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후백제]]의 장수. 후백제의 인물들 중에서 [[견훤]], [[상귀]], [[상애]]와 함께 구체적으로 군공이 확인되는 몇 안되는 장수 중 하나이다. 이후 [[고려]]가 승리하면서 후백제 측 인물들의 행적은 너무 간략하게 기록되었는데다가 고대에 남은 기록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은 판이라, == 행적 == 928년 견훤의 명을 받은 관흔은 [[양산]]에 성을 쌓는데 이에 왕건은 [[왕충]]을 보내 공격하려 한다. 이에 관흔은 신속하게 군사를 우회하여 [[대야성]]을 점령하고 이어 대목군에서 식량을 확보한후 오어곡(부곡성)에 주둔해 [[죽령]] 지방까지 장악한다. 거의 한반도 중부지방을 가로지르는 신속한 행보를 보인것만 봐도 관흔의 왕충 유인 및 이로인해 수비가 빈약해진 남부지방의 빈틈을 찌르는 작전이 미리 치밀하게 준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인지도 == 위에 그의 행적을 보면 대야성을 재탈환하고 이어서 [[죽령]] 지방을 장악해 고려군의 진로를 차단한다 기록만 보자면 후백제 장수들 중 전공이 단연 뛰어나다 할수있다. 허나 인지도가 상귀.상애와 비교해도 매우 딸린다 뭐 거기서 거기지만.... 후삼국시대에 나름 관심있는 역사학도들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렇듯 혁혁한 군공을 세웠음에도 인지도가 이리 적은건 드라마 [[태조 왕건]]의 책임이 큰데, 비록 쩌리라도 등장을 하긴 하는 [[상귀]]에 비해 관흔은 본 드라마에서 단 한번이라도 출연이 없을 뿐 더러 언급도 되지 않는다. 태조 왕건에서 백제군의 용장으로 나오는 인물들은 [[수달]]([[능창]]) 같이 견훤과 관련이 있다는 기록이 없는 독자적 세력을 가진 [[해적]]이거나[* '정황상' 친견훤계 해적집단이라고 볼 여지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흔, 상귀처럼 구체적인 전공이 기록된 것도 아니다.] [[추허조]], [[최필]], [[애술]] 같이 고려군에 잡히거나 항복한 기록밖에 없는, 즉 장수로서 어땠는지 알 수 없는 이들 일색이라 정작 대공을 세운 관흔이 빠진게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분류:후삼국시대/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