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국의 인물]][[분류:1886년 출생]][[분류:1955년 사망]][[분류:아프리카계 미국인]][[분류:메릴랜드 주 출신 인물]][[분류:알링턴 국립묘지 안장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Matthew_Henson_1910.jpg]] '''Matthew Alexander Henson''' [[1886년]] 6월 8일 ~ [[1955년]] 3월 9일. [목차] == 개요 == [[미국]]의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와 함께 북극점 탐험에 나서 북극점을 [[미국인]]으로서 처음 밟은 사람이다. 그러나 피어리가 정복의 공을 오로지 자신에게 돌리고 북극 탐험에 참여한 헨슨은 뒤늦게 조명받았다. == 생애 == 1866년 [[메릴랜드]] 주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구한 가정사가 있는데, 메릴랜드의 인종 탄압을 피해서 농장을 팔고 조지타운으로 이사갔다. 그가 7살 때 어머니가 사망했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재혼에서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아버지도 일찍 사망하고 삼촌과 같이 살게되지만 삼촌 역시 일찍 사망했다. 1878년 메릴랜드의 볼티모어로 이동해서 차일즈 선장에게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만화 빙벽에서 이 모습이 묘사된다. === 북극 탐험 === [[로버트 피어리]]의 조수로 북극 탐험에 참여해서 자신과 4명의 [[이누이트]]인과 함께 북극점과 인접한 40km 지점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북극점 정복은 실패했지만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북극과 가장 인접한 지역에 도달한 인물. 피어리는 이보다 1시간 뒤에 북극점에 도달했다. 피어리는 헨슨을 질투해서 이 공적을 숨겼고, 나중에서야 밝혀진다. === 탐험 이후 === [[1909년]] 흑인 사회의 만찬에서 존경을 얻었다. [[1912년]] 회고록인 북극의 흑인 탐험가(A Negro Explorer at the North Pole)를 출판했다. 그는 193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주목을 받았다. 1937년에 뉴욕의 익스플로러 클럽의 회원으로 인정받고 1948년에 명예회원이 되었다. 미 의회에서는 1944년에 그와 피어리의 보좌관 5명에게 피어리 극지탐험 은메달을 수여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헨슨은 빈민가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았고, 1955년에 사망했다. 아내 루시는 1968년까지 살다가 사망해 사후 합장되었다. == 사후 == 뒤늦게 공적이 인정되어 헨슨이 사망한지 33년만에 [[알링턴 국립묘지]]로 이장되었고 2000년에 영예의 메달을 사후에 수여받았다. 헨슨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미 해군]]은 USNS Henson을 취역시켜 그를 기리고 있다. == 기타 == 대중매체에서 지몬 슈바르츠의 작품 빙벽이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8910&cid=59065&categoryId=59072|매튜 핸슨]]의 생애를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