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평가
일단 고려는 강동성에 침입했던 거란족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였으나, 문제는 이후 몽골과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것.
왜냐하면 이를 계기로 이후부터 몽골이 고려에 큰 은혜를 베푼 듯 행세하며 해마다 고려에 과중한 공물을 요구했다. 이때 몽골 사신들은 고려에서 과장 좀 보태 소위 깽판도 부린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고려에선 당연히 반몽정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1225년 저고여 피살 사건 등과 더불어 1231년 발발하는 여몽전쟁의 배경이 된다.
하지만 애초에 고려가 여요전쟁대와 달리 강동성에 침입했던 거란족을 자체적으로 소탕하지 못했던게 근본적인 문제긴 했다. 몽골 입장에서야 군대 보내줬으니 돈 내놔라고 할 수 있는 노릇이기 때문. 물론 점점 커져가는 규모나 사신의 무례한 행태 등으로 보아 걍 침공 명분 쌓기 어그로 끈거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이런 빌미를 안주면 될 것을 당시 고려의 무신정권 실권자 최충헌은 몽골 개입 전 빨리 마무리 지을 수도 있었던 전쟁을 자만하여 초기 국경군의 구원 요청 배척 등 황당한 판단 미스로 장기화시켜버렸다.
왜냐하면 이를 계기로 이후부터 몽골이 고려에 큰 은혜를 베푼 듯 행세하며 해마다 고려에 과중한 공물을 요구했다. 이때 몽골 사신들은 고려에서 과장 좀 보태 소위 깽판도 부린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고려에선 당연히 반몽정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1225년 저고여 피살 사건 등과 더불어 1231년 발발하는 여몽전쟁의 배경이 된다.
하지만 애초에 고려가 여요전쟁대와 달리 강동성에 침입했던 거란족을 자체적으로 소탕하지 못했던게 근본적인 문제긴 했다. 몽골 입장에서야 군대 보내줬으니 돈 내놔라고 할 수 있는 노릇이기 때문. 물론 점점 커져가는 규모나 사신의 무례한 행태 등으로 보아 걍 침공 명분 쌓기 어그로 끈거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이런 빌미를 안주면 될 것을 당시 고려의 무신정권 실권자 최충헌은 몽골 개입 전 빨리 마무리 지을 수도 있었던 전쟁을 자만하여 초기 국경군의 구원 요청 배척 등 황당한 판단 미스로 장기화시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