 군사에 포위된 장흘을 자신 외의 2명과 함께 제군을 돌파하여 장흘을 호송했다. 아내는 시씨(施氏)와 안징재(顔徵在), 첩 하나로 시씨와의 사이에 딸 아홉, 첩한테 아들 [[맹피]]를 낳았으나 맹피는 절름발이라 대를 잇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숙량흘은 60살에 16살짜리 안징재(顔徵在)를 부인으로 들여 [[공자]]를 낳는다. [[분류:생년 미상]] [[분류:춘추전국시대/인물]] [[분류:추존된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