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고려의 대외 전쟁)] [목차] == 개요 == 1216년 발발한 [[거란 유민들의 고려 침공]] 와중, 1218~1219년 [[고려]]-[[몽골]]-[[동하|동진]][* [[금나라]] 말엽에 함평로 선무사 '포선만노'가 세운 [[여진족]] 나라. 이후 동진(대진)에서 [[동하]](대하)라고 이름을 바꾼다. 이시기엔 사실상 몽골의 위성 국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사마씨의 [[동진]]이 아니다. 아예 한자가 東眞으로 東晉과 다르다.]이 서로 연합하여 강동성(江東城)[* 지금의 [[평양]] 동쪽 부근 지역.]에 침입한 [[거란족]]을 물리친 전투. == 평가 == 일단 [[고려]]는 강동성에 침입했던 [[거란|거란족]]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였으나, 문제는 이후 몽골과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것. 왜냐하면 이를 계기로 이후부터 몽골이 [[고려]]에 큰 은혜를 베푼 듯 행세하며 해마다 고려에 과중한 공물을 요구했다. 이때 몽골 사신들은 고려에서 과장 좀 보태 소위 [[깽판]]도 부린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고려에선 당연히 반몽정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1225년 [[저고여 피살 사건]] 등과 더불어 1231년 발발하는 [[여몽전쟁]]의 배경이 된다. 하지만 애초에 [[고려]]가 [[여요전쟁]]대와 달리 강동성에 침입했던 [[거란|거란족]]을 자체적으로 소탕하지 못했던게 근본적인 문제긴 했다. 몽골 입장에서야 군대 보내줬으니 돈 내놔라고 할 수 있는 노릇이기 때문. 물론 점점 커져가는 규모나 사신의 무례한 행태 등으로 보아 걍 침공 명분 쌓기 어그로 끈거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이런 빌미를 안주면 될 것을 당시 고려의 무신정권 실권자 [[최충헌]]은 몽골 개입 전 빨리 마무리 지을 수도 있었던 전쟁을 자만하여 초기 국경군의 구원 요청 배척 등 황당한 판단 미스로 장기화시켜버렸다. == 기타 == 강동성 전투에서 활약한 고려의 장군 [[김취려]]는 수염이 배 아래까지 내려왔을 정도로 길어서 예복을 입을 때마다 두 명의 여종들에게 수염을 나눠들게 한 후 허리띠를 메었다고 한다. 당시 몽골군의 사령관이었던 카치운[* [[고려사]]나 [[고려시대]]를 다룬 대중역사서에서는 주로 '합진(哈眞)'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칭기즈 칸]]의 동생과는 동명이인이다.]이 김취려의 풍채와 긴 수염을 기이하게 여겨 나이를 묻고는 형으로 모시며 후대했다는 이야기가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미염공, version=27, paragraph=4)] == 같이보기 == * [[최충헌]] * [[동하|동진]] * [[몽골 제국]] * [[여요전쟁]] * [[전투 목록/한국사]] [각주] [[분류:한국사/전투]][[분류:고려-몽골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