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독립운동가, rd1=박원종(독립운동가))] [include(틀:역대 조선 영의정(연산군-선조))] ||<table align=center><bgcolor=#94153E><table bordercolor=#94153E><table width=100%> '''{{{#FFC224 박원종 관련 틀}}}''' || ||<bgcolor=#fff,#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2><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94153E><bgcolor=#94153E><width=80%> {{{+2 {{{#FFC224 '''조선의 영의정'''}}}}}}[br]{{{-1 {{{#FFC224 '''《第 50 代》'''}}}}}} || ||<-2><bgcolor=#94153E> {{{#FFC224 '''世祖 1 3年~[BR]中宗 5年'''}}} || ||<bgcolor=#94153E> {{{#FFC224 '''제50대'''}}} ||<bgcolor=#94153E> {{{#FFC224 '''1509.9.27~[BR]1510.3.6'''}}} || ---- [include(틀:조선 정국공신)] ---- [include(틀:조선 정난공신(중종))] ---- [include(틀:조선의 역대 집권세력)] }}} || 朴元宗 1467년([[세조(조선)|세조]] 13년) ∼ 1510년([[중종(조선)|중종]] 5년). [목차] == 개요 == [[조선]]의 무신. [[본관]]은 [[순천 박씨]], 자는 백윤(伯胤), [[시호]]는 무열(武烈). 평양군 [[박중선]]의 외아들이자 [[성종(조선)|성종]]의 친형 [[월산대군]]의 처남이며 [[윤임]]과 [[중종(조선)|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외숙부이다. [[중종반정]]의 실질적인 기획자이고 사실상 반정의 [[주인공]]이었다. == 생애 == === 어린 시절 === 부친은 박중선으로 박원종의 친할머니이자 박중선의 어머니는 [[태종(조선)|태종]]에 의해 의도적으로 죽임을 당한 [[세종대왕|세종]]의 장인 [[심온]]의 딸이다. 즉, [[소헌왕후]]는 박원종의 할머니의 언니(이모할머니). 박중선 본인도 [[이시애의 난]]과 성종 즉위에 공을 세운 [[공신]]이자 [[병조판서]]로 군권을 쥔 [[거물]]이었으며 [[반란]] 토벌로 잔뼈가 굵은 무인이었다. 박중선 사후 박중선의 [[묘지명]]은 당대 명문장가였던 [[임사홍(조선)|임사홍]]이 지어주는데 훗날 아들 박원종에 의해 임사홍이 [[참살]]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박원종은 부친을 닮아 [[무술]]에 뛰어나서 [[음서]]로 무관[* 때문에 같은 무관 출신인 [[유자광]]이 [[탄핵]]을 받아 궁지에 몰리자 박원종을 찾아가 '[[문관]]들이 [[무관]]들을 배척하려 하니 다음에는 당신 차례일 것이다'라며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물론 유자광이 [[무오사화]] 등으로 공공의 적 취급을 받게된지 오래인 것을 안 박원종은 이를 [[무시]]했다.]에 기용되었다.[* [[활]]쏘기를 동네 [[푸줏간]] 주인한테 배웠다고 한다.] 1486년(성종 17년) 선전관으로 있을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내승으로 [[승진]]해 오랫동안 왕의 측근이 되었다. 박원종의 손윗누이는 월산대군의 부인인데 성종이 그런 이유로 박원종을 기용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성종은 월산대군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박원종의 둘째 누이가 [[윤여필]]과 [[혼인]]해 중종비 장경왕후와 윤임 남매를 낳았다.] === [[연산군]] 시절 === 연산군이 [[즉위]]하자 중추부지사 겸 [[경기도]] 관찰사,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다음 평성군(平城君)에 봉해지고 도총부 도총관을 [[겸직]]하였다. 1506년 [[성희안]], [[유순정]] 등과 함께 연산군을 [[폐위]]하고 [[신수근]], [[임사홍(조선)|임사홍]] 등을 제거하여 중종을 [[옹립]]한 중종반정의 주도적 역할을 맡아 정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종종 즉위 후 출세일로를 걷던 박원종은 중중 3년인 1509년 [[영의정]]에 오르고[* 조선시대 무과 출신으로 영의정에 오른 2명 중 1인이다. 나머지 한명은 [[신립]]의 아들이자 [[인조반정]]의 주역 중 한 명인 충익공 신경진(1575~1643). 다만 신경진은 영의정이 되고 불과 5일만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평성부원군에 봉해졌지만 몇 달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중종반정]] === 박원종의 큰 누이는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였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연산군이 누이를 범한 것이 박원종이 반정을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다만 연산군이나 중종반정 문서에 나와있듯이 이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은 낮다. 박원종의 둘째 누이는 윤여필에게 [[시집]]을 가서 윤임과 장경왕후를 낳았다. 셋째 누이는 [[제안대군]]의 후처이다. 다만 제안대군이 후처 박씨와 [[이혼]]하기 위해 그녀를 [[레즈비언]]이라고 [[모함]]한 후 일방적으로 쫓아냈다. 졸기에 따르면 중종반정 이후 박원종의 집에는 [[뇌물]]이 사방에서 모여들었고 [[궁궐]]에서 나온 이름난 [[창기]]들을 많이 차지하였으며 거처나 음식이 [[신하]]로서의 한도를 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반정에 기대를 품었던 사람들에게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박원종에게는 [[적자]]가 없어 박원종이 죽은 후 박원종의 [[서자]]인 [[박운]]이 [[제사]]를 받들었는데[* 참고로 서자가 적자로 [[신분]] 세탁을 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것, 마지막 방법은 [[역모]]를 막는 일이다.] 박운은 [[이항]]에게 뇌물을 바치고 아첨을 했다는 혐의로 [[김안로]] 일파의 공격을 받아 [[유배]]를 갔다.[* 파직되어 [[고향]]에 가 있던 이항이 이 소식을 듣고는 분개하여 [[승정원]]으로 가서 억울함을 토로한 것을 보면 박운의 혐의는 김안로 일파의 [[무고]]일 가능성이 높다. [[조선왕조실록]]의 사관 역시 "이항의 탐욕스러움은 일세에 비할 자가 없다"고 까면서도 "박운에게 뇌물을 받은 일은 [[증거]]가 확실치 않다"고 기술하였다.] 반정 1등 공신 박원종의 제사를 받드는 아들이라는 점을 들어 [[정광필]]이 "박운을 선처해달라"고 청하였지만 중종은 거부하였다. 중종이 박원종에게 얼마나 쌓인게 많았나를 엿볼 수 있는 부분. == 어마어마한 [[집안]] == 박원종의 행실과는 별개로 집안 자체는 어마어마했다. 할머니만 해도 소헌왕후의 여동생이었으며 위로 둔 3명의 누이는 모두 [[왕실]]과 관련이 있다. 큰 누이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 연산군과의 [[야사]]로도 유명하다.] 둘째 누이는 중종의 둘째 부인이자 [[인종(조선)|인종]]의 모친인 장경왕후의 어머니(순천부부인 박씨). 셋째 누이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예종(조선)|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 부인 박씨이다. == [[한국]] 사극에서 == 44세라는 상당히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배우]]들이 박원종 역을 맡는다.[* 참고로 자신이 탄핵한 유자광의 [[아들]]뻘이다.] 그나마 [[영화]] [[왕의 남자]]에서 젊은 배우가 맡은 적이 있다. * [[조선왕조 오백년]] 풍란 - [[조경환]] * [[장녹수(드라마)|장녹수]] - [[이동준(1958)|이동준]] * [[조광조]] - [[김병기(배우)|김병기]] * [[임꺽정(드라마)|임꺽정]] - [[김영석(배우)|김영석]] * [[왕과 비]] - [[차광수]] * [[여인천하]] - [[김영인]] * [[대장금]] - [[이창환]] *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 - [[차기환]] * [[간신(영화)|간신]] - [[조한철]] * [[인수대비(드라마)|인수대비]] - [[박수일]] *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 [[최대철]] : [[중종반정]] 후, [[권력]]으로 [[뇌물]]과 [[사치]]를 부리자 [[홍길동]]에게 혼쭐이 나고, 이후 홍길동을 두려워하다가 급사한 걸로 나온다. * [[7일의 왕비]] - [[박원상]] [[분류:영의정]][[분류:조선군/군인]][[분류:순천 박씨]][[분류:1467년 출생]][[분류:151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