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황해도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분류:사라진 성씨]] ||<-2><tablealign=right><tablewidth=350><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15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160><tablebordercolor=#fff><bgcolor=#fff,#1f2023> '''{{{#000,#ddd {{{+1 谷山 拓氏[br]곡산 척씨}}}}}}''' ||}}} || ||<width=60> '''{{{#ece5b6 관향}}}''' ||<bgcolor=#fff,#1f2023>[[황해북도]] [[곡산군]] || || '''{{{#ece5b6 시조}}}''' ||<bgcolor=#fff,#1f2023>척위공(拓謂恭) || || '''{{{#ece5b6 중시조}}}''' ||<bgcolor=#fff,#1f2023>[[척준경|척준경(拓俊京)]] || || '''{{{#ece5b6 인구}}}''' ||<bgcolor=#fff,#1f2023>'''0명'''[* 함경도 쪽에 남아있다는 설이 있다.] || [목차] [clearfix] == 유래 == 시조 척위공은 곡산의 가난한 향리였으나 아들의 공으로 검교대장군이 되었다. 아들 [[척준경]]은 고려 무신으로 동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합문지후에 제수되었고 후에 길주전투에서 공을 세워 공부원외랑이 되었다. 후에 문하시랑평장사까지 올랐다. 그 유명한 [[이자겸]]과 사돈 관계이기도 했다. == 멸문 == 이미 [[조선]] 초기에 멸성이 되었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이자겸의 난]]이 일어난 후 [[고려]] 중~말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 실존 인물 == * 척위공 - 검교대장군. [[고려의 여진 정벌]] 당시에도 살아있었고, 공을 세운 아들 척준경 덕분에 상을 받는다. * [[척준경]] - 문하시랑 평장사, 이부상서 참지정사 등을 역임. * 척준신 - 척준경의 동생. 형을 잘 둔 덕에 미관말직에서 병부상서로 승진한다. 그러나 이자겸을 축출할 때 최탁과 오탁 일파에게 살해당했다. * 척순 - 척준경의 아들로 [[내시]][* [[고려]]의 내시는 [[고자|흔히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라 명문가 자제들만 역임할 수 있는 자리였다. 내시를 역임한 대표적인 인물은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의 아들이자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것으로 유명한 [[김돈중]]이 바로 내시였다. 또한 내시를 역임한 후 [[재상]]이 될 수도 있었다. ~~ 진짜 고자는 내시가 아니라 [[환관]]이었다..~~]와 호부원외랑을 지냈지만 이자겸을 축출할 때 삼촌 척준신과 함께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