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생년 미상]][[분류:193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동춘}}}[br]金東春'''}}}}}} || ||<|2><width=80><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생년 미상 || ||출생지 미상 || ||<|2><color=#fff> '''사망''' ||[[1934년]] || ||성진형무소 ||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김동춘은 [[신간회]] 성진지회와 성진청년동맹에서 활동하다가 1931년 5월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성진농민조합은 1931년 신간회 지부와 청년동맹이 해소된 뒤 이들 조직원을 기반으로 조직되었다. 성진농민조합은 소작료 인하투쟁·채권문서 탈취 및 소각투쟁·스파이 징벌 투쟁·야학철폐 반대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성진농조에서는 조직을 관할하기 위해 1932년 1월에 농민조합본부임시통제위원회(農民組合本部臨時統制委員會)와 지도위원회(指導委員會)와 같은 기구를 설치·운영하였는데, 이 조합은 하부 조직으로 7개 면에 14개 지부와 45개 반(班)을 설치하면서 2천여 명의 조합원 규모의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서는 6, 7세의 어린아이들까지도 혁명가(革命歌)를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농조의 대중적 기반이 다져졌다. 일제는 무장 경찰을 동원하여 대규모의 탄압을 개시하여 700여 명의 조합원이 붙잡히고 이 가운데 150명이 검사국에 송환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이 때 김동춘은 성진농민조합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모진 고문을 받다가 미결기간 중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동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